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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숙 Dec 05. 2023


雨氣

雨氣     



  구름과 안개 무성한 풍경을 거느린 채 조금씩 낡고 다친 곳을 들킨다, 자본주의 하늘 아래 산 것도 죽은 것도 별다를 것 없이   

 

  점점 창백해지는 나무 아래로 사람들은 어깨를 적시며 오가고 흐릿한 수배 사진 속 한 노인도 비를 맞는다

  잡다한 전과가 수두룩한 칠십이 넘은

  어느 야유회에서 찍은 것 같은 단체사진 끝자락에 서 있는, 어디서 본 것도 같은   

  

  답장이 오지 않을 것을 이미 아는 편지를 보내고 우체국 게시판 앞에서 서성일 때  

  빛바랜 포스터 글자마다 찍히는, 길에 떨어져 그저 제 이마를 찧고 있는 

  저 웅얼거림들     


  너를 잃고서야 어린 아이처럼 겨우 더듬더듬, 네가 행복할 거라 믿으면 너를 침묵시킬 수 있을까, 네가 침묵하면 나는 행복해질까

   

  부서진 새들의 흰 뼈들을 싣고 파도는 끊임없이 도착하고 있는데

  사라져간 것들의 자취 돌 속에 간직되듯 

  너는 기억 속에서 오랫동안 지금처럼 단단히 견뎌낼 각오를 하는데  

      

  희망과 결실로 가득 찬 실패야말로 완수될 우리들의 세계

  제 이름인 채로 낡고 다치지 않은 건 어둠뿐  

   

  우리에게 어울리는 날씨는 언제나 흐림

  비를 피할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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