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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은영 Oct 21. 2024

가족이라고 늘 사랑할 수는 없지

달밤에 열리는 더문쌤의 시크릿 수업 9편

"지이잉-" "지지이이잉-" "지이잉-"


잠깐의 선잠에 빠져들고 있던 The moon 선생(더문쌤)의 의식은 귓가를 울려오는 핸드폰 진동음을 느끼며 다시 또렷해져 갔어.


다시 잠에 들기에는 늦었다는 걸 알아차린 그는 재빨리 핸드폰이 놓인 위치가 어디인지 찾아내려고 했지. 귀찮은 듯 아닌 듯 오른팔을 열심히 뒤척거리며 움직이던 그가 침대 베개 아래 구석 어딘가에서 핸드폰을 끄집어냈어.


인내심 있게 울리던 핸드폰 진동 소리가 꺼지기라도 할까 싶은 다급한 마음으로 수화기 버튼을 누른 그의 귓가로 아주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어.


"여보세요? 벌써 자니??"

"아니에요. 말씀하세요."


그렇게 시작된 통화는 쉽사리 끝날 기새가 없었어. 통화는 계속 이어졌지만 The moon 선생(더문쌤)이 길게 별다른 이야기를 털어놓는 것 같지는 않았지. 긴 긴 하소연 같은 음성이 이어져 나오면 거기에 '네.' '네, 알겠어요."라는 자동 반응만 되풀이되는 것 같기조차 했어.


"네, 엄마. 이제 그만 늦었네요."

"엄마도 쉬셔야죠."

"알겠어요, 제가 형한테는 전화 한 번 해볼게요."

"주무세요."


하는 마무리 인사로 통화를 끝낸 더문 선생님이 시계를 보니 어느덧 밤 11시 10분.

통화 기록을 보니 32분의 시간이 지나가 있었더라고.


The moon 선생(더문쌤)은 깊은 한 숨을 한번 들이키더니, 냉장고를 향해 걸어갔어. 시원한 맥주 한 잔이 생각이 났나 봐.


The moon 선생(더문쌤)은 어머니로부터 걸려온 전화가 전혀 반갑지도 유쾌하지 않았다는 자신의 감정을 묵묵하게 알아차렸어. 

늘 어려서부터 부모님의 기대치에 미치지 못했다는 이유로 잦은 꾸중을 들어오며 자라난 더문쌤의 2살 터울난 형은 여전히 부모님의 인생 최대 고민거리인 거 같았어. 마흔이 다가오는 나이에 아직 변변한 직업을 구하지 못했고, 결혼도 하지 않은 채 혼자 살아가는 형은 이제 가족들과의 연락도 반갑지 않다는 듯 소식을 전해오지 않았어. 한 일 년 전부터는 어느 가족의 전화조차 쉽사리 받아주질 않아.


아들 둘을 키우려면 엄격함이 필수라는 신념을 갖고 계신 듯싶어 보이던 아버지 밑에서 자라난 더문쌤은 항상 부모님의 눈치를 보며 자라야만 했었어. 게다가 화가 나면 욱하는 성미를 지닌 아버지에게 섭섭한 점이 많으셨던 어머니는 아버지가 안 계신 틈이 날 때마다 하소연을 털어놓기 일쑤였지.


특히나 아버지는 형에 대해 못마땅한 점들을 늘 매섭게 꼬집어 화를 내고는 하셨고, 어머니는 그런 자신의 첫아들이 아비의 잔소리로 더 많이 주눅 들어간다며 서글퍼하셨어.


더문쌤은 중요하지 않은 일로도 습관처럼 다툼을 일으키시는 부모님과 방 문을 닫고 좀처럼 거실로 나와 대화할 기회를 잃어가던 형 사이에서 문득 외로움을 느끼기도 했어.

그러면서 막연하게나마, 그들과의 이별 후 독립적인 자신만의 멋진 이상적 삶을 꿈꿔보기도 했던 거 같아. 


The moon 선생(더문쌤)은 중 고등학교 학창 시절 종종 무척이나 화목해 보이는 친구들의 가족을 우연히 마주하게 될 기회가 생길 때마다 묘하게 부러운 심정이 올라오는 걸 느꼈어. 가족과 함께 저토록 활짝 웃으며 친구처럼 편안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친구 모습이 낯설고 어색하게만 보이고 말이야.


그러다가 잠시 죄책감 비슷한 감정이 들기도 했어.

'나는 지금 왜 남의 가족을 보고 부러워하는 건가?'

'나는 내 가족을 그만큼 사랑하지 못하는 건가?' 싶었지.


