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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숙 Dec 05. 2023

진눈깨비

진눈깨비 



 우리가 구름이지 않은 이유는 없다 

 차갑게 식어 있는 물건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는 동안 어제처럼 뭉글뭉글 익숙해지는 얼굴 


 끝내 나누지 못했던 말들은 예언이 되어 문득 와서 무너지며 완성되고


 그 텅 빈 곳에서는 한쪽을 잃었거나 나일론 실 같은 걸 발목에 칭칭 감은 새들 걸어 다닌다


 가끔 어떤 소리가 희미하게 들리기도 한다, 더 이상 떠나지 않는 새들이 바다의 기억을 쪼아대는, 부리가 부서지는 줄도 모르고            


 크리스마스는 짧고 추웠다

 어깨를 움츠린 채 서로 떨어져서 서성이는 사람들 사이  

 잠들지 못하는 아픈 아이의 밤은 희고, 돌아갈 곳 없는 영혼처럼 마른 나무들이 길에서 비껴선 채 얼어갔다

 미처 수거하지 않은 플라스틱 트리 꼭대기에서 은박별 반짝였다


 작별의 문장은 이미 충분히 완성되었고 오래 오래 건네야할 다정한 인사가 남았을 뿐  


 관측 기록도 없이 다만 이론적으로 오후에 지는, 새벽이 되어서야 잠시 동쪽 하늘에서, 사라지는 중인, 안개 끝자락 같은 


 그믐이었다


 우리의 모든 시도는 그의 유서와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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