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원과 이별
"잘 다녀와~"
얼마나 뛰셨는지 거센 호흡과 흩날린 머릿결, 운동화 신을 겨를도 없으셨는지 신고 계신 슬리퍼. 나의 도시락과 여벌 옷을 부랴부랴 챙겨 오신 할머니의 모습에서 긴박했던 준비과정을 옅 볼 수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 시에서 진행하는 영재반에서 가게 된 야외활동 준비물을 미처 확인하지 못한 나의 불찰이었다. 다급하게 집으로 연락해보니 다행히 할머니께서 받으셨고 전화를 받자마자 도시락과 여벌 옷을 챙겨 버스 타고 학교까지 달려오셨다. 출발하기 직전 도착하신 할머니의 모습을 본 순간, 조급함은 안도가 되었다. 어찌나 기쁘던지. 야외활동에서 혼자 물놀이를 못 할까 걱정하던 어린 마음에 나타난 구세주였다. 버스가 출발하고 창밖을 보니 쓸쓸히 집으로 돌아가던 할머니의 뒷모습이 보였다. 기쁜 마음은 물러가고 그 뒷모습을 보며 미안함에 나 홀로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난다
나에게 할머니에 대한 기억은 특별하다. 맞벌이하시는 부모님으로 인해 할머니 손에서 자란 나는 학교보다 노인대학을 먼저 갔고, 유치원보다 노인정을 자주 다녔다. 방도 할머니와 함께 쓰며 어린 시절의 대부분을 할머니 손에서 자라다 보니 내게는 부모님 이상의 사랑을 할머니께 받았던 것 같다. 하지만 시간은 나에게서 할머니를 데려갔다. 평소 아프시던 허리 때문에 미루고 미루다 수술을 받게 되고 벌떡 일어날 것만 같던 할머니는 결국 컨디션을 회복하지 못하고 요양병원에 가게 되셨다. 수술 직후의 모습만 본 내게 요양병원에서 처음 뵙게 된 할머니의 모습은 충격 그 자체였다. 얼굴을 보자마자 화장실로 뛰어가 참을 수 없는 눈물을 쉼 없이 흘려 댔다. 부모님께 염려 시켜 드리지 않기 위해 참아보려 했지만 쏟아져 나오는 눈물은 이미 걷잡을 수 없었다. 요양병원에 입원 초기, 그래도 그 당시엔 자주 찾아뵀지만 1년, 2년, 시간이 지날수록 바쁘다는 핑계로 점점 가는 횟수가 줄어만 갔다. 그러는 사이 몇 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힘든 병원 생활을 마치신 할머니는 하늘나라로 올라가셨다. 내가 임상에 나오기 한 달 전이었다.
물리치료를 하다 보니 할머니와 함께 할 수 있었던 모든 순간이 선물이었다. 나는 소아가 아닌 성인을 주로 담당하는 치료사이기 때문에 심혈관 질환의 주 대상자인 할머니, 할아버지를 대하게 된다. 어린 시절을 밑바탕으로 한 어르신들과의 남다른 친화력은 나의 일을 한결 수월하게 해 주었다. 인지 기능이 떨어져 어린아이가 되어 버리신 어르신과 함께 노래 부르고 즐겁게 운동하면서 손주 노릇을 톡톡히 해가는 중이다.
얼마 전 새로운 할머니 환자께서 배정되셨다. 유난히 팔다리를 아파하시던 환자 분은 일어나는 것도 무서워 치료를 어려워하셨다. 가족들을 위해 고생하신 탓일까, 휘어진 손에 혈액순환이 어려워 차가워진 손과 발을 만져 드릴 때면 내 손이 따뜻하다며 좋아하시던 할머니. 세월이 담긴 손과 발을 만져드리고, 나의 발을 밟게 해서 안정적으로 잡아 드렸다. 그렇게 해야 비로소 무서움을 거두고 걸음을 걸으실 수 있었다. 그런데 치료 중에 발을 밟은 것이 미안하셨는지 아프지 않느나며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하셨다. 혹여나 불편해하실까 손주라고 생각하고 편하게 효도받으시는 거라 말씀드렸다. 한차례 눈물을 글썽이시고는 지금은 나와 누구보다 친한 할머니와 손주로 치료를 받고 계신다.
요즘 들어서 할머니가 더욱 뵙고 싶다. 어르신들을 치료해드리면서 내가 조금만 더 일찍 임상에 나왔더라면 하는 생각에 잠길 때가 많다. 허리가 아프셨을 때 조금이라도 덜 아프게 치료해드렸다면, 수술하신 후에 내가 직접 운동시켜드렸더라면, 병원에 누워 계실 때 굳어가는 몸에 관절 운동이라도 직접 해드렸다면. 조금이라도 고생하시는 시간을 줄여드릴 수 있지 않았을까. 이런 후회가 밀려온다. 그래서 내가 남긴 후회를 적어도 환자의 가족들은 느끼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든다. 그래서 더욱 성심성의를 다해 치료해 드리도록 노력한다. 적어도 나를 만나게 된 보호자 분들께서 어르신들께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는 후회가 생기지 않도록.
이런 나를 보면 하늘에서 할머니께서도 이렇게 말씀해 주시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할머니를 사랑해준 만큼 잘하고 있어.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