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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틴서 꽃형님 Oct 25. 2019

뭐든지 다 해야 하는, 할 수 있는 MD

by 캡틴서

의류학과를 다니면서 애초에 디자이너보다는 MD(머천다이저)로 일찌감치 진로를 정해 두었다. 앞만 보고 쭉 달려가야 직성이 풀리는 성향상 MD가 잘 맞을 거 같았고, 한편 막내는 '반드시' 피팅이 되어야 된다는 다지이너의 현실이 용납 안 되기도 했다. 

당시 국내에 패션 기업이나 브랜드에 대한 선택이 많지 않았고 다들 '들어가기만 하면 편하다'는 대기업 공채 시험을 추천했었는데, 패션 전문(?) 기업에 가야 일을 제대로 배울 수 있다고 고집하며 말도 안 되는 포트폴리오를 들고 개인 디자이너 브랜드부터 국내 패션 기업 등 수도 없는 면접을 보고 다녔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ㅋ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 포트폴리오는 거의 쓸모없었고 그저 일하고자 하는 의지, 열정, 마음가짐 등등 뭐 이런 자세가 있고 그걸 알아 봐주는 사람을 만나면 어디라도 들어갈 수 있는 거였다.




MD = 뭐든지(M) 다한다(D)~?!

엠디(머천다이저)는 '뭐든지(M) 다한다(D)'의 약자라는 말을 당시 선배들로부터 농담 반, 진담 반 귀가 아프도록 들어왔다. 우스갯소리로 하는 얘기였지만 그 말이 어느 정도 맞다고 인정해야 할 것 같다. 좋은 의미던 아니든 간에 말이다. 그리고 지금도 계속 그렇다고 얘기하고 싶다.


나의 신입 시절, IMF 직후였던 사회, 경제적 상황상 기업들은 주 6~7일을 근무를 해야 하기 일쑤였고 지금처럼 '워라벨'이고 뭐고 해서 어린 연차 직원들을 먼저 퇴근시키고 뭐 그런 거 없었다. 

출근 첫날은, 하필(?) 신규 브랜드로 입사하는 바람에 때마침 품평회 준비 중이라고 번호표인지 뭔지를 출력하고 복사하고 자르기를 반복했고, 품평용 샘플을 보기 위해 대기하고 도와주고 하느라 자정을 넘겨서 퇴근했다. 막내 사원이니 바코드 기계로 가격택 출력하기, 가격택 줄에 끼우기, 박스 싸고 뜯어서 정리하기 등 갖은 잡무를 해내느라 정신이 없었다. 지금은 막내들이 절대 하지 않는 일이지만, 그때는 패션기업 엠디들이라면 당연히 그렇게 일하는 줄 알았고 뭐든지 다하는, 해야만 회사를 다닐 수 있는 시절이었다. 가끔은 '이건 정말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지만 그 어려운(?) 시절에 취업해서 월급을 받게 되고 부모님의 용돈으로부터 자유로워진 마음에 꾹~ 참고 이겨내 보기로 했다. 그러한 업무내용들과 방식은 5~6년 차 까지도 계속되었던 거 같다. 그런 시절은 겪었기 때문에 나중에 중간 관리자가 되었을 때도 후배 사원들이 어쩌다 유사한 매우 기본적인(?)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 필요성에 대해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할 수 있었다. 

그러나 21세기는 시대가 바뀌었기 때문에 지금의 후배들에게 '우리 땐 말이야, 어땠는지 알아?..., 그땐 더 했어..., 지금이라 다행인 줄 알아' 등의 말은 하지 않았다. 그런 말은 절대 하지 말아야 한다. 해도 이해 못하고 하는 순간 바로 '라테족(얘기를 할 때마다  '나 때는 말이야..'라고 말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신조어)', 즉 '꼰대'가 되는 거니까.

그저 당시에는 패션 중소기업들의 업무 프로세스가 제대로 구축되어 있는 곳이 없었고 일본 기업들의 형식을 받아들인 곳이 많아서 환경이 더 열악할 수밖에 없었다고 해두자. 



커뮤니케이션은 일상이다.

엠디뿐만 아니라 모든 직군이 다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엠디들은 경력이 쌓여가면서 본인의 업무 영역에 대해 생각을 하면서 일해야 한다. 엠디는 디자이너, 생산, 영업, VMD, 마케팅 등 다양한 업무 담당들과 연계된 업무를 처리해야 하는데, 이때 다른 팀의 업무에 관심을 가지고 엠디 업무와의 연결고리를 생각하면서 일을 한다면 경력이 어느 정도 되는 시점에 막중한(?) 직책이 주어지는 시기가 빠르게 올 수도 있다.

 

나의 경우 상품기획 담당만 하다가 갑자기 신규 브랜드 상품기획 팀장으로 발령받았었고, '팀장은 처음'이라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하루하루 계속 뭔가 실수를 하고 있는 듯한 불안함의 연속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조직의 인원 구성이 최소여서 담당 엠디 두 명 + 마케팅 담당, 디자이너 두 명으로 나의 팀원으로 있었다. 그래서 브랜드 업무가 진행되게끔 파악하고 움직이는 동안에도 이 팀, 저 팀 아니면 모두 모아놓고 업무를 쉴 새 없이 파악하고 진행을 체크하고 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움직여야 일이 돌아가니까 말이다. 그 바람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마케팅 업무를 디테일하게 이해하게 되었고, 혼자였던 영업 담당과도 상품의 출고나 배분 등에 대한 업무협조와 논의를 끊임없이 했었기 때문에 영업 업무도 더 자세히 알게 되었다.

그렇게 한 브랜드에서 4년 정도 정신없이, 바쁘게 움직이다 보니 어느덧 전체 업무 과정과 조율에 대해서는 내가 아니면 안 되는 상황이 오기도 했었다. 모든 사람이 그렇게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정말 많은 시간과 커뮤니케이션을 했고 업무를 보는 시각과 태도도 많이 바뀌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그다음 이직 때에는 브랜드 매니저로서 더 큰 역할로 일할 수 있었고 업무처리도 그만큼 더 업그레이드될 수 있었다.



브랜드 매니저 되기는 준비하기 나름

이렇듯 타 부서의 업무 프로세스, 업무에서 쓰이는 용어 등 눈높이를 맞춰서 일하려고 노력하면 소통과 협조도 좋아지고 업무처리도 빨라진다. 그러면서 나도 모르는 순간에 브랜드 전체 업무의 프로세스에 대해 이해하게 되고 업무 우선순위를 이해하는 능력도 생기게 된다. 


그래서 특히나 뭐든지 다 (이해) 할 수 있는 머천다이저로써의 능력을 갖추어 두면 언젠가는 브랜드 매니저도 될 수 있는 자격이 되는 거다.

빠르고 트렌디한 패션업계에서 일하는 MD로서 브랜드 매니저는 해 봐야 뭔가 스스로 '어느 수준 정도로 일했다'라는 성취감도 가질 수 있게 될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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