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캡틴서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COVID-19'이라는 역병의 창궐이 경기불황에 더해져 청년들에게도 떠밀듯이 '창업 권하는 시대'가 되었지만 그래도 많은 이들이 여전히 '남의 돈' 받는 일을 선호한다.
오랜 기간 월급 받다가 창업해 보니 정말 다른 점이 많고 생각보다 몇 배는 더~ 힘들다. 회사 울타리 밖에 나오면 '지옥'이라는 말에 어느 정도 동감은 하는 바이지만 그래도 이미 익숙해져 버린 '자영업자' 라이프 사이클은 직장생활을 상상만 해도 더는 못 견딜 거 같게 한다.
세상에 무서울 게 없던 천하무적 '대리'시절, 사업부장이 면담 질문이랍시고 '40대 중반이 되면 뭘 하고 있을 거 같나'라는 질문에 호기롭게 내 사업, 내 일을 하고 있을 거라고 대답했었던 것이 생각난다. 한 치 앞도 모르는 것이 사람 일이라지만 정말 '말하는 데로, 생각하는 데로' 되었다. 그러나 사업도 포함해서 모든 것이 말처럼 잘 되면 얼마나 좋을까! 말처럼 쉽지는 않지만 그래도 평생 일할 생각이라면 창업은 해볼 만하다.
회사든 브랜드든 작던 크던 한 조직에 속해 있을 때는 그 안에서 본인에게 주어진 일, 즉 직무에 충실하면 된다. 막내면 막내 일에, 때리면 대리 일에 맡은 바를 일단 잘 해내고, 그런 다음 팀이나 브랜드에서의 업무 연계와 스스로의 일에 대한 열정 등이 더해지게 되면 업무 범위가 넓어지면서 발전하는 계기도 만들 수 있게 된다.
우선적으로 본인의 직무에 충실해야 그에 상응하는 월급도 받고 평가도 매겨지게 되는데 그 '맡은 바' 직무를 다하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 조직의 일이라는 것이 혼자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다른 조직원들과 하면서 당연히 불평불만이 생기게 마련이다.
다행히 취업도 원하는 때에 할 수 있었고 패션업계에서 이름만 얘기하면 아는 기업들을 거치며 경력을 차곡차곡 쌓아 나름대로 '일잘러'가 되기 위해 달렸었다. 지금 돌이켜 보면 내가 해온 것들이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했다. 언제나 나에게 주어진 환경과 위치에 만족하지 않고 변화를 즐기며 조직의 단점을 시니컬하게 지적하기도 했지만 주어진 일에 책임감 있게 임하며 열심히 달렸다. 그리고 나중에 브랜드를 '창업'하면 '당신들보다, 지금보다는 더 잘할 수 있다'라고 마음속으로 호언장담 했었다.
퇴사를 하는 이유 중 회사의 룰이나 처우에 대한 문제보다는 사람으로 인한 이유가 더 크다고 한 설문 결과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나도 예전 어느 회사를 퇴사할 때 사유 중에 같은 이유가 있었던 적이 있었다. 서류에는 '개인 사유'라고 썼지만. 한 조직에 있어도 사람들마다 서로 가진 장단점이 다르고, 우리나라 조직 특성상 수직적 조직 문화가 많이 깔려 있기 때문에 윗사람이 어떻게 회사의 방향성이나 정책을 이해하고 업무 지시를 하느냐에 본인의 사내 입지가 좌지우지되기도 한다.
직장생활 연차가 작았을 때는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주어진 일만 열심히 하고 회사 생활을 놀러 다니다 시피했는데, 우여곡절 끝에 한 팀의 팀장이 되고 나서는 '나의 일' 뿐만 아니라 조직관리, 회사 내부의 정치적(?) 상황과 맞물린 생존에 관한 문제들까지 고민해야 했다. 당시는 별것도 아닌데 잠도 잘 못 잘 정도로 고민되고 정리 안 해주는 임원들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는데, 지나고 보니 그래도 어느 정도 갖추어진 회사, 갖추어진 조직이었기에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정리되고 안정적으로 팀워크가 생겨 갈 수 있었던 거 같다. 그만큼 울타리가 중요했던 거다.
하다못해 자잘한 사고를 쳐도 조직이라는 울타리 안에서는 어느 선까지는 용서가 된다. 같은 조직에 있는 사람들을 '가족'이라는 개념으로 묶으며 '정'을 내세운다. 우리나라에서나 통하는 일이겠지만 말이다. '같은 팀, 한 가족이니까 이 정도는 봐줍시다'와 같은 말로 인사팀과 합의한다. 회사에서 가족을 운운하다니 이게 웬 말인가~! 나의 가족, 나의 식구는 집에 있는데 말이다.
