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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숙 Dec 05. 2023

건널목 옆 정류소

건널목 옆 정류소  

    


정류소의 사람들은 같은 방향으로 얼굴을 내민다. 

햇빛부스러기를 쪼아대느라 부리가 뭉툭해진 옆얼굴들    

  

그래도 더 기다릴 일이 남은 듯 

더러워진 붕대를 감고 목발을 짚은 나무들 

좀처럼 자세를 바꾸지 못한다

가게 앞 묶인 늙은 개는 무엇이든 오래 바라본다

참을성 있는 침묵에는 이빨이 없다.

새벽 정류소에서 빵 봉지를 뜯던 

작업복 청년의 그 표정 같은     

 

이곳은 종종 세상의 끝  

 

우는 아이에게 손찌검을 해대며 이루어진 모든 영광과 

더 새롭고 흥미로운 죽음을 기다리는 티브이를 보며 

식탁에 앉아 오늘의 일용할 죽음을 발라 먹는다

     

문득 모든 것이 명료해지는 아침은 조용하고

커튼이 잠시 날아오르는 순간처럼 투명하기도 해서 

식탁 위의 그릇과 시계와 옷걸이에 걸린 외투와 

서둘러 걷는 사람들의 뒤꿈치마다 

보란 듯 엎질러져 있는 것들을 발견한다

그러나 그 시간은 오래 머무르지 않는다


자루에 그득했던 푸른 콩을 쏟아버린 저녁이면 

발톱이

목뼈가

껍질도 없이 물컹이는 노란 알이 날아오른다 

꿈은 문이 없어 닫을 수도 열 수도 없다 

어디로든 도착하게 될   

   

건널목에서 마주 선 사람들은 서로를 쳐다보지 않는다

신호등처럼 깜빡이던 사람은 빈 손 바닥을 허공에 내밀고

건널목을 건너는 사람들은 빠르게 서로를 지나쳐간다

      

버스 한 대가 뒤뚱이며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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