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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써지지 않는 날에 쓰는 글이 주는 위로의 말

글이 주는 위로-글쓰기 예찬 3

by 다시봄

글은 내게 ‘작가’라는 꿈을 꾸게 했고,

아직 작가지망생에 머물러 있는 나를 격려해주는 친구가 되어주었지만,

글이 써지지 않는 날이면 나는 다시금 묻는다.


글이란 대체 무엇일까?




글이 술술 써질 때면, 세상을 다 가진 듯 들뜬다.

진짜 작가가 된 것 같은 착각 속에서 어깨가 들썩이고,

어떤 삶이든 내가 써낸 문장으로 더 슬프게, 더 기쁘게, 더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럴 때면 ‘언어의 마술사’라도 된 듯 노트북 위의 손가락이 신명나게 춤을 춘다.


하지만 글이 써지지 않는 날엔 ‘언어의 마술사‘는 개뿔, 없던 마음조차 산산이 부서진다.

노트북의 빈 화면을 하염없이 바라보다가 베란다 너머 새벽 하늘을 멍하니 올려다본다.

방바닥에 흩어진 머리카락을 주워 모으고, 세수도 하지 않은 부은 얼굴을 거울 속에서 마주한다.

책상 위에 쌓아둔 책들은 아무 말도 걸어오지 않고, 흘러가는 시계 초침만 원망스럽게 바라본다.

머릿속은 텅 비고, 아무 말도 떠오르지 않으면

안 아프던 배가 아프고, 머리가 지끈거리고, 손가락 관절까지 쑤신다.

쓸 것은 많은데 당장 쓸 수 있는 게 없다는 현실이 그 어떤 실패보다 아프다.


“나 오늘 뭐 쓸까?”

AI에게 물어볼까?

하루쯤 안 쓴다고 세상이 무너지는 것도 아닌데 그냥 뭉개고 넘어갈까?

어제 SNS에서 본 요리나 해먹으며 소소한 행복을 느끼는 게 더 낫지 않을까?

휴우… 글이 뭐라고 나를 이렇게 괴롭히는 걸까.


멍하던 머릿속엔 잡생각이 쌓이고, 결국 그 질문으로 돌아온다.

‘글이란 무엇인가?’



글은 내게 위로다.

쓸 수 없는 날마다 잊게 되는 그 말 ‘위로’.

그동안 내게 글은 단순한 표현 수단이 아니었다.

물에 빠진 나를 건져 올리고, 더러워진 나를 씻겨주고, 새 옷을 입히고 따뜻한 밥을 먹여준 존재였다.

글은 나를 살아 있게 한 위로의 말이었다.

그런 글을 써지지 않는다는 이유로 원망하는 건 성역을 침범하는 일과 같다.

하지만 나는 그 성역을 자주 건드린다.

그래서일까. 아직 덜 큰 작가인 듯하다.





글이 써지지 않는 날 나는 글을 원망한다.

원망하고 미워하다가 문득 그동안 왜 글을 써왔는지를 떠올린다.

‘초심’.

처음 글을 사랑하게 되었던 그 마음, 글이 내게 준 위로의 크기를 다시 기억하는 것이다.


그렇게 다시 되새긴다.

누가 뭐래도 내게 글은 위로라는 것을.

알 수 없는 삶에 휘둘리며 중심을 잃을 때 ‘괜찮다’며 안아주는, 세상 누구보다 빠르고 현명하고 따뜻하게 위로하는 엄마 같은 존재다.






[지금 연재 중입니다]

월 [나를 일으키는 문장은 어디에나 있다]

화 [일주일에 한 번 부모님과 여행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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