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에서의 삶
아침에 눈을 뜨면 무작정 하는 루틴이 있다. 커튼을 다 걷고 이불을 베란다에서 탈탈 털어 베개와 침대보 위로 가지런히 덮어두는 것. 그러고 나서 그 위로 좋아하는 향의 패브릭 미스트를 뿌리는 것. 이불을 털며 날씨를 확인하고 바깥공기를 마시는 일이 좋고, 그 작은 행위만으로 움직이기 싫던 마음이 슬쩍 달아나는 기분도 좋다. 오늘은 비가 온 다음 날이라 이번 주 중 날이 가장 맑고 기온도 낮은 날이다. 슬슬 가을 이불이 필요하겠는 걸, 하며 얇은 이불을 품에 안고 베란다로 나간다. 거리도 마음도 깨끗해진 기분이다. 오늘이 날이다, 싶어 평소에는 돌돌이만 하는 이불보를 걷어 마저 털고, 베개도 들고 나왔다. 양손에 하나씩 베개를 쥐고 팡팡 부딪히며 털던 와중, 매일 상상만 하던 일이 벌어졌다. 베개 하나가 내 손을 떠나 7층 아래로 떨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억(떡해)! 생각보다 천천히, 빠르게 떨어지는 베개에 누군가 맞지 않을까 발을 동동 구르며 아래를 내려다보다 바닥에 퍽, 안착한 것을 확인하고는 허둥지둥 문을 나섰다. 원룸의 아파트 형식인 이곳은 일본의 전형적인 1DK 구조(: D는 다이닝, K는 키친, L은 리빙룸. 숫자는 독립된 방의 개수이다). 그래서 방도 좁고 길며, 14층인 건물도 좁고 높다. 덕분에 엘리베이터를 타고 7층에서 1층까지 내려가 현관 앞까지 닿는 데 1-2분도 걸리지 않는다. (가끔 운동 겸 계단을 올라 꼭대기 층까지 갈 때가 있는데, 그것마저도 10분이 채 안 걸린다.) 잠옷 차림에, 렌즈도 안경도 없이 까막눈으로 급히 내려갔건만, 그 짧은 시간 안에 누군가 인도에 떨어졌던 내 베개를 주워다 건물 현관 한 켠에 가지런히 놔두었다. 인도와 자전거 도로 사이 절묘하게 걸쳐진 내 베개가 통행을 방해했기 때문에 누군가 툴툴대며 한 일일 수도 있고, 이 건물에서 베개가 떨어지는 걸 때맞춰 본 사람이 있었을 수도 있다. 그래도, 나 정말 빨리 내려왔는데. 베개를 챙겨 계단을 올라오는 동안 보이는 새파란 하늘과 품에 안은 베개의 푹신함에 내가 이곳을 좋아하는 이유를 다시금 실감했다. 느리지만, 느려서 보이는 것들을 외면치 않고 가장 빠르게 움직이는 사람들이 사는 동네. 단란한 마을 같은 도시.
