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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테오 Dec 31. 2019

#47 결혼식 하객에 대한 예의

결정적인 순간에 쉽게 놓치고 마는 것들


삶의 중요한 순간 앞에서 그 사람의 본모습을 알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결혼식과 장례식이다. 

    

신기한 것이 있다. 결혼식 하객에게, 결혼식이 지난 이후에 제대로 감사를 전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오히려 장례식 조문객에게는, 장례식 이후 대부분은 감사를 전한다. 장례식을 다녀오거나 조의금을 보내고 나면 늘 메시지를 받는다.      

더 놀라운 일이 있다. 결혼식과 같은, 다른 사람의 기쁜 일을 진심으로 축하해주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장례식과 같은, 남의 슬픈 일을 함께 슬퍼해 주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다.     



“기쁨은 함께 하면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라는 말은 딱 반만 맞다.

내 기쁨을 진심으로 함께 기뻐해 주는 것은 가족 이외에는 그리 많지 않다.

오히려 내 슬픔을 진심으로 슬퍼해 주는 것은 가족 이외에도 매우 많다.

내 슬픔은 누군가에게 기쁨인 것일까.          




John Henry Frederick Bacon(1865-1914), The Wedding Morning, 1892, Lady Lever Art Gallery




나는 미혼이고 결혼식의 신부가 된 적은 없다. 나는 프레드릭 베이컨(John Henry Frederick Bacon, 1865-1914)이나 콘스탄틴 마코브스키(Konstantin Makovsky, 1839-1915)의 그림 속 주인공이 아니었다. 나는 지금껏 결혼식을 치르는 당사자를 축하하러 간 하객이었다.

             

나는 친구이자 결혼식 당사자인 신부가 해외에 있다는 이유로 결혼식 준비를 함께 하기도 했다. 나는 프레드릭 베이컨이나 마코브스키의 그림에서 보이는 신부를 돕는 여인들처럼, 종종 결혼식 당일에는 신부의 도우미가 되기도 했다.    

 자주 연락하면서도 내색을 하지 않다가 결혼식 일주일 전에야 결혼을 한다는 소식을 알린 친구도 있었다. 결혼 소식을 내게 전한 그 친구에게서 나는 다시 듣고 싶지 않은 말을 들었다. 그 결혼식에 가기는 했으나 기분은 참으로 묘했다.     

나는 결혼식 청첩장을 받으며 식사를 한 적이 거의 없다. 누군가에게는 결혼식 청첩장을 주며 밥을 사주는 것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것이 좀 부담스러웠다. 심지어 아이가 생겨 드레스를 입게 된 친구에게는 내가 밥을 사기도 했다. 임산부에게는 맛있는 것을 사주어야 한다는 강박관념 탓이었다. 나는 그날 차마 다시 생각하기도 싫은 말을 들어야만 했다.                          



친구, 동료, 선후배들이, 결혼식 이후에 고맙다는 메시지를 보내기는 했으나 나는 그것을 인사치레로 여겼다. 그때 나는 그 메시지의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     


결혼식 하객으로서의 나는, 내 귀한 시간과 비용을 들여 결혼식에 참석하였음에도, 감사 인사를 기대한 적이 없다. 그림에서 보이듯이 결혼식 준비가 쉽지 않고 바쁘리라는 것을 짐작했기 때문이다. 나는 감사 인사를 받지 않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하다 못해 멀리 있는 결혼식에 가더라도 제대로 인사를 받은 적이 없다. (결혼식에 참석한 교통비 같은 것도 받은 적이 없다.)   

       



Konstantin Makovsky(1839-1915), Preparing for the Wedding. 1884, Private Colletion



결혼이라는 인생의 중요한 순간 앞에서 당사자들은 인연을 정리한다고 한다. 그러나 종종 나같은 하객들도 인연을 정리하게 되기도 하는 것 같다. 무엇보다 결혼식 하객으로서의 내 마음과 결혼식 하객에 대한 예의에 대해 생각하게 되기도 했다.

    


내가 서른 즈음의 일이니 꽤 오래전 일이다. 

친구가 결혼식을 준비하던 그때 나는 결혼을 고민하고 있었다. 결혼을 고민하고 있었던 것은 그는 적어도 내게 좋은 사람이 아니었고 나와 맞는 사람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제와 보면 고민하고 있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그는 나와 맞는 사람이 아니다. 그러나 그때 내게 그는 결혼하기에 매우 적당한 사람이었다. 무엇보다 그때 나는 막 서른 즈음이었다. 나는 너무 조급했으며 조바심이 났다. 결혼을 앞둔 내 친구는 그런 내 고민을 들어주었다. 친구의 조언 때문에 헤어진 것은 아니었으나 나는 그 사람과 헤어졌다. 그 친구 덕분인 것만은 아니지만 그 친구에게 여러 가지로 고맙다. 

무엇보다 고마운 것은 결혼을 앞두고 내게 그런 귀한 시간을 내어준 것이었다. 친구는 그때 바빴고 내 이야기를 들어주기가 쉽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그 친구는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조언을 해주었다. 나는 여전히 그 친구에게 많이 고맙다.          


최근의 일이었다. 

친구의 결혼식 일정은 이미 반년 전에 잡힌 상태였다. 그 일정이 잡혔을 때 나는 그 결혼식에 못 가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갑자기 일이 많아지면서 그 결혼식에 갈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일정상, 물리적 거리상으로 결혼식 청첩장을 직접 받을 수도 없었다.

내가 미안해해야 하는 상황에서 친구는 오히려 힘들어하는 나를 위로하기까지 했다. 결혼식 이후에는 따로 연락이 오기까지 했다.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이 일은 내게 큰 힘이 되었고 고맙고 미안한 일이 되었다.      


나는 또다시 묘한 기분이 들었다. 

이 일을 경험하지 않고 내가 결혼의 당사자가 되었다면 나는 인생의 중요한 것들을 놓쳤을 것 같다. 무엇보다 다행인 것은 덕분에 내가 하객으로 갔던 지난 인연들을 완전히 정리할 수 있게 되었다. 아마 나는 내 인생의 중요한 순간을 그 지난 인연들과는 함께 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누군가의 결정적인 순간은 내게도 결정적인 순간이 되었다.


결혼식 청첩장에는 늘 "바쁜 중에 귀한 걸음을 해서 축하해 주십시오"라는 말이 있었다.

나는 그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도 알지도 못했다.

나는 그 말을 너무나 당연하게 여겼다.

그러나 결혼식 하객의 그 걸음이 정말 귀한 걸음이라는 것을 이제야 비로소 알 것 같다.

하객에게 감사 인사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임에도 쉽게 놓치는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인생의 결정적인 순간을 앞에 두고 내게 마음을 써준 친구들에게 많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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