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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틴서 꽃형님 Apr 01. 2020

착각은 자유라지만...

by 캡틴서

코로나바이러스 보다 심각한 ‘

사람이 열정이 지나치면 독이 된다고 했던가. 지나친 애정 또한 집착이 되고 거기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면 영영 거기서 허우적 대다가 나중에 후회하는 일이 발생하게 된다. 패션산업과 같은 소비재 산업의 특성상  업에 대한 막연한 동경과 호기심 때문에 지나치게 빠져들어서 일하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이런 말들을 하게 된다.  스스로도 그랬던 경험이 있었고.

다시 말하자면, 패션 업계에서 일하는 많은 사람들 중에서 자신이 속해 있는 브랜드나 회사를 자신과 동일시시켜 일상적 관계에서 조차 스스로  브랜드가 본인 자신인양 행동하고 말하는 것을 많이 경험했다. 월급 받고 하는 일일 뿐인데 그게  자기  인양 말이다. 좋게 말하면 회사가 원하는 오너쉽과 책임감이라 할 수 있고 나쁘게 말하면 거기에 중독된 심각한 '병'이라 할 수밖에. 그런 사람들을  때마다 '너는 오너가 아니고 월급 받는 사람이다.'라는 것을 매몰차게 상기시켜주곤 하지만 그땐 전혀 들리지 않나 보더라.



 

내가 일하는 회사 혹은 브랜드가 '나 자신'이  수는 없다.

'샤넬' 다닌다고 모두 '샤넬' 예술과 세계를 이해하고 일하는가, '벤츠' 다닌다고 스스로 '벤츠' 정도의 값어치가 있는가?  지극히 주관적인 잣대인지는 모르겠지만 진짜 명품 브랜드는 '명품'이라고 불리는 이유가  있다.  역사와 가치, 장인정신에 대해 제대로 알려고 하지 않거나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것을 구매할 자격도, 그곳에서 일할 자격도 없다고 생각한다.



명품 브랜드가 아니어도 자신이 속해 있는 조직과 브랜드에 대한 아이덴티티와 방향성을 모르고 아무 생각 없이 일하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런데 반대로 너무 깊이 빠져도 문제다.

특히 신규 브랜드를 런칭할 때는 더욱더 그런 일이 필요하기도 하지만 심각하면 좀 문제가 된다. 새로운 브랜드의 태생부터 참여하면서 브랜드 네이밍, DNA, STP, 4P(더 나아가 7P까지), 마케팅, VMD 등등, 기존에 있던 브랜드에서 반복적으로 진행되고 있던 일들을 시즌의 연속성으로 운영하는 작업이 아니라, 새로운 틀을 만들고 시행착오를 겪는 과정을 통해 차차 그 모습을 만들어 가게 된다. 이러한 과정과 시간들 동안 그 작업들이 내 모든 것 인양 온전히 집중하고 몰입하지 않으면 점점 지치고 스스로 포기하게 되는 경우가 생기게 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자기 최면을 거는 것일 수도.


신규 브랜드에서 얻은 

나의  첫 일터는 여성복 전문 중견기업의 신규 브랜드였는데 신입이니 일만 줘도 고맙다는 마음에 그저 멋모르고 아무 생각 없이 시키는 일만 했었다. 몇몇 회사를 거치고 경력이 쌓이면서 상품기획 업무에 대한 전후 프로세스를 충분히 습득한 후에 신규 브랜드 팀장을 맡게 돼서는 브랜드 론칭과 성장에 자연스럽게 집중하게 되었다.

신규 브랜드였기에 소규모로 구성된 인원, 매장이 거의 없다시피 했기에 적은 상품수에서 오는 제조원가 부담 스트레스, 뭘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고 우왕좌왕하는 마케팅 등 한마디로 '핵폭탄급 멘붕'들이 크게 압박해 왔었다. 그나마 '대기업'이라는 울타리 안에 있었으니 많은 협력업체들이 못 기이는 척하며 '내 브랜드'의 업무를 맡아주기는 했지만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갖은 불평들을 나부터 걸러내거나 귀를 막지 않으면 버틸 수 없는 상황이 자주 오곤 하였다. 또한 수익을 우선시하는 기업 특성상 첫 시즌부터 매출이 잘 나오지 않는다고 2년 차 되는 해부터 회의 때마다 브랜드를 '그만 사업을 접으라'는 소리를 해대었으니 내부에도 외부에도 그 어디에도 '우리 편'은 없었다.

그렇게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팀워크는 더 좋아졌고 런칭 후 4년 차 때쯤에는 매출 주도 상품이 탄생하고 브랜드도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서서히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다. 그렇게까지 되도록 버티기 위해서는 수없이 반복되는 자기 최면이 필요했다. 나 스스로를 다스리는 것뿐만 아니라 팀원, 브랜드 전 조직원들의 불만과 어려움을 듣고 거기에 반응하고 다독여 주면서 같이 갈 수 있게 이끌어 가는 것이 너무 중요했고 매우 여러 번 반복해야만 했다. 당시 내 업무 중의 3분의 2가 인원 관리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스스로도 브랜드 업무와 일상과 거의 동일시되고 귀가해서 조차도 업무에 대한 고민이 계속되면서 자의에 의한 주말 근무도 불사하게 되었다. 브랜드와 내가 혼연일체가 되는 지금 돌이켜 보면 매우 우스운 상황이었다. 

내가 없으면 안 될 거 같았고 모두가 나에게 해결해 달라고 했으니 말이다. 정말 심각하고 중대한 '병'에 걸려 버린 거다. 당시 그 브랜드 대부분의 조직원들이 비슷한 상태였다. 마치 마술에도 걸린 양 이 브랜드에서 본인이 없으면 안 될 거 같고, 론칭부터 만들어 왔기 때문에 이 브랜드는 우리 모두에게 '내 자식'이나 마찬가지처럼 여겨졌던 거다.     


월급쟁이와 오너의 다른  

이런 '병'은 일에 대한 책임감이나 의무감 같은 것들과는 또 다른 문제이다. 조직 구성원으로서 어느 수준의 월급이라는 보상을 받는다면 당연히 그에 상응하는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만 한다. 그러나 '브랜드 = 나'라는 것이 되는 순간은 다르다. 그 론칭한 브랜드가 업계에서도 서서히 주목을 받기 시작하면서 구성원 모두가 뭔가 모르는 '남다름', '우월함'을 느끼고 속해 있는 브랜드를 얘기할 때마다 힘이 들어가곤 했다. 남들은 범접하지 못하는 '우리만의 리그'로써의 자부심, 자긍심이 정말 대단했던 거다. 안팎으로 그러한 분위기가 조성되었기 때문에 브랜드를 위해서는 시너지는 충만했으나 나중에 합류한 인원들은 초기 론칭 멤버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텃새'를 적응하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다들 그 '병'에서 쉽게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자기기만과 합리화로 허우적 대기만 했던 거다. 그러나 어느덧 정신 차려보면 그저 한 회사의 오너가 브랜드와 그 이미지를 만들고 매출을 일으키기 위해서 돈을 주고 사용하는 '월급쟁이'일뿐인데 말이다.

패션인들이여~ 아니 직장인들이여~  제발  중병에는 심하게 걸리지 말기를

평생 월급이라는 '당근'을 받고 이용만 될 수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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