모두와 깊은 관계를 맺기에는 물리적으로든, 심리적으로든 불가능하다는 것을 점점 체감해서 그런지, 바깥으로 내보내는 다정에 인색하지 않은 사람이 좋다. 그걸 눈치채는 순간 기꺼이 동참하는 사람이 좋다. 그 마음이 진심에서 우러난 것이든, 스스로의 편의를 위한 것이든 아무래도 상관없다. 내가 경험하고 바라봐 온 이곳은 전반적으로 선뜻 도움과 다정을 건네는 게 문화에 배어있다. 우리나라에선 너스레가 좋아야 나눌 법한 스몰토크가 지역 불문하고 잦다. 낯선 이가 말을 걸어오는 일에 있어 경계심도 덜해 보인다. 그 덕에 이자카야나 펍 같은 곳에 가면 금세 옆자리 사람들과 웃고 떠드는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굳어있던 얼굴이 쉬이 풀어지는 공간들이 거리에 몇 군데씩 있고, 그런 곳들을 혼자서도 선뜻 들러볼 수 있다는 사실이 즐겁다. 어쩌면 그게 내가 일본의 술문화를 사랑하는 가장 알맹이 같은 지점 같기도 하다. 1년이지만 이곳에 살게 되면서 모든 이가 다정하지는 않다는 당연한 명제 역시 경험 중이지만, 왜 이곳이 '츤데레'라는 단어를 가진 나라인지 알게 되는 순간 역시 그에 비례한다. 바이토(아르바이트)하는 곳 점장님만 해도 기본적으로 회의적이며 본인과 다른 것들을 이해하는 데 시간을 쓰고 싶지 않아 한다. 히지만 안주를 냈는데 손님이 밖에서 오래 통화를 하고 있는 듯하면 식지 않도록 음식 위에 주방용 비닐을 덮어둔다. 차가운 인상의 손님 역시 응대를 할 때면 곧장 풀어진 얼굴로 답해온다. 상대가 나로 인해 기분이 상하지 않아야 나에게도 피해가 올 일이 없다,라는 마음이면 뭐 어떤가. 그런 이타적 이기심이라면 얼마든지.
어릴 적 TV에서 기아 아동 후원 관련 프로그램을 보고는 우리도 이거 해보자, 하고 건넸던 말에 '그럴 시간에 가족한테나 잘해'라는 말이 돌아왔다. 성인이 됨과 동시에 다양한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면서부터는 어디를 가든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이 먼저 눈에 들어왔고, 내가 일하는 동안 만난 친절한 이들을 떠올리며 최대한 좋은 손님이 되어주고 싶어 했다. 언제는 계산을 하던 도중 다른 것에 정신이 팔려 점원에 말에 대답을 않는 엄마를 살짝 타박했다가 한바탕 한 적도 있다. 그때 역시 '밖에서 그렇게 굽신거리지 말고 네 가족한테나 잘해.'라는 말이 돌아왔다. 밖에서 착한 척하지 말고 집에서나. 어릴 적 동생과 다툴 때도, 엄마에게 대들었을 때도 들었던 말이다. 그런 일이 잦진 않았지만 그 말이 아팠는지 꽤 기억에 박혀있다. 아직 억울한 것 같기도 하다. (ㅋ ㅋ) 그런데 어떡해. 살다 보니 나는 그냥 마주하는 사람들한테 친절하게 대하는 게 좋은 사람이다. 어릴 적 살던 동네에서 마주치는 모든 어른에게 인사를 하고 예쁨을 받던 시기부터 그래왔다. 스쳐 지나갈 사이더라도 굳이 주고받는 미소가 좋다. 관계에 서사가 쌓이고 감정이 생기면 좀처럼 돌아오지 않을 그 낯설고 가벼운 호의가 만드는 산들바람 같은 순간을 사랑한다. 그런 결에 있어 일본은 나에게 마음이 따뜻해지는 순간이 잦은 공간이다. 만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눈을 맞춰오고, 작은 말끝에도 대답을 얹어준다.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는 사람과도 가볍게 목례가 오간다. 그 배경에 '그냥 그렇게 배워왔다.' 거나 '영업의 일환이다.' 라거나 '미움받고 싶지 않아서'라는 마음이 숨어있대도, 그래서 앞뒤가 다른 나라 취급을 받더래도 내게는 마냥 예뻐 보인다. 어떻게 해야 상대를 작게라도 대접할 수 있는지, 조금이라도 폐를 끼치지 않을 수 있는지를 고민해 온 작고 큰 흔적들이 좋다.
아마도 내년 봄이면 한국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연장을 해서라도 더 있고 싶어지는 순간이면 매번 고민스럽기는 하지만, 아쉬울 때 떠나야 또다시 기회를 만들어 올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아무쪼록 그전까지 여기서 겪는 사소한 다정들을 표정과 몸짓에 잘 익혀서 가고 싶은 마음. 그리고 그걸 온전히 녹인 공간에서 사람들을 기다리는 상상을 한다. 그러다 보면, 이곳의 모든 게 더 생기 있어지고는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