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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틴서 꽃형님 Oct 10. 2019

패션이 3D 업종이라고?

by 캡틴서

모든 것이 불안정한 시기에 직장생활을 시작한 90년대 말, 그 시절 패션 브랜드에서 일하던 MD, DS, VMD들은 우리들의 일에 대해서 3D (= direct, dirty, dumb) 업종이라고 농담 반 진담 반 얘기하곤 했다.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자부심과 자긍심을 가져도 모자랄 판에 3D 라니.



DIRECT 

패션기업뿐만 아니라 조직으로 구성된 대부분의 업무들이 타 부서와 연결되어 있어서 절대 단독으로 결과물을 낼 수 없다. 브랜드가 잘, 제대로 운영되려면 결과물을 위한 커뮤니케이션이 매우 중요하다. 모두들 원하는 업무 결과, 목표하는 업무 결과를 이루려면 항상 직접적인 지시와 설명, 직접적인 질문이 필요하다.

더군다나 패션업계에는 더욱 다양한 개성들이 모여있어서 '대놓고' 내용 파악하는 게 너무 중요하다. 엠디는 디자이너와, 디자이너는 엠디와, 엠디는 영업과, 브이엠디는 엠디와... 특히 엠디, 디자이너들은 정말 많은 언쟁을 한다. 크고 작은 것으로 잦은 언쟁을 하면서 또 그 시간만큼 친해지게 되는데(아닌 경우도 있지만), 상대방 감정 생각한다고 둘러서 얘기하거나 생략하거나 하면 오히려 역효과만 낳는다. 어려운 문제일수록 매너를 지키되 대면하여 직접적으로 얘기해라. 특히 연차가 적을수록 헷갈리거나 모르겠으면 대놓고 물어봐야 된다. 그 대상이 설령 임원이라도. 예의만 갖추면 되지 않는가. 

부모님한테는 말대꾸도, 대들기도 잘하면서 윗사람한테 직접 질문하는 게 뭐가 무섭나. 임원이나 윗사람들은 질문을 기다린다.

업무에 대한 결과나 실수는 쉽게 용납되지 않는 것이 조직이기 때문에 직접적인 커뮤니케이션은 매우 중요하다.



DIRTY 

dirty (더러운) 사람이 되지 말라는 역설적인 표현이라고나 할까~? 여러 가지 의미가 있겠지만, 본인 주변 정리, 사람 관계, 업무처리 등 완벽할 수는 없지만 '더럽게'는 하지 말라는 말이다.

패션업계는 특성상 샘플, 서류, 집기 등으로 사무실에 박스가 쌓여있지 않는 날이 없다. 그러나 그것도 습관이다. 샘플은 헹거에, 서류는 서류철이나 출력 말고 공유폴더 저장하기로, 집기는 분리해서 필요한 것만 가지고 있으면 사무실도 어느 정도 정리는 된다. 본인 자리도 마찬가지다. 업무 중에는 어쩔 수 없지만 적어도 퇴근할 때는 정리는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어떤 디자이너 동료는 작업지시서 그리던 펜만 딱 놓고 사라져 버려서 퇴근인지 자리 비운 건지 헛갈릴 때가 너무 많았다. 


많은 협력업체를 상대하면서 관계가 형성되고 그중 친해지는 사람도 생기는데, 소위 말하는 '갑과 을의 관계'라는 개념으로 업체들이 먼저 성의 표시(?)를 하는 경우들이 있다. 2천 년대 초까지만 해도 너무 만연해서 집을 이사한 엠디, 차 바꾼 영업 담당 등 특히 매출액이 큰 브랜드에서는 허다한 일이었다고 한다. 물론 지금이야 협력업체들이 '갑'인 시대이기 때문엔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말이다. 만약 협력 업체에게 부탁을 하고 싶으면 당당히 지불하거나 해당 금액을 업체에게 줄 마감 금액에 산입 하거나.. 방법은 많다.

털어서 먼지 안 나오는 사람 없다지만 최대한 깨끗하고 공정한 거래를 하면 본인에 대한 이미지도 그렇게 각인되어 남아있게 된다. 



DUMB

패션업계 브랜드에서는 적어도 6개월 빠르면 1년 이상 앞서 가는 사이클로 일을 하게 된다. 계속해서 맞물려 돌아가는 사이클에 때로는 신나게, 때로는 정신없이 바쁘게 일하다 보면 계속해서 그렇게 달려가고만 있기 때문에 다른 소식에는 둔감해지고 심하게는 '멍청'해 진다. 요즘이야 '워라벨'이라는 것이 대두되어 있기 때문에 윗사람이 가장 먼저 출근해서 가장 늦게 퇴근하고 일도 가장 많이 한다지만, 예전에는 윗사람 일할 때 일하고 윗사람 놀 때 같이 맞춰서 놀고 다시 들어와서 일하고... 그랬다. 

나의 경우 입사 첫날부터 밤 12시 넘겨 야근을 했기에 그런가 보다... 하고 20년을 보낸 거 같다. 그렇게 일하고 월급 받아 잇템(it+item) 지르고 음주가무를 즐기고 나면 시간은 정말 잘 간다. 그래서 일하다가 커뮤니케이션이 잘 안되면 서로 'dumb and dumber'라고 놀리기 일수였다.


예전에 그랬다고 지금도 그렇게 사회생활을 하면 '멍청하고 바보 같은,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기성세대가 된다. 몇 년 전, 온라인 쇼핑이 무섭게 상승무드를 타고 있었던 때 , 브랜드들도 온라인 & 모바일 구매에 대한 전략을 심도 있게 세우기 시작할 때 일이다. 난 이미 직구며 각종 온라인 사이트들에서 구매도 해보고 트렌드 리더들 만큼 섭렵하고 있던 터라 프로세스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그런데 전략 수립을 리드해야 할 4~5년 차이밖에 나지 않던 나의 상사라는 사람은 온라인에서 한 번도 구매를 해 본 적이 없다는 거다. 우리 어마마마도 X마트 모바일 VIP 고객이신데 말이다. 그분에게 프로세스를 이해시키는데 정말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경험을 해보고 안 해보고는 정말 차이가 크다.


21세기는 내가 'X세대, 오렌지족' 등으로 불렸던 90년대와 환경, 정보, 라이프스타일 등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다르다. 누구 못지않게 편안하고 풍족한 시대를 보냈지만, 나보다 아래 세대들, 더 나아가 'Z세대' 들이 뭘 좋아하고 어디에 가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 모두 다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가서 느끼고 알아보려는 노력은 해야 된다. 그래야 '꼰대'라는 소리도 덜 듣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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