대리든 상무든 다들 회사라는 '울타리' 안에서 월급이라는 '동아줄'에 매달려 있기에 말도 안 되는 업무지시와 직무 배치가 있어도 버티는 거다. 더 이상 하는 일이 재미있지 않고 열정도 사라졌지만 그 '썩은 동아줄' 이 필요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버티는 사람들이 많다. 그 울타리가 영원히 지켜주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직장생활을 오래 한 사람들은 사업을 어서 시작하라고 하면 대뜸 '돈이 있어야 하지'라고 얘기한다. 물론 초기애 넉넉한 자본금이 있으면 스트레스를 덜 받고 일의 범위를 더 빠르게 확대 수도 있고 진행도 빠를지 모른다. 그런데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는가. 대부분은 피땀 어린 퇴직금, 통장을 따로 만든 인센티브, 집안 어딘가 숨겨둔 비상금, 거기에 퇴사 전 직장인 대출 등으로 자금을 마련한다.
나도 퇴직금이란 것이 있을 때는 아무 생각 없이 강남에 위치한 공유 오피스에 입주하고, 판매 추이는 생각도 하지 않고 사업용 상품 바잉을 브랜드에 있을 때처럼 똑같이 긍정적으로 MDQ를 꽉꽉 채워서 바잉 했다. 창업 생태계와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지 못한 탓이지.
창업을 하고 시행착오를 겪으며 방향성을 변경하여 구체화 해 가는 과정은 힘들고 고달프다. 지금은 그저 덤덤하게 말하지만 초기에는 하루에도 몇 번씩 감정이 오르락내리락했다. 너무 바쁘고 뭔가 잘 될 것 같아서 일을 추진하느라 다른 생각 할 겨를이 없어야 그러한 것도 느낄 수 없을 텐데.
1인 기업으로 혼자서 모든 고민과 결정을 진행하는 것이 초기에는 당연하고 편했었다. 그러나 점점 창업 생태계에 대해 자세히 알아 가고 창업의 각 단계에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한다'는 창업 전문가(?)들의 특강이나 교육을 들을수록 한계를 느끼고 내가 맞게 일하고 있는 건지, 방향성은 잘 잡은 건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쥐구멍에도 볕 들 날이 있다고, 우울한 상반기가 지나고 하반기가 되기 직전에 다행히 두 가지 지원사업에서 사업자금을 받게 되었다. 정부 지원사업에 지원하기 위해서는 사업계획서 작성이 가장 기본 업무인데 자료 조사부터 제대로 할라치면 그때는 정말 '동료나 직원이 있었으면 나눠서 하면 되는데..'라고 생각한다. 조직에 있었을 때처럼 '같이 일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거다.
이제 11월이라 지원사업 결과보고를 하는 시기인데, 사업 진행을 하고 각종 서류를 챙기면서 보고서까지 쓰려니 계속 무언가에 쫓기는 기분이다. 실질적으로는 내년도 사업계획을 준비하고 계획서에 대한 자료를 챙기며 초안을 정리하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인데 주객이 전도된 것 같아 지원사업에 대한 능동적 자세도 필요하다.
올해 상반기 까지만 해도 다시 조직생활로 돌아갈까 고민도 했었다. 그리고 6월쯤 '사업부장' 자리도 제안받았다. 그런데 막상 이력서를 내고 면접을 보고 조직 안에 뛰어들 생각을 하니 끔찍했다. 어떤 일이 펼쳐질지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될 날이 언제 올지 모르겠지만 사람들이 적응하며 살아가듯이 나도 이제는 창업인 생활을 많이 적응했다고 생각한다. 이런 시기에 월급이 꼬박꼬박 나오는 게 당장은 좋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스스로 뭔가 만들어 가고 발전시켜 가는 것, 내 아이디어에 동조해 주고 응원 해는 사람도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사업을 하는 가장 큰 이유 아닐까 싶다.
내년이면 창업 3년 차가 된다. 아직은 내세울 만한 제대로 된 실적은 부족하지만 내년 이맘때는 올해를 기억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또 다른 한해를 계획하고 싶다.
아이디어가 있다면, 자신감과 추진력이 있다면 시작하라.
같이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으면 더 좋다.
일단 시작하고 나서 방향을 정리해도 늦지 않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고 그 선택을 후회하지 않을 삶을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