그때는 그랬던 거 같아. 돈이 많은 게 아니라면 자식들 마음이라도 좀 편하게 해 주던가, 어느 무엇 하나 내 마음을 충족시켜주지 못하는 것 같은 부모님을 지켜보면서도 잔소리 한 번 덜 듣기 위해 눈치를 봐야만 했던 거 같아.


그러면서도 가족을 사랑할 수 없는 나 자신이 밉기까지 했었지..................


The moon 선생(더문쌤)은 그때 이후로 20년이 훌쩍 지난 지금 와 돌이켜봐도 별반 달라진 게 없는 거 같기도 했어.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형을 떠올릴 때, 지나온 시간 속의 소중한 몇몇 추억을 공유하고 있기는 하지만 특별히 사랑의 감정이 느껴지지는 않았어.

그저 연세가 많아지며 여기저기 편찮은 곳이 늘어가는 부모님과 아직 자기 삶에 대한 방향성을 뚜렷이 잡고 있는 듯 보이지 않아 염려스러운 형이 걱정스러울 뿐이었어.


하지만 이제는 그때처럼 가족을 사랑하지 못하는 것 같아 당혹스럽거나 나 자신이 미워지는 감정 안에 스스로 가둬져있지는 않아. 이 세상에 똑같은 성격을 가진 사람이 단 하나도 없듯이 그저 그렇게 이 세상의 모든 가족은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할 뿐이라고 생각을 정리해 버렸으니 말이야.


어머니와의 전화를 마치고 맥주 한 캔을 홀짝이며 다 마셔낸 The moon 선생(더문쌤)은 내일 아이들과 함께 나눌 대화 주제로 '가족 간의 사랑'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떠올렸어.

그리고 다시금 잠을 청해보았지.



                        12:00 달밤에 열리는 더문 선생님의 시크릿 수업 9편



"가족은 나에게 00과 같은 존재/ 이유: --- 하니까"

   - 채팅창에 익명으로 자유롭게 써볼 것-


"얘들아. 입장하면 익명으로 이름 잠시 바꾸고 위의 질문에 대한 솔직한 답을 채팅창에 적어봐."

"댓글 50개 이상 달리는 거 보면서 오늘 수업 재미있게 진행해 볼 예정임."


- 앗! 쌤... ㅎㅎ 오늘 좀 충격적인 얘기 많이 나올 거 같은데요?

- 이거 캡쳐해서 어디 언론사에 보내는 거 아니죠? 요즘 애들 이렇다는 둥 ... ㅋㅋ

- 익명으로 쓰라고 하시니까 좀 냉철하게 답변 나갈 거 같은데요? ㅋㅋㅋㅋㅋ

- 야!! 니네 왜 그러냐? 가족한테 좀 쌓인 감정이 많은가 봐요 애들이~ 저는 아닌데요?

- 생각은 자유니까 뭐 솔직하게 떠오를 수 있는 거지... 이거 뭐 정답이 있는 것도 아닌데, 다들 진지하지 마삼 (흐흣)


"그래, 그냥 자유롭게 떠오르는 생각 아무거나 써봐라 그냥.."


(채팅창 화면 글 실시간 업로드 중)

- 가족은 나에게 '의식주'와 같은 존재 / 이유: 살 집을 제공해 주고 먹을 걸 주시며 옷을 사주시는 부모님이 나의 가족이므로 ㅎㅎ

- 가족은 나에게 '쉼터'와 같은 존재/ 이유: 요즘은 친구한테도 마음 터놓고 솔직한 비밀 얘기 털어놓기가 힘든데 그나마 엄마가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시므로

- 가족은 나에게 '인내심을 키워주는' 존재/ 이유: 싫어도 부모님 말을 따라야만 살아나갈 수 있다는 걸 알게 해 주셨으니 ㅋㅋㅋ (아니면 가출 각? ㅎㅎ)

- 가족은 나에게 '귀찮은' 존재/ 이유: 끊임없이 자꾸 무언가를 묻고 따지고 제대로 거짓 없이 답하라며 요구하는 게 싫어서

- 가족은 나에게 '공기'같은 존재/ 이유: 그 소중함이 평상시에는 잘 눈에 보이지 않지만 사라지면 죽을 거 같이 느껴질 게 뻔하기 때문

- 가족은 나에게 '중력'같은 존재/ 이유: 두 발로 땅을 지탱해서 걸을 수 있는 게 중력이듯이 가족은 이 세상에서 내가 안정감 있게 걸어 나갈 수 있도록 만들어 주니까

- .............................. ......... .................. .... ...........



