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원과 이별
글을 적는 당일 조차 본인이 무슨 행동을 하는지 모르는 뇌 질환 환자를 치료했다. 입에 담기도 힘든 욕설을 들으며 뻗기도 힘든 팔로 휘두르는 주먹에 맞으면서 말이다. 물리치료사는 하루 8시간 이상, 환자 한 명당 30분씩 몸을 부딪혀가며 치료해야 한다. 때문에 병원 내에서도 환자와 접하는 최전선에 있다.
치료 시간에 마주해야 하는 온갖 부정적인 상황과 대화, 끝없이 이어지는 교육과 공부, 마비된 환자의 치료와 더불어 움직이지 못하는 환자를 옮기는 것 때문에 발생하는 어마어마한 신체적 업무 강도, 이 뿐 아니라 인지 능력 저하나 신체적 문제로 인해 치료 시 발생하는 용변과 토사물 등을 치워 내는 일 또한 만만치 않다. 운동치료뿐 아니라 통증치료, 로봇치료, 수치료 등 다양한 치료실에서 대해야 하는 환자의 수를 생각하면 말로는 다할 수 없는 업무적 어려움이 생겨난다.
업무적 스트레스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 받는 상처는 사람이 다 준다고 할 만큼 사람들에게 받은 상처는 너무나도 크다. 환자와 보호자, 치료사 동료들, 의사, 간호사, 다른 직업의 사람들까지. 대해야 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 이 복잡한 유기적 관계 내에서 고려해야 할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개인적으로 지금까지 일하며 느낀 바로는 병원 내에서 물리치료사의 입지는 환자에게나, 다른 의료진에게나 낮은 편에 속한다. 그러다 보니 솔직한 말로 한마디 할 때도 조마조마한 경우가 많다. 나의 말 한마디가 환자와 보호자에게 말실수가 되지는 않을까, 업무상의 이야기가 문제가 되어 직군 간의 분쟁이 되지는 않을까. 항상 고민하며 한마디를 꺼내게 된다. 심지어 의사의 지도 아래 치료를 진행해야 한다고 이야기 하지만 진료실에서 진료 업무를 보셔야 하는 의사 선생님은 대부분의 경우 치료실에 있지 않다. 그로 인해 치료실에서 환자 일신상의 문제라도 생기게 된다면 담당 치료사가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 된다. 내 환자에게 문제라도 생겨 보고서를 쓰게 되는 날이면 마음을 졸이곤 한다.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는 곡을 진행하며 전체적인 흐름을 지휘한다. 그렇다고 한들 각 악기의 전문가들에게 악기의 연주 방법을 간섭하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전체 곡에 대한 이해가 높을 뿐 악기의 연주방법에 대한 전문가는 악기의 연주자 이기 때문이다. 치료도 마찬가지다. 재활 전반적인 진행에 대한 지휘는 의사 선생님의 처방 아래 이루어진다. 치료는 각 치료실의 전문가의 손에서 이루어진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치료실에서 진행되어야 하는 치료와 동떨어진 처방이 나오기라도 하면 치료사는 결국 을의 상황에 놓이게 된다. 의견을 내놓기 조차 어렵다. 직업 간의 분쟁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고 싶든 것은 아니다. 다만 권리에는 책임이 따른다지만 권리는 없고 책임만 막중하다. 교수님이나 간호사 선생님들의 납득되지 않는 비난이라도 나올 때는 의견은 입 안으로 쏙 들어가고 내려간 눈동자만 허공을 맴돈다. 지금까지 내가 겪은 현실이다. 일하는 환경마다 다를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열 개의 병원 중 한 곳에서라도 이런 일을 겪을 수 있다면 백 개중엔 열 곳이요, 천 개 중엔 백 곳의 업무 환경이 생길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마음이 너무 아프다.
치료사들 사이에서도 사회생활은 존재한다. 선배와 동기 그리고 후배까지 각각에서 발생하는 크고 작은 문제는 어느 것 하나 쉬운 게 없다. 아직은 내가 내공이 부족하겠거니 하며 그저 내 탓을 하며 지나가곤 한다.
쏟아지는 업무와 인간관계 속에서 결국 나 자신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어느 날 출근하기 위해 병원을 바라보는 순간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식은땀이 나며 눈에 보이던 의자에 앉아 마음을 가라 앉혀야만