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캡틴서
브랜드가 많지 않던 90년대에는 VMD 업무에 대한 전문성이나 중요성이 크게 강조되지 않았다. 심지어 VMD를 '디스플레이어(displayer)'라고도 불렀다. 그 의미대로 '옷을 진열하는 사람', '마네킹에 옷 입히는 사람'이었던 거다. 영업팀 직원들이나 매장에서 특히 더 그렇게 부르곤 했는데 그 호칭이 어찌나 듣기 거슬리던지, 당시 연차가 얼마 되지 않았고 내 업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왠지 그 일을 하는 사람들을 폄하한다는 느낌이 들었었다. VMD는 돈만 쓰는 부서라고 타박하고 무조건 예산을 줄이고 아무런 결과물도 나올 수 없게 하고... 무식하기 짝이 없는, 정말 옷에 브랜드 라벨만 달려 있으면 팔리던, 마케팅 전략이라는 것은 전무하여 편하게 브랜드 운영을 하던 시절이었다.
이제는 그렇게 브랜드를 운영하지도 않겠지만, 그렇게 했다가는 폭망 하는 지름길이다. 매장 윈도, 마네킹, 집기, 소품 등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배치하느냐가 매장 유입 고객의 수를 결정하니까. 매장에 머물러 있는 시간이 많아야 결국 구매로 연결될 확률이 놓아지게 된다. 이 정도는 VMD에게 기본이 되는 일이다.
온라인과 모바일 매출 비중이 급속도로 증가하는 요즘 VMD가 할 일은 그러한 기본적인 것 이상이어야 한다. 소비자들이 오프라인 매장에서 뭔가 경험하고 사진 찍고 즐기고 갈 수 있는 요소들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복합적으로 챙기고 알아야 할 것들이 더 많아진다. 그리고 VMD도 계속해서 진보해야 하고.
왠지 이유는 기억나지 않지만 막내 MD 시절부터 유달리 VMD 부서의 사람들과 친했다. 상품에 대한 정보 전달과 매장에서 나온 의견 교환 등 끊임없는 커뮤니케이션, 그리고 종종 의견 대립으로 인하여 부딪히게 되는 사업부장이나 영업팀이라는 '공공의 적(?)'이 존재해서였는지 모르겠다, 일에 대해서는 크고 작은 언쟁도 있었지만 끝나고 나서는 즐겁게 뒤풀이하던 사람들도 VMD팀이었다. VMD는 업무 특성상 여려 부서와 연관되어 커뮤니케이션해야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다수가 주도적이고 추진력 있으며 뒤끝이 없는 성격들을 가지고 있기에 잘 모르는 사람들은 '쎄다' 고 한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주관적인 의견이니까.
2천 년대 들어 브랜드의 경쟁이 심화되는 시장 다변화가 시작되고, 더 차별화되고 체계적인 전략이 필요하다고 느낀 브랜드들은 점차적으로 VMD나 홍보 마케팅에 관심을 가지고 비중을 두기 시작했다.
시즌별로 정해지는 상품 구성과 디자인의 방향성을 수립할 때 강조하는 트렌드 컬러나 판매 주도 아이템(Key Item), 월별 & 주별 주력 상품의 스타일 그룹핑(grouping) 등에 대한 정보가 VMD에게 제대로 전달이 되어야 매장 상황에 맞게 계획을 수립하고 연출을 할 수 있게 된다. 유통 형태, 매장 평수, 매장에 들어가는 헹거의 길이와 개수, 기타 연출을 위한 소품들(전문용어로 ‘오브제'라 함), 마네킹 타입과 구성, 창고 위치 등은 반드시 고려해야 하는 요소인 것은 물론이거니와, 플래그쉽 스토어나 컨셉 스토어를 계획할 때는 거의 집 한 채를 새로 짓는 수준의 인테리어(interior; 내부)나 익스테리어(exterior; 외관) 계획이 필요하다. 좀 더 한다면 조경계획 까지도 이해하고 준비해야 한다.