"열심히들 적네. ㅎㅎ 답변도 정말 천차만별이구나.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고 말이야!" "이제 이 정도만 봐도 된 것 같아." "열심히들 적어줘서 고맙구나. ㅎㅎ"


"지금 이렇게 다 같이 익명으로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니, 가족 이야기가 마냥 가볍게만 느껴지기는 하지만

가족 이야기를 할 때 늘 마음이 단순하고 가볍지만은 않은 사람들도 많을 거야."

 - 맞아요. 쌤, 은근히 가족 때문에 엄청 스트레스받는 애들도 꽤 있더라고요.

- 내 친구 중에도 꽤 많아. 어떤 애는 자기가 부모님한테 가스라이팅 당하는 거 같다고 하기도 했어. 부모님 말 안 들으면 저주받을 것처럼 자꾸 협박한대. 스케쥴 일정 관리에다가 감시도 엄청 심하시고.

- 야! 가족들 모두 건강하기만 해도 축복받은 거야. 우리 엄마는 어릴 때 외할아버지가 편찮으셔서 그 걱정 때문에 가족이 많이들 서로 힘드셨다고 하더라.

- 저는 어쨌든 저희 엄마 같은 엄마는 되지 않을래요. 좋은 엄마가 될 자신 없어서 결혼도 할 마음이 없긴 하지만 말이에요.


"그래. 우리는 가족이라고 하면 피를 나누고 생김새도 닮은 존재니 서로 사랑하는 게 너무나 당연한 관계라고들 생각하기 쉽지만, 이 세상이 천국이나 유토피아가 아닌 것처럼 가족이라 해서 늘 아름답게 사랑하며 살 수만은 없지."


"그렇지만 성인이 되기 전에는 아무래도 친구들 사이에 가족에 대한 불편한 이야기들을 털어놓거나 알아차리기 어려우니, 우리 가족만 상대적으로 더 불행한 거 아닌가 싶은 서글픔이 몰려오기 쉽거든."

- 초등학생 때는 좀 그랬어요. 근데 요즘은 중고생 애들 워낙 공부 압박이 심해서 그런지, 자기 부모님 흉도 대놓고 많이 보더라고요

- 솔직히 낳아달라고 부탁한 적도 없는데 자기 마음대로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해 놓고는 또 자기 마음대로 주무르다가 싫은 티 내면 화내는 부모도 많잖아요?

- 야! 그래도 나는 요즘 같은 시대에 믿을 사람도 별로 없고 이런 시대에 그나마 서로 믿고 의지할 존재는 가족밖에 없는 거 같아.

- 그래. 당연히 잘 지내면 좋지. 근데, 그게 맘대로 되냐? 친구관계든 부모자식 관계든 다 내 맘 같지 않은 거 모르냐? 쯧쯧


"그래. 너희들이 많이 어리다고 생각한 내가 잠시 착각을 한 거 같기조차 하네." "애 어른처럼 이야기하는 녀석들이 엄청나게 많구나. ㅎㅎ"

 

"가족이라는 존재는 있지...... 마이너스 감정을 기본으로 깔고 가는 존재들이야. 왜냐하면, 이 대중 매스미디어의 영향을 크게 받으며 살아가는 현대인에게는 무의식 중에, 사랑이 가득한 행복한 스윗 홈에 관한 이상향이 가득 그려져 있거든." "가전 광고를 예로 들어서 떠올려 보면 무슨 말인지 좀 더 쉽게 이해가 될 거야."


"가족은 당연히 그렇게 사랑이 가득한 관계여야만 할 거 같은 기대와 희망이 잔뜩 마음 한편에 그려져 있기 때문에 반대급부의 실망은 커질 수밖에 없는 거지."

- 그죠. 저도 나중에 커서 행복한 가정을 꾸릴 수 없을 거 같으면 감히 결혼조차 꿈꾸지 않을 거예요.

- ㅋㅋㅋ 경제력, 인격 뭐 하나 빠짐이 없어야 행복한 가정을 꾸릴 자격이 되는 거 같기도 한데?

- 그죠. 은근히 티브이 보면 부모 될 자격도 없는 사람들이 부모가 되어서 자식들만 고생시키는 거 못 보셨어요?

- 하... 저는 우선 물려받을 것도 별로 없는 거 같고 쩝; 경제력 자신이 없어서 가족을 꾸릴 희망은 버리겠슴당. 대신 자유를 선택 ㅎㅎ



" 그래. 얘들아! 너희들이 방금 해준 그 이야기들이 결국 이 시대의 가치관을 반영해주고 있어." 

