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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고의 위험에도 흔들리지 않는 이유

글이 주는 위로-글쓰기 예찬 3

by 다시봄

요즘 나는 매일 쫓기듯 일어나 쫓기듯 글을 쓴다.

간신히 내가 정한 마감 시간에 글을 올리고, 숨 고를 틈도 없이 또 쫓기듯 출근한다.

반복되는 하루, 반복되는 쫓김.

금요일 새벽이면 그 긴장의 끈마저 풀리지 않은 채 꿈에서도 쫓기다 깬다.




나만 쫓기는 게 아니라 요즘 회사 사정도 좋지 않다.

반도체 경기가 어려워지고 협력사들이 줄줄이 무너졌다.

다행히 내가 다니는 회사는 큰 고객사와 대표가 형제인 가족사라 그나마 버티고 있지만, 불황의 그늘을 완전히 벗어날 순 없었다.

2년 전의 피바람을 떠올리게 하는 인원 감축의 조짐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그 가운데 가장 먼저 희생양으로 지목된 사람은 우리 부서의 유일한 계약직이자 나의 짝꿍이었다.

11월 계약 만료를 앞두고 회사는 연장을 하지 않겠다고 통보했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팀장은 정직원 전환을 책임지겠다고 약속했는데, 회사의 입장은 달랐다.

일을 누구보다 잘하는 아이가 1년 만에 일자리를 잃게 된 것이다.


팀장 역시 안타까웠는지 인사팀에 다시 방법을 찾아보라 했고, 회사는 마치 선심 쓰듯 ‘6개월’만 계약을 더 연장해줬다.

1년도 아니고, 겨우 6개월.

그 사실이 알려지자 부서 공기는 한순간에 가라앉았다.

정작 당사자는 속상함을 감추느라 ‘헤헤’ 웃기만 했는데, 그 웃음이 왠지 더 아팠다.


그래서였을까.

꿈 속에서 나는 그 친구 대신 해고 통보를 받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니 자리는 없어!”


출근하자마자 그 말을 들은 꿈의 나는 팀장을 찾아갔다.


“그동안 그렇게 칭찬해놓고 이래도 돼요?”

“그게 뭐?”

“팀장님, 그게 뭐라뇨? 이렇게 기한도 없이 쫓아내는 게 말이 돼요?”

“그게 왜?”

“너무 당황스럽고 속상하네요.”

“그래서 어쩌라고?”


팀장은 감정 하나 실리지 않은 말로 나를 계속 밀어냈다.

내 마음의 울퉁불퉁한 곳을 일부러 누르는 사람처럼 건조하게, 단단하게, 무심하게.

그렇게 나는 꿈에서까지 쫓겨나 새벽을 맞이했고, 깨어난 나는 또 쫓기듯 글을 쓰고 있다.


‘그게 뭐? 그게 왜? 그래서 어쩌라고?’

그 무정한 말투가 자꾸 떠올라 마음은 울화처럼 끓어오르지만, 현실의 나는 여전히 회사에 남아 있다.

언제든 흔들릴 수 있는 자리에서, 늘 누군가의 결정에 운명이 달린 채로.


회사를 그만두는 날이 오면, 재취업도 쉽지 않은 나이에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평소에도 가끔 막연한 걱정을 하곤 했지만 짝꿍의 일 이후로 그 불안은 더 선명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쫓기듯 쓰고 있지만, 글을 쓸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다행인가.

쫓기듯 살고 있지만, 글 안에서만큼은 잠시나마 자유로울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행복한가.


그래서 오늘도 나는 쫓기듯 글을 쓰지만

그 속에서만은 흔들리지 않는 나를 만난다.






[지금 연재 중입니다]

월 [나를 일으키는 문장은 어디에나 있다]

화 [일주일에 한 번 부모님과 여행 갑니다]

수 [글이 주는 위로-글쓰기 예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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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글이 주는 위로-글쓰기 예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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