같이 일했던 모 브랜드 VMD는 플래그쉽 스토어 공사 때 매장 루프탑에 정원을 만들어야 해서 업체와 함께 흙을 실어 올리고 식물들을 옮겨 심는 작업을 하기도 했다. 나는 그 결과물만 확인했지만 그녀가 보여준 사진과 얘기들로 얼마나 힘든 작업이었는지 상상이 되었고 너무 그려졌다.
VMD는 직접적으로 상품기획에 관여하지는 않지만 현장에서 상품 컨셉을 제대로 구현하고, 소비자들이 편안한 동선에서 움직이며 상품 구매까지 결정하도록 유도하고, 더불어 매장 직원들이 판매활동을 하는 데 있어서 불편함이 없도록 하는 매장 계획을 세워야 한다. 그래서 오히려 기획자들보다 더 상품에 대한 객관적이고 입체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어떤 때에는 매장 리터칭 작업(주기적으로 매장을 돌며 상품 연출이나 집기 상태 등을 점검하는 업무)을 나가서 매장 직원과 소비자를 대하다가 본사에서 놓치게 되는 반응과 의견들을 대신 전달해 주는 역할도 한다. 어쩌면 본사와 현장(매장)을 소통하게끔 해 주는 '전달자'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는 경험을 중시하는 체험 마케팅, 온라인 & 오프라인 상품 이원화 등이 대세로 특히 온라인에서는 디지털 세대들이 소비를 주도하고 있기에, 기업에 속해 있는 많은 브랜드들이 어떻게 하면 오프라인 매장에 고객들을 유입시킬까 하는 고민이 많다. 그렇기 때문에 매장의 형태도 다양해지고 상권별로 차별성을 두고 매장을 계획하고 구성하는 것이 보편화되었다.
브랜드 매니저나 중간관리자들이 이러한 변화와 흐름을 이해하고 VMD와 마케팅, 영업팀의 업무를 조율해야 하는데, 잘 모르면서 무조건적인 계획이나 통제, 지시를 하는 경우들이 많다.
나의 경우에도 신규 브랜드 준비를 하면서 매장 인테리어 공사를 담당할 업체 선정이라든가 플레그쉽 스토어 상품 구성에 필요한 집기, 소품 등에 대한 의견 교환을 수도 없이 했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까지는 VMD 업무를 이해하고 자신 있게 설명할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또한 어쩌다가 대학 강의 과목 중에 VMD 수업을 맡게 되어 VMD가 되고자 하는 학생들에게 기본적 이론과 함께 실무자 특강으로 실질적이고 생생한 실무의 정보를 전달해 줄 수 있었다.
본인의 업무가 아니어도 모두 연관되어 있고 특히 VMD의 일들은 소비자들이 만나게 되는 상품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브랜드에서 어떠한 직무를 담당하고 있더라도 항상 관심을 가지고 소통하고 의견 교환을 해야 한다.
VMD는 기획력, 공간감, 상품 이해 등 다양한 시각과 능력으로 그것을 종합적으로 매장이라는 '그릇'안에 실현시키는 일(비주얼 머천다이징)을 하는 직무(비주얼 머천다이저)라고 정의하면 맞을 것 같다.
제대로 된 VMD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은, 무슨 일이나 비슷하다고 생각되지만, 경력이 없을 때는 아르바이트든 인턴이든 다양한 VMD 역할을 필요로 하는 브랜드에 가서 경험을 쌓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한 경험들이 자기화되고 어느 정도 스스로 적용이 가능한 실력이 되었을 때는 어떠한 브랜드에서 일을 하게 되더라도 중심을 잡고 일할 수 있다. 이런 부분은 상품 기획자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고 생각한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VMD는 체력이 좋고 튼튼해야 할 수 있다고 얘기한다. 매장 오픈이나 리뉴얼을 위한 현장 근무, 매장 라운딩을 위한 지방 출장 등 타 직종에 비해 외근이 정말 많은 편이다. 건강은 일반적으로 직장인들에게도 당연히 적용되는 요건이 라기보다는 VMD는 다양한 사람들과 대면 업무 하는 것에 대해 거리낌 없는 적극적인 성향을 가지는 것이 더 중요해 보인다.
VMD는 브랜드에서 매출을 일으키는 데 그 어떤 직무 보다도 직접적이고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에 자부심을 높이 가져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