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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숙 Dec 05. 2023

반구대암각화

반구대 암각화  

 


  구부정하니 기울어진 너의 어깨를 보며 너를 사랑하게 되겠구나 했다, 늘 너의 뒤에서 걷는 게 좋았다


  새, 거북이, 고래, 사람들, 마을의 염원을 늦게까지 바위에 새기는 동안에도 

  너의 그림자와 어느새 어깨 위에서 반짝이며 쏟아지는 별들 붉은 그릇에 모아 나는 아침을 빚었다


  새들이 날아오르고 고래들이 너울거리고 선량한 거북이들이 등에 예언을 그려가던 나날들


  나무 계단을 삐걱삐걱 내려와 나는 기억하는 것이다


   시간은 넝쿨처럼 엉켜 시들어 가고 비가 올 것 같은 냄새 눅진하고 나무들 휘적거리고 뭉개진 새들이 제 몸을 버린 채 휘적휘적 날아오르고  

   

  그때는 나무와 새와도 말을 할 수 있었어, 불에 그을린 너의 심장, 달같이 뿌듯해서 겁도 없이 세상의 가장 외진 곳까지도 갈 수 있었지


  물줄기 마르고 모든 게 사라진 겨울 숲에서도 

  언제나 살아있는 건 등줄기 뻐근해지도록 너와 내가 나눈 첫 눈빛 


  일어난 일은 모두 가능한 일들이었고, 일어나지 않은 일은 여전히 가능한 일들 


  바람에 흩어지는 얇은 구름조각 사이로 시끄러운 소리나 야단스러운 조짐 없이 

  어디서든 태어나 예언이 될    


  너와 나는 강을 사이에 두고 매일 안개 자욱한 숲을 바라보고 있다


  누구도 영원히 단념하지 못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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