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에서 본 내 인생의 첫 영화는 '킹콩'이다. 큰 스크린으로 본 첫번째 영화가 괴수영화였다. 어릴 때였기 때문에 물론 아버지와 함께였다. 12세 관람가 영화였는데 아버지는 왜 이 영화를 선택하셨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이상하기도 하다.
내가 본 '킹콩'은 2000년대 초반에 피터 잭슨이 만든 '킹콩'은 당연히 아니다. 지금 세대에게는 피터 잭슨의 킹콩이 가장 많이 알려져 있겠지만 (아니, 킹콩을 아예 모를 수도 있겠구나), 내가 본 영화는 1976년에 나온 '킹콩'이다. 킹콩 영화 중에 작품성이 가장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어린 시절 기억으로는 재밌었던 영화다.
지금 찾아보니, 우리나라에서는 1977년 1월에 개봉을 했었다고 나온다. 미국에서 1976년 12월에 개봉을 했으니 미국 개봉 직후에 한국 개봉을 한 셈이다. 40년 전에도 미국과 비슷한 시기에 개봉을 했었다니 신기하다. 아마 미국에서 흥행 1위에 오른 것이 컸을 것 같다. 게다가 보기 힘든 괴수 영화니까 더 많은 사람이 흥미를 갖지 않았을까
우리나라에서도 서울 관객 35만 명이라고 하는 것을 보면 흥행에 성공했던 영화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시절이었지만 아버지 손을 잡고 길을 따라 걸어 극장에 간 기억이 난다. 비록 단편 단편 조각나있는 기억이지만 몇몇 장면의 기억은 머리 속에 자리잡고 있다. 기억 속에 뚜렷이 남아있던 '국제극장'이라는 이름도 신기하다.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국제극장은 당시 광화문 동화면세점 자리에 있었다고 한다. 아득한 나의 기억으로는 지금의 광화문 거리 모습은 떠올 릴 수가 없다.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지금의 복잡한 길도, 넓은 차도도 기억에 없다. 그리 넓지 않은 차도와 그 옆의 인도를 따라 걸어가던 기억만이 남아있다. 밝은 날의 따스한 햇살과 지금은 보기 어려운 파란 하늘의 기억과 함께.
어린 나이에 극장에서 본 '킹콩'이라는 영화는 기억에 깊이 남았다. 영화 자체는 어떠했는지도 모르겠지만, 기억 속에는 몇몇 장면만이 있지만, 어린 눈으로 본 킹콩의 모습은 강렬했다. 영화의 완성도와는 별개로 큰 화면에서 보기에 적합한 영화였으니까. 킹콩이 나의 극장 첫 영화였던 것은 행운이었다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큰 화면에서 보는 거대한 고릴라 킹콩의 모습은 강렬했고, 무역센터 빌딩을 올라가는 모습 등 몇몇 장면은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아 있을 정도로 인상 깊었다. 단순한 줄거리에 볼거리를 위주로 하는 영화라서 나에게는 딱 맞았다. 특수효과가 좋은지 나쁜지 어린애가 얼마나 알겠는가? 첫 번째 영화에서 받은 인상이 이후 내가 영화에 빠져들고, 극장을 드나들게 했을지도 모르겠다.
영화 이야기를 잠깐 덧붙이자면, 걸작으로 꼽히는 1933년 킹콩과 비교해서 많은 것을 변화시켰고 그 대부분이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마지막에 올라가는 빌딩이 엠파이어스트레이트 빌딩에서 무역센터로 바뀐 것뿐 아니라, 여주인공이 좀 더 섹시하게 등장하고, 공룡 같은 거대 괴물 없이 조잡한 뱀 한 마리만 나오는 등 전반적으로 퀄리티가 많이 떨어진 영화였다.
무엇보다도 스톱모션으로 촬영한 1933년작과는 달리 사람이 탈을 쓰고 연기하는 방식인 1976년 킹콩은 액션이 상대적으로 부족했다고 한다. 거대한 킹콩을 만들었지만 제대로 동작하지 않았고, 그래서 손 나오는 부분만 거대한 손을 만들어 촬영하는 정도였다고. 사람이 연기하는 덕분에 표정 연기 같은 건 좋아졌다고 하는데, 킹콩 영화라면 액션이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그런 면에서 포스터의 모습은 상당히 괴리감이 있다. 거의 사기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포스터이다.
결과적으로 킹콩은 어린 시절에 본 것이 다행인 것 같다. 기억 속의 킹콩은 대단했으니까. 지금 다시 본다면 아마도 욕하면서 보고 있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