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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오지 않을 사람을 기다리는 당신에게 건네는 위로

영화보다 드라마틱한 사ㄹㅁ

by 다시봄
자책, 하지 마요.
그거 내가 꽤 해 봐서 아는데 발도 들이지 마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을 간직한 사람들이 간혹 하는 말

“나 때문이야. 내가 그러지만 않았어도...”

자책하며 자신을 어둠 속으로 내모는 그들을 무너지게 놔두지 않으려, 스스로를 괴물로 만들게 방치하지 않으려, 드라마 <괴물>은 한 사람 한 사람을 수면 위로 건져낸다.


자책하지 마요, 라며.

그만 슬퍼해요, 라며.




아저씨는 그냥 미친 거야.
평생 혼자 끌어안은 슬픔이 어느 순간 넘쳐서
그냥 막 미친 짓을 벌이기 시작한 거야.



만양파출소의 이동식 경사(신하균 분)는 평범한 경찰이 아니다.

20년 전 동생 유연이와 카페 종업원 방주선의 살인 용의자였고, 4년 전 광수대 파트너를 죽게 한 혐의를 받은 범인인 듯 범인이 아닌 경찰이다. 게다가 동생의 죽음으로 아버지는 동사하고 어머니는 정신을 놓았다. 남들이 뭐라든 동식은 시체가 발견되지 않았으니 유연이는 분명 살아있을 거라며 20년 동안 한결같이 찾아 헤매고 있다. 그런데 여전히 오리무중인 20년 전의 연쇄 살인과 동일한 방식의 살인사건이 다시 발생하면서 동식은 다시 한번 용의선 상에 오른다.


피해자인지 가해자인지 헷갈리는 동식을 범인으로 확신하는 한주원 경위(여진구 분)가 나타나면서 이야기는 그 속내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왜 사람을 함부로 의심하면 안 되는지, 누구에게나 아픔이 있고 상처가 있고, 그걸 풀어가는 방식은 모두가 다르다는 것을.

슬픔을 끌어안고 어둠 속에 처박힐 수도, 괴물을 잡기 위해 괴물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유연이에 이어 조카 같은 동생이 또 죽었는데도 슬픔을 맘껏 표현하지 못하고 스스로 괴물이 되어가는 동식

동식을 용의자로 몰아 평생 죄책감에 시달리며 또라이 동식을 아들처럼 거두는 만양파출소장 남상배

같은 방식으로 살해된 걸로 추정되는 엄마를 오매불망 기다리는 만양정육점 사장 유재이

20년 동안 딸이 죽은 갈대밭에서 죽은 딸 방주선을 찾아다니는 치매 아버지

사슴인지 사람인지 모를 무언가를 차로 친 후 기억을 잃고 괴로워하는 박정제



의심하면 안 됩니까?
의심하지 않기 위해서 의심하는 겁니다



모든 정황 증거가 동식을 의심하게 한다며 동식을 범인으로 단정 짓고 수사를 이어가는 주원도 상처가 있기는 마찬가지다.

경찰청장이 되기 위해 티끌 하나도 묻히지 않으려는 완벽주의자 아버지에게서 사랑받지 못하고 큰 주원은 아버지의 티끌이었던 어머니마저 잃자 자신을 보호하려는 방어벽이 더 두터워진다. 범인으로 의심했던 동식이 아닌 자신의 아버지가 살인자라는 걸 알게 되면서 더 큰 상처를 받고 스스로를 나락으로 몰아간다.


‘섣불리 채면 놓치고 기다리면 도망갈지 모르는’ 아버지를 심판대에 올리려고 괴물이 되는 주원과 아무 잘못도 없는 주원이 어둠 속에 빠지지 않도록 구원하기 위해 또 다른 괴물이 되는 동식. 상대방의 아픔을 덜어주기 위해 짠한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보는 동식과 주원. 하지만 두 사람이 서로를 위한다고 해도 결국 파멸로 가지 않으려면 스스로 일어서야 한다는 걸 드라마는 이야기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사람들의 고통을 위로해 줄 수 있는 건 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임을. 자책하지 않고 슬퍼하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자신을 일으켜 세우는 일뿐임을.





동생을 살인했다고 의심받은 동식의 가슴아픈 진술서


똥 잘 싸고
밥 잘 먹고
잠 잘 자고
다른 사람 다치게 하지 않는 게
제일로 훌륭한 거라고.



동식의 어머니가 동식에게 해준 말이며, 동식이 주원에게 전해준 위로의 말이다.

누구도 알지 못하는 혹은 누구나 다 알지만 섣불리 위로하지 못하는 상처를 가진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괴물>의 김수진 작가를 대신해 동식이 말하고 있다.


스릴러 장르를 꽤 좋아하는 내게 <괴물>은 <시그널>에 이어 스릴러가 이렇게 가슴을 미어지게 할 수 있구나라는 걸 알게 해 준 드라마다. 미친 듯이 파고 또 파고들었던 몇 안 되는 드라마 중 하나이기도 하다.


김수진 작가가 대단한 것은 인물 이력서, 인물 별 사건 파일, 부검 감정서, 진술 조서, 시간대별 날짜별 장소별 사건 파일 등 엄청난 디테일을 사전에 만들어 놓은 상태에서 이야기를 썼다는 것이다. 작가가 만들어 놓은 파일을 하나하나 보면서 ‘나는 이런 드라마 못 쓰겠구나.’라고 의기소침해질 정도였다.


하지만 그 많은 파일들보다 더 대단한 것은 인물들을 위로하는 방식이 다소 파격적이었지만 굉장히 감동적이었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남은 자들의 고통은 그들의 생이 끝날 때까지 이어질 크나큰 아픔일 것이다. 그렇다 한들 그들을 그대로 놔둘 수는 없지 않겠는가? 어떻게든 살아가려면 어떤 방법으로든 살려내야 하기에 아주 작은 위로라도 건네야 숨통이 트일 테니.


그러니 꼭 똥 잘 싸고 밥 잘 먹고 잠 잘 자기를 바랄 뿐이다.





[지금 연재 중입니다]

월 : 어른의 Why?

화 : 일주일에 한번 부모님과 여행갑니다

수 : 어른의 Why?

목 : 글이 주는 위로-글쓰기 예찬

금 : 영화보다 드라마틱한 사ㄹㅁ

토 : 어른의 W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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