직장인을 위로하는 노량진의 맛
잠시 노량진 고시원에서 살았던 적이 있다. 같이 임용고사 공부를 하자던 친구의 꼬임에 넘어간 것이었지만 결국 친구는 집에 머물렀고 나 홀로 아무런 연고 없는 그곳에 터전을 잡았다. 알바 두 개를 뛰며 번 돈은 숨만 쉬어도 쭉쭉 빠져나갔고, 대화를 나눌 친구마저 넉넉지 않던 시절이었지만 이상하게 평온했다. 아직 마침표를 찍지 못했던 연애도, 앞길이 보이지 않는 미래도 수험생활이라는 현재에 묻어버렸다.
모든 것을 잠식시키기에 좋은 환경이었다. 그저 눈 뜨면 독서실에 앉아 책을 펼쳤고, 때가 되면 밥을 먹고, 알바나 스터디가 잡힌 날이면 잠시 그 먹먹한 곳을 떠났다가 되돌아오는 일상을 반복했다. 당연히 간소한 식사는 유일한 낙이 되었다. 그때 자주 먹던 메뉴 중 하나가 바로 김치볶음덮밥이었다.
그 메뉴에 대한 첫인상은 호기심이었다. 김치볶음밥이 아니라 김치볶음덮밥이라니, 이건 뭐지. 직접 먹어보고 난 뒤 소감은 대만족이었다. 저렴하고 든든한 패스트푸드로 이만한 게 없었다. 뜨끈뜨끈한 흰쌀밥 위에 매콤 달콤 시큼한 김치볶음을 올리고 기름기가 좔좔 흐르는 달걀 프라이와 김가루로 마무리하면 끝. 가격만큼이나 단출한 한 그릇을 손에 들고 노점상에 서서 먹으면 10분 안에 끝. 금방 사라져 버리는 식사시간이 아쉬웠지만 수험생에겐 그마저 이득이었다. 한때 나의 하루를 지탱해주던 그 메뉴는 그곳을 떠나온 이후 기억 속에만 존재했다. 맛있는 건 많았으니까. 갑자기 그 추억의 음식이 떠올랐던 이유는 수면 아래 존재했던 그 시절의 먹먹함과 답답함이 훅 올라온 탓이었다.
직장에서 메신저로 메시지가 왔다. 근속교사 축하금을 걷는다고 했다. 대체 내가 이곳에 오고 교과며 부서에 10년, 20년, 30년을 채우는 사람들이 몇 명째인지. 매년 몇 만 원씩 내다보니 점점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나는 채울 수 없기에 절대 받을 수 없는 축하금을, 축하하지도 않는 이에게 왜 주어야 하는가. 게다가 근속기간에 축하금액을 맞춰야한다는 거지 같은 룰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 룰을 정할 때는 기간제 교사를 쏙 빼고 자기들끼리만 모여 놓고, 정해졌으니 다같이 따르라니 이 무슨 개떡 같은 소리란 말인가. 룰은 정하거나 동의한 사람들이 지키는 거 아닌가.
어차피 당신들의 근속은 호봉으로 축하받고 있는 거 아닙니까. 나이와 경력에 따른 대우의 일환으로 당연히 일을 적게 해야 한다는 거지 같은 관행이 팽배한 이곳에서 이미 적게 일하고 돈 많이 버는 축복을 누리는 마당에, 개같이 일하고 적게 버는 제 돈을 뜯어가다니요. 날강도가 따로 없네요. 축하하고픈 사람에겐 개인적으로 제가 할게요. 제발 축하하는 마음 없는 축하금 좀 그만 뜯어 가시겠어요. 막말로 나 계약 기간 연장되어서 10년 채우면 10만 원 모아 줄건가요? 아니면 퇴직 축하금들 받아갔으니까 나 계약 끝나서 관둘 때 퇴사 위로금 줄 거냐고요?!!!
친한 동료들과 한바탕 푸닥거리를 하고도 분이 풀리지 않았다. 이럴 땐 달리 방법이 없다. 먹어야지. 서러운 평온이 함께 했던 시절의 김치볶음덮밥을 만들기로 했다. 그땐 차마 시도하지 않았던 사치를 부려보았다. 어묵이란 사치. 어둠 속에서 긴 시간 동안 몸을 웅크리며 한 층 성숙한 맛을 뿜는 묵은 김치는 열과 기름 속에서 어묵과 양파를 만나면서 또 한 번의 변화를 겪었다. 앙칼진 맛이 한층 부드러워졌다. 양파의 기분 좋은 달달함이 자칫하면 촌스러웠을 묵은 맛을 잡아주었다.
나도 양파가 필요했다. 나의 퀴퀴함을 가벼이 날려줄 누군가가 절실했다. 내 하루의 절반 이상을 보내는 공간에서 좋은 사람과 함께 일하며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나 역시 누군가가 본연의 맛을 더 깊이 낼 수 있도록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이곳에서 그 소망을 이룰 수 있을까.
양념이 스며들며 물기를 머금은 밥알과 적당한 기름을 머금은 도톰한 달걀 프라이가 구수하고 고소하게 씹혔다. 20대의 설움을 달래던 맛이 30대의 설움을 달래고 있었다. 여기저기 치이며 한껏 뾰족해진 나의 마음이, 어쩐지 침울해진 마음이 한층 누그러졌다. 꽤 동그래진 마음으로 말했다.
“나 올해 결혼할 거야. 돈 모아서 축의금 달라고 할 거야.”
“대박, 좋아! 그럼 수능 날 하자. 내가 부케 받을게."
"그럼 난 축가 할래. 우리 다 수능 감독 빠지자. 아싸!”
나는 어쩌면 이미 양파를 만난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