"사실.. 완벽한 인간이 어디 있겠니? 서로 부족한 이들이 서로의 단점을 보완해 가면서 아껴주고 살아가는 게 바로 가족 그리고 가족과도 같은 공동체 집단의 존재 이유 아닐까?"


"그런데 우리는 완벽하지 못할 바에야

 차라리 누군가와 함께 살며 삶을 나누겠다는 용기조차 내기 어려운 시대 분위기 안에 머물러 있는 거 같아."

- 가족은 그럼 서로 부족한 점을 인정하고 때로는 그걸 서로 보완해 주기 위한 존재들이라고요?

-근데  미디어 영향으로 경제력과 인격을 두루 갖춘 완벽한 이상적 가족만이 가족으로서의 자격을 다 갖춘 듯 느끼게 만든다는 말씀이죠?

- 쩝,, 그런 사회 분위기가 팽배해지니까 준비되지 않아서 완벽하지 못해서 가족을 꾸리지 못할 거 같은 두려움이 퍼져나 거겠지.

- 시대 분위기가 그런 걸 어쩌겠니 얘들아, 암튼 나는 계속 결혼 포기각 ㅋㅋㅋㅋㅋㅋㅋ


"그래. 얘들아, 결혼을 하든 아니든 그와 무관하게 이거 하나만 기억하자."

"완벽한 부모도 완벽한 자식도 그건 모두 머릿속 뇌의 신경회로가 자기 마음대로 그려낸 이상향의 이미지일 뿐이야."

"그저 내 곁에 머물면서 각자 살아가는 삶의 이야기를 편안하게 나눌 수 있는 인연으로 만난 사람들이 가족이 아닐까 싶네."

"미움도 사랑도 그저 함께 하는 순간들 속 다양한 상황 속에서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사라지는 감정들이니, 늘 사랑만 할 수는 없는 게 당연하지. 우리는 감정 로봇이 아니잖니? ㅎㅎ"

"어쩌면 역설적으로 마음껏  미워해도 괜찮은 존재가 바로 가족이 아닐까 싶기조차 하네. ㅎㅎ"

- 세상 사람들이 많이들 그렇게 생각해 준다면 서로들 마음 편하게 지내는 화목한 가족도 늘어날 거 같네요.

- 그래. 맞아. 사랑은 원래 조건부가 아니잖아. 근데 사랑이 넘치는 가족을 만들려면 이런저런 조건에 맞춰 자격을 갖춰야만 할 거 같은 생각이 떠오르는 거 자체가 모순이네.

- 오오. 진짜 그러네!

- 가족은 그냥 오랜 시간 정감 있게 서로의 삶을 나누는 사람들이라고 정의 내리면 딱 아름다울 듯!



"그래. 얘들아, 너희들의 명석한 두뇌 덕분에 늘 수업의 마무리가 참으로 깔끔해진다. 고마워!"

- 쌤 ㅋㅋ 감사해요. 오늘도 굿밤이요.

- 얘들아 다음 주에 또 보자.

- 빨리 시대 분위기가 바뀌어서 나도 결혼할 용기 생겼으면 좋겠어 ㅋㅋㅋㅋㅋㅋㅋ

- 푸핫! 결혼할 용기 ㅎㅎㅎ 얘들아 안녕!




라이브 방송을 마치고, 침대 위에 이불을 뒤집어쓴 채 잠을 청하던 The moon 선생(더문쌤)은 결혼할 용기를 내고 싶다던 어느 학생의 마지막 멘트가 자꾸만 떠올라 웃음이 났어. 

혹시라도 더문쌤 자신의 어린 시절처럼 가족에 대한 씁쓸한 감정을 자신에 대한 자책감으로 확대시켜 괴로운 아이들이 없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시작한 수업이었는데,

결혼할 용기를 내고 싶다는 반응까지 나오는 걸 보니, 이 녀석들 다 큰 척 해도 역시나 귀여운 아이들이다 싶더라고........


미디어를 통해 불행해 보이는 가족의 모습을 바라보며, 불행한 가족 구성원이 될까 봐 두려움을 키워가고 미디어를 통해 행복해 보이는 가족의 모습을 바라보며, 행복한 가족을 꾸려가지 못하게 될까 봐 두려움을 키워가는 이들이 너무나 많아지고 있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안쓰러웠어.


늘 행복할 수 없고 늘 불행할 수 없는 변화무쌍한 파도와 같은 게 우리들 인생 아니겠어?

그런 파도타기를 혼자 하는 게 아니라 누군가와 함께 하고 싶어지는 이들이 많아지기를 바라보았어.


그렇게 더문쌤은 잠에 들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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