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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숙 Dec 05. 2023

손톱달

손톱달 


     

그 다리의 풍경이 변했듯 너의 삶도 변했다

비둘기들은 차도에 들러붙은 빵조각을 쪼고

며칠 전 사건은 흰 스프레이로 그려진 윤곽선을 남겼다

언제나 돌이킬 수 없는 것들을 다 쏟아내고 너는 어디로든 간다


그 다리에서 너는 들리지 않을 노래를 불렀다


아직 친해지지 않은 아이들이 검은 입술을 하고 지나갈 때도

강기슭 잿더미 속에서 타다 만 흰 옷자락 흩어질 때도  

낡은 배 하염없이 삐걱거릴 때도


다리 그림자는 언제나 강물의 고요 쪽으로 기울었다

노래가 끝난 뒤의 고요는 더 격렬했다


이따금 영화관에서는 흑백영화를 상영한다. 

죽은 여배우가 뽀얗게 웃으면 익숙한 자세를 잠시 고쳐 앉고

소설의 처음이나 마지막 문장 같은 표정으로 

사람들은 묵묵히 극장을 나선다 


회색 구름 사이로 주황빛 해파리 떼 몰려오고 

아무도 돌을 던지지 않았는데도 저녁 창문들 일그러지고

아름다운 것과 아름답지 않은 것이 해파리 떼 속에서 너울거리고 

관광객들은 이리저리 흘러 다니며 거기가 어디든 등을 대고 사진을 찍고     

 

자신의 성실한 동료들에 대해 이야기 하듯

검은 이끼로 덮인 그 다리를 건너 

나중에 올 구름을 안다는 듯  

어떤 별은 꺼질 듯 말 듯 

마지막 남은 숨결까지 후후 내 쉬며 

그 흐릿한 빛을 흩어놓고


너는 이제 더 이상 다른 무엇이 되려 하지 않는다   

모든 확신을 기쁘게 거둔다

     

아무도 없는 곳을 향해 

꾸벅 인사하는 기타를 맨 소년 

아무도 청하지 않은 노래는 

아아오오우우 다시 시작되고


너는 언제까지라도 거기에 서서 박수를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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