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해: 그릇되게 해석하거나 뜻을 잘못 앎.
원래 영월에서 하룻밤 더 머물며 좀 더 영월을 구경할 계획이었지만 추워서 잠을 못 잤던 어젯밤을 떠올리며 결국 저녁 늦게 기차를 타고 제천으로 향했다. 이번 여행에서 꼭 가고 싶은 포항은 밤기차로 가기 어려워 주변 지역을 알아보다가 누군가 드론으로 찍은 제천의 비룡담저수지가 아름다워서 제천에 가기로 했다. 저녁 늦게 제천역에 도착했지만, 지나 온 기차역들보다 크고 조명으로 환하게 빛났으며 역사는 사람들로 활기찼다. 역 밖으로 나왔는데 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했지만 10여분 걸으면 숙소가 있어서 비를 맞으며 걸었다. 제천역과는 달리 토요일인데도 거리는 한산했고 술집들만 조용히 불을 밝히고 있었다. 주말인데도 숙소 역시 고요했지만 생각보다 넓은 방에 가득 찬 온기 덕분에 기분이 좋아졌다. 영월에서 하루 일찍 나오길 잘했다며 피로를 푸는 사이, 영월의 숙소처럼 방 안의 온기가 살금살금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영월처럼 보일러 조절하는 제어기도 보이지 않았다. 그제야 그동안 내가 평일 중 가격이 저렴하여 매우 좋은 숙소에서 머물렀던 덕분에 온도 조절기도 있었고 매우 따뜻하게 지냈던 것이고, 주말이라 가격이 올라 더 안 좋은 숙소들에 머물기 때문에 온도 조절기도 없다는 걸 깨달았다. 영월 숙소에 대한 작은 오해가 풀리며 계획대로 하루 더 머물렀어도 나쁘지 않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날 의림지에 가기 전 중앙시장으로 갔다. 구름이 잔뜩 낀 우중충한 날씨에 썰렁한 길거리를 보니 내 기분도 같이 가라앉았다. 중앙시장에 맛집에 꽤 있다고 해서 어디로 갈까 고민하다가 강원도에 왔으니 오랜만에 장칼국수를 먹으러 갔더니만 마침 문을 닫았다. 두 번째로 찾아간 백반집도 문을 닫았다. 시장 대부분의 상점들은 일요일 휴무였다. 시장이니까 당연히 일요일에 문을 열고 평일에 쉴 거라고 안이하게 생각했다. 배고픔과 쌀쌀한 날씨에 더 이상 돌아다니기 힘들어질 때쯤, 시장 한쪽 구석 골목길에 있는 소고기 국밥집은 다행히 손님들에게 따뜻한 밥을 내어주고 있었다. 몇 개 되지 않는 테이블들은 손님들로 채워져 있는 데다가 혼자 앉아도 되나 생각할 때 주인장 어머님은 주방 바로 옆 작은 테이블에 노트북을 켜놓은 딸에게 얘기하여 자리를 마련해 주셨다. 일요일이라 엄마를 도우러 나온 학생을 보니 흐뭇하면서도 자리를 뺏은 것 같아 미안했다. 처음 먹어보는 소고기 국밥은 빨간 국물이 육개장과 비슷했지만 무와 대파 덕분에 좀 더 시원한 맛을 냈다. 뜨끈한 국물로 몸을 녹이고 어머님이 직접 만드신 치자식혜로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나왔다.
시내를 벗어나니 멀리 산이 보이고 녹지 않은 하얀 눈이 곳곳에 묻은 누런 논길이 펼쳐졌다. 의림지로 가는 길은 좁았다가 넓어졌다 하여도 인도가 있어서 길이 갑자기 사라지던 강릉에 비해 훨씬 걷기 수월했다. 군부대 비행장이었던 곳은 시민을 위한 공원으로 바뀔 준비를 하며 색색별 바람개비가 줄지어 바람이 불 때마다 세차게 돌았다.
삼한시대 때부터 있었을 거라고 해서 작을 것이라고 예상했었기 때문에 의림지에 도착했을 때 크기에 놀랐다. 의림지를 둘러싼 소나무들과 구름이 비친 물 위에 떠다니는 야생 오리들을 보며 걸었다. 그러나 어떤 식당에서 스피커를 밖에 두고 누군가의 노래인지 고성방가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소리가 의림지에 퍼져나가면서 평안한 산책은 깨져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울어진 소나무들을 비추는 해가 서쪽으로 기운 시간의 의림지는 아름다웠다.
의림지 풍경과 어울리지 않는 듯한 놀이공원을 지나 근처에 있는 비룡담저수지로 걸음을 옮겼다. 동네 사람들도 즐겨 찾는 산책로였는지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 나온 주민들과 함께 걸었다. 작은 다리를 건너가니 맞은편에 예쁜 카페들이 즐비한 솔밭공원이 나타났다. 비룡담저수지에서 의림지로 흐르는 물을 따라 소나무들이 가득했다. 따뜻한 커피와 달콤한 디저트를 먹으며 바라볼 수 있는 멋진 풍경에 혹하여 카페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에 잠시 망설였지만, 어두워지기 전 숙소에 걸어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다시 서둘러 걸었다.
공원 끝 언덕 위에 지그재그 형태로 올라가는 나무 계단길이 있었다. 블로그에서 해가 지기 전 사진을 보고 저수지 물 위에 지그재그 형태의 길이 있다고 생각하여 아름답다고 여겼었는데 나의 오해였다. 저수지로 향하는 언덕을 올라가는 계단 길이었다. 조금 실망스러운 마음으로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언덕 위에 올라서 바라본 저수지와 하얀 성 구조물이 내가 봤던 사진과 다른 모습에, 걸어왔던 시간과 포기했던 카페에서의 여유가 떠올라 더욱 아쉬웠다.
제천은 제한된 정보 혹은 정보를 잘못 해석하여 오해가 쌓인 곳이었다. 영월에 하루 더 머물러 못 가서 아쉬웠던 청령포, 영월장릉 혹은 별마로 천문대에 갔더라면 어땠을까? 차라리 카페에서 잠시 쉬면서 몸을 녹이고 달콤한 케이크로 되찾은 생기를 갖고 조금 어둑해질 때 비룡담저수지를 찾아 새까만 저수지에 비친 하얀 불빛이 들어온 성을 봤더라면 내가 기억하는 제천은 달라졌을까?
나의 부주의함은 정보를 더욱 왜곡시켜 오해하고 그를 통해 잘못된 결정을 내리게 했던 것 같다. 한국에 돌아와서 처음 경험한 회사 문화 덕분에 국내 테크 스타트업 회사는 평등한 문화를 가졌다고 당연시했지만 그러지 않았고, 누군가의 행동을 보고 나와 맞지 않을 것이라고 단정하곤 했다. 나는 아주 표면적인 정보만을 보고 쉽게 판단하고 결정했던 것이다.
그런 사소한 오해들로 나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 기회들을 스쳐 지나왔을까.
씁쓸한 기분으로 숙소로 돌아오는 길, 아직 문을 닫지 않은 카페에 들어가 늦게나마 따뜻한 커피와 크림이 가득한 패스츄리를 먹으며 마음을 달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