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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으네제인장 May 24. 2023

쉬는 시간에 마시는 믹스커피 한 잔

수업이 끝나고 옷을 갈아입는데 한복 치마를 부풀리기 위해 입은 속치마의 허리 부분이 땀으로 흠뻑 젖어있다. 허리뿐만이 아니다. 마스크 안으로도, 머리 밑으로도 축축한 기운이 느껴진다. 날씨가 더워진 것도 있지만 온몸의 움직임과 호흡까지 신경 쓰며 추다 보니 평소보다 힘도 더 들고 땀도 더 많이 난다.


첫 시간이 끝나고 난 쉬는 시간에도 그랬다. 덥고 힘이 들어서 곧장 믹스커피부터 찾았다. 무용 수업이 없을 때는 디카페인이 아니면 커피도 잘 마시지 않고 믹스커피는 더더욱 마실 일이 없지만 무용 수업의 쉬는 시간만큼은 꼭 믹스커피를 마신다. 안 그래도 더운데 뜨거운 커피까지 마시면 더 덥지 않을까 싶지만 그래도 달달한 커피를 한 잔 마시면 에너지가 충전되는 느낌이 든다. 오늘은 다른 분으로부터 받은 사탕 한 알까지 더해져 입속도 달콤해지고 수업을 듣는 열의도 빠르게 회복되었다.


발 동작과 팔의 모양을 신경 쓰며 호흡에 따라 어깨부터 자연스럽게 덩실 거려야 하는데 호흡이 아무래도 잘 안된다. 팔과 손에 힘을 주어 동작을 완성시키는 것이 아니라 호흡을 하며 겨드랑이부터 둥글게 들거나 돌리며 팔 동작을 만들어야 하는데 호흡을 하며 자연스럽게 몸을 움직이는 것이 말처럼 쉽게 되지 않는다. 예전에는 팔과 발 동작을 순서대로 따라 외우는 것만으로도 버거웠는데, 이제는 호흡까지 신경 쓰려니 짧은 춤에도 금방 진이 빠진다. 생각 없이 춤을 추다 보면 혼자서만 동작을 크게 하거나 각도가 달라지기도 하기 때문에 동선을 이동할 때에도 언제나 선생님을 보며 보폭을 조절하고 발걸음이 부드럽고 가볍게 보이도록 움직임에 절제를 해야 한다. 동작은 정확하게 추고 동선을 따라 이동도 해야 하지만 그것이 과하게 느껴지거나 딱딱하게 보이지 않도록 추는 것은 초보가 표현해 낼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걸 알지만 직접 해보면 생각했던 거보다도 훨씬 어렵게 느껴진다.


수업이 있는 날 아침이면 선식으로 속을 채우고 오는데 한 시간 춤을 추고 나면 든든했던 배가 금세 꺼지는 기분이 든다. 배가 고픈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힘이 달리는 느낌이 들다 보니 습관처럼 커피를 찾는다. 몸을 생각해서는 커피 대신 우엉차나 메밀차 같은 걸 마시고 싶지만 춤을 추려면 커피의 힘이, 카페인의 힘이라기보다는 당과 지방의 힘이 간절해진다.


쉬는 시간에는 저마다 모여 커피나 차를 마시며 땀이 난다, 안 난다, 힘이 든다, 안 든다 의견이 분분한데 초보일수록 땀이 덜 나고 힘도 덜 드는 걸 보면 한국무용은 배울수록 어려운 춤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수업을 같이 듣는 분들이 입을 모아 하는 말이 ‘한국무용은 쉬울 거 같아서’ 신청을 했다고 하는데 나도 그랬다. 필라테스나 발레, 요가에 비하면 쉬울 거 같아 한국무용 수업을 신청했는데 이게 웬걸, 일 년을 췄지만 작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기초 수업의 초보 딱지를 떼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달라진 것이 있다면 작년에는 한 발씩 앞으로 나아갈 때마다 발끝을 세우는 것에만 신경을 썼다면, 이제는 발을 앞으로 내밀 때 발바닥이 바닥에 닿는 면이나 각도, 보폭, 힘을 주는 다리의 각도, 흔들림 없는 상체 같은 것에도 신경을 쓸 줄 알게 되었다는 거다. 결코 잘 되지는 않지만 그냥 앞으로 나아가면 되는 것이 아니라 호흡으로 온몸 근육의 긴장을 줬다 풀었다를 반복하며 선생님과 비슷한 모습이 될 때까지 계속 연습을 해 나가는 중이다.


그저 흥에 겨워 팔과 다리를 허우적거리며 춤을 추던 것을, 안 쓰던 근육까지 써가며 추려고 하니 힘이 안 들 수가 없다. 턴을 돌 때마다 발목에 힘을 잘못 줬는지 수업이 끝나갈 즈음에는 발목이 아파 춤을 제대로 출 수도 없었다. 크게 다친 것은 아니지만 춤에 문제가 없는 이상 내가 동작을 잘못하고 있어 발이 아픈 것이었기 때문에 다음 수업에는 충분히 발목의 근육을 풀고 수업을 들어야 할 거 같다.


수업이 끝나갈 쯤이 되면 시계를 자꾸만 쳐다보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춤 한 번이 끝나고 나면 괜히 박수를 치는 사람도 있고 재빠르게 가방을 향해 걸어가는 사람도 있지만 선생님은 봐주는 것 없이 ‘한 번 더!’를 외친다. 수강생들은 다들 머쓱해하며 다시 자리로 돌아와 춤을 추지만 막상 수업이 끝나면 다음 주 수업이 휴강인 것을 아쉬워하는 눈치다. 개중에는 오늘 하루 열심히 나간 진도를 이 주 후에는 다 까먹을 것이 안 봐도 훤해서 미리 안타까워하기도 한다. 믹스커피가 없으면 기운이 달려서 춤도 못 추는데, 힘들어하면서도 정작 휴강은 아쉬워하는 것이 재미있다. 다음 주가 지나고 그다음 주에 다시 수업 날이 돌아오면 그때도 똑같이 힘들어할 걸 알면서 연습실을 찾을 것이다. ‘아, 덥다’, ‘어렵다’ 투덜거리면서 마시는 믹스커피 맛이 그리워서, 잘 못 출 수밖에 없다는 걸 알면서도 최선을 다하는 것이 즐거워서 나 역시도 얼른 다음 수업 날이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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