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도시, 락 05화

궁합의 중요성, 곤약 비빔면과 참치전

직업인의 사명감에 대하여

by 정담아

“출근 안 하겠네?”

온라인 수업이 진행된다는 뉴스에 지인들이 당연한 듯 내게 말했다. 땡땡땡! 명확한 오답이다. 아이들이 등교하지 않아도 교사는 출근한다. 교사들의 업무에 수업과 학생 지도만 있는 건 아니니까. 여타의 직장처럼 회사가 지향하는 목적을 위한 수많은 행정업무가 있다. 핵심적인 일은 아니지만 원활한 일상 유지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들 말이다. 교육과정을 짜고 시험을 운영하고 각종 경시 대회를 운영하고 동아리 활동, 임원 선출, 장학금 지원, 진로 진학 등등... 게다가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계속 변경되는 학사일정과 그에 따라 도미노처럼 이어지는 파장도 감당해야 했다. 학교는 우리에겐 노동의 현장이니까.


다른 사업체처럼 학교 역시 재택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있긴 했다. 가령, 교직원의 가족 중 확진자가 나왔을 때. 내가 다니는 직장에서도 그런 일이 일어났다. 모든 수업은 온라인으로 전환되었고 학생을 포함한 전 구성원이 재택을 하게 되었다. 우리는 이틀간 집에서 학생들의 자가 진단 상황을 점검하고 독촉하는 일과 조종례를 확인하고 잔소리를 퍼붓는 일, 해당 교과 및 학급 학생들의 수업 출결을 체크하는 일, 진학 상담 등을 집 컴퓨터 앞에서 진행했다. 출근을 하지 않는 건 좋았지만 차라리 출근을 했으면 싶은 순간도 많았다. 속 터지는 neis 접속을 참아 내야 할 때, 직장 컴퓨터에 깔린 프로그램이나 파일의 도움이 절실할 때, 자리에 쌓아둔 각종 자료들을 뒤적이고 싶을 때, 대답 없는 전화통을 붙들고 있을 때 같은. 그럴 때면 잠시 출근해서 일을 처리하고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방역 수칙을 지켜야지, 생각하고 집에 눌러앉아 끙끙거렸다. 그러지 말고 출근을 했어야 했음을 알게 된 건 재택 기간이 끝난 후였다.


“어쩜 한 명도 출근을 안 했냐고 하시던데요.”

관리자의 불만을 전하는 누군가의 말은 충격적이었다.

응? 네? 뭐라고요? 집에서 일하라면서요. 우리 집이 회사는 아니잖아요. 그럴 거면 출근하라고 하든가요!!


관리자들은 교사로서 사명감을 강조한다. 그때마다 말하고 싶다. '그러면 무보수 명예직으로 뽑으시던가요. 사명감 강한 그쪽부터 솔선수범하시고요.'라고. 물론 나 역시 직업에 대한 프로 의식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개인 선택의 문제이다. 특히 사용자가 제대로 된 노동 환경을 제공하지 않은 채 사명감만 운운한다면 그건 직업윤리가 아니라 개뼈다귀 같은 소리에 불과하다. 기계도 잘 돌아가게 하려면 적당한 쉼을 주어야 하는데, 하물며 인간 노동자를 쥐어짜며 일방적인 희생정신을 강요할 순 없다. 우린 교사이기 전에 ‘사람’이고, 직업인인 동시에 ‘노동자’다. 합리적인 노동 환경에서 프로의식과 사명감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어이없는 관리자의 불만에 기가 찬 많은 직원들이 여전히 재택을 신청한 어느 날, 직장에서 소박한 파티를 준비했다. 변방의 A와.


비슷한 처지인 A와는 서로의 억울하고 분노할 일들에 격하게 공감할 수밖에 없는 사이다. 그 객관적 상황에 주관적인 애정이 더해져 그녀의 허탈한 웃음 뒤에 배인 한숨에 마음이 짠했고, 휘몰아치는 일 폭풍에 넘어지지 않는 강인함을 응원했다. 그런 A와의 만찬을 위해 참치전을 준비했다. 냉장고 속에 굴러다니는 당근, 양파, 부추 등 각종 채소를 다지고 참치와 섞어 달걀물을 입혀 기름에 자글자글 부쳤다. A는 고소하고 담백한 전에 어울리는 비빔면을 준비했다며 밤새 썰어왔다는 채소 꾸러미를 펼쳐 보였다. 파프리카, 양배추 등등 갖가지 종류의 야채가 풍성했다. 거기에 곤약면과 매콤한 소스를 넣고 버무렸다. 꼴깍, 군침이 넘어갔다.


역시나 옳은 조합이었다. 자고로 음식은 궁합이 중요한 법. 하나씩 먹었을 때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어도 같이 먹을 때 마이너스 작용을 한다면 그 식사는 결코 즐겁지 않다. 약간의 자극적인 맵고 단맛에 혀와 속이 날카로워질 때쯤 참치전으로 뾰족함을 달랬다. 관리자의 망언에 함께 열을 내며 아삭아삭한 야채를 마구 씹어대다가 피곤해질 때쯤 부드럽게 뭉개지는 참치전을 입에 넣었다.


일터에서도 궁합이 중요하다. 사람과 업무 간의 궁합, 사람과 사람과의 궁합.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도 그 자리와 맞지 않아 그 능력이 발휘되지 않는 경우도 있고, 그 사람이 가진 훌륭한 능력이 함께 하는 사람에 의해 가려지거나 눌리는 경우도 있으니까. 각자의 고유성을 존중하면서 서로의 장점을 돋보이게 하는 최고의 궁합, 그것이야 말로 직업으로서의 자존감이나 사명감을 피워내는 토대가 아닐까. 그렇다면 나는 과연 내가 가진 고유의 맛을 발휘할 수 있는 곳에서, 나의 개별성을 알아봐주고 지지해주는 사람들과 함께하고 있는 걸까. 나는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일까.


짧은 만찬을 정리하고 A와 안녕을 나누며 간절히 바랐다. 돈과 권력이라는 강력함에 그 향을 잃지 않기를. 우리만이 가지고 있는 색과 맛, 가치를 은은하게 빛낼 수 있는 곳에서 일할 수 있기를. 나도, A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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