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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숙 Dec 05. 2023

골동품

골동품   

        


 우리는 이미 저 길을 지나 왔다 

 오래 바라본 사람에게나 겨우 발견될 법한, 담장과 나무들의 변화를 혼자 중얼거리는 동안 여름 지나 가을 나무 사이로 새들이 사라졌다    


 창문들은 아주 늦게까지 불이 켜지지 않거나 어떤 창문은 아주 늦게까지 켜져 있다

 어느 날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는다     


 멸망하는 왕국의 마지막 증인을 거부하며 누군가는 떠났다

 까마득히 잊힌 자들이 살고 있는 곳을 수소문하고 다닐지 모른다

 늙은 말의 쩔렁이는 무릎을 탄식하며 덧붙일 지도 

 누군가여, 나를 좀 죽여주지 않겠습니까?   

   

 기원도 결말도 없이 깊어가는 이 ‘결국’의 밤 

 나는 아직 살아있고 어디로도 가지 못했다   

    

 그저 평범해서 눈길을 끄는 곳이라고는 없는

 오랫동안 열심히 바라보는 사람만이 알게 될  

 한없이 적요한 것들의 격렬함을 상상하면 


 사라진 새들이 남긴 저 붉은 잎들 한꺼번에 나무 아래로 곤두박질치고 

 다만 가을의 치세가 끝나는 것이다 

 네가 돌아올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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