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원과 이별
환자와 보호자에게 받을 수 있는 유일한 선물 하나.
‘편지’.
매번 고생하면서 치료하는 것이 안쓰러워 보여서 일까. 다양한 선물을 주려 하신다. 종류도 어찌나 다양한지. 매번 거절하는 것도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런 내가, 주는 것도 받는 것도 제일 좋아하는 선물이 바로 편지다. 원래부터 편지 써주는 것을 좋아해서 주변에 편지를 많이 나누곤 했다. 돈보다 가치가 담긴 선물이라는 느낌이 들어서인지, 편지는 그 어떤 선물보다 소중히 보관하는 편이다.
편지는 말로 하지 못하는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품고 있는 마음의 표정이 글을 통해 드러난다. 나는 알지 못했던 생각들을 읽으며 그 사람을 배워간다.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은 세상을 배워가는 기분이란. 그 자체만으로도 나를 행복하게 한다. 더욱이 내가 열정을 쏟았던 환자에게서 받은 편지는 그 의미를 더한다. 치료가 끝날 때 건네는 수줍은 편지 한 장에 그간의 모든 피로를 잊을 수 있다. 나에게 편지는 그만큼 큰 힘이 되어준다. 그 간 받은 편지 중에서도 나를 가장 따뜻하게 한 두 장의 편지가 있다.
완벽한 한 줄
대부분의 병원에는 친절한 직원에게 칭찬의 글을 남길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그중 내가 일하던 병원은 칭찬 카드를 병원 곳곳에 두었다. 이 카드 덕분에 감사한 직원에게 언제든 고마움을 전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이 카드를 받은 직원은 병원에 기록으로도 남겠지만 무엇보다 카드의 내용이 메일로 전해진다. 적어준 사람 입장에서는 조금 쑥스러울 수 있지만 받는 입장에선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내가 만나는 뇌 질환 환자들은 인지능력과 함께 언어 능력 또한 떨어진다. 말하는 것도 어려운데 마비된 팔로 글을 적는 건 얼마나 어렵겠는가. 적기도 힘든 팔로 어렵게 한 글자씩 전하고 싶은 마음을 적어본다. 단어 하나가 생각나지 않아 옆사람에게 물어보며 한참을 고민한다. 그렇게 완성된 편지. 친절 카드함에 어렵사리 넣어본다. 편지 내용은 메일로 전해지기 때문에 삐뚤빼뚤한 글자 모양을 직접 볼 수는 없다. 그렇더라도 화면 속 내용을 보며 그 과정이 눈앞에 그려진다. 아무 생각 없이 출근했던 어느 날, 무심코 열어 본 메일함에 올라온 한 줄.
‘갑작스럽게 뇌경색으로 오른쪽 편마비가 와서 정말적(절망적)이었는데 로봇치료실 ㅇㅇㅇ선생님께서 친절하게 방법을 잘 알려주셔서 재활을 열심히 할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자세히 보면 군데군데 틀린 부분이 보일 수도 있다. 누군가 보았을 때 부족하다 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에게 있어서 세상 어떤 문장보다 완벽한 문장이다. 이 한 줄의 글 덕분에 나의 하루는 더욱 풍성해진다.
종이접기 하트
나의 노트북엔 커다란 하트가 하나 붙어있다. 내 방 한가운데 놓인 노트북에 붙어있다 보니 하루 중 나의 눈에 가장 많이 띄고는 한다. 이 하트는 로봇 치료를 해주던 소아 환아에게서 처음 받아본 편지였다. 편지를 전해 주었던 아이는 말하는 것은 조금 힘들지만 항상 힘차게 나의 이름을 불러주었다. 그 덕에 지친 하루에 에너지를 불어넣어주는 활력소가 돼주었다. 치료를 할 때에도 씩씩하게 로봇을 타며 보는 사람마저 힘차게 치료를 할 수 있게 해 주었다. 그 아이를 본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시간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치료 시간이 되었다.
오래오래 보고 싶은 나의 마음과는 다르게 어느덧 치료가 종료되어야 할 시간이 다가왔다. 아쉬움은 남기만 언젠가는 끝나야 하는 법. 마지막 날이 되어 다음에 또 보자는 인사와 함께 꼭 안아 주던 중, 그 아이는 품에서 꼼지락꼼지락 무언가를 꺼냈다. 색종이로 접은 하트였다. 고맙다는 인사가 적힌 그 종이 하트는 그 어떤 선물보다 값진 보물 1호가 되었다. 이 값진 보물은 지금도 노트북에 붙어 그 멋진 모습을 자랑하고 있다.
이 두 장의 편지는 나의 힘든 순간을 자부심으로 만들어 주는 마법과 같다. 사명감 없는 내게 뜨거운 무엇인가를 만들어주는 열쇠가 되어 내가 지칠 때면 마음의 닫힌 문을 열어준다. 두 장 모두 편지의 내용은 짧지만 읽고 또 읽었다. 짧은 몇 마디에 이렇게 힘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 덕분에 내가 이렇게 편지를 좋아할지도 모르겠다. 모두가 편지로 건네지 않아도 내게는 환자가 보여주는 삶이 편지가 되어준다. 그들이 보여주는 역동적인 모든 순간이 나에겐 무엇보다 값진 편지로 찾아와 준다. 앞으로도 내가 하게 될 모든 치료가 편지라는 마법이 되어 나를 찾아오길 바란다. 내가 받은 두 장의 완벽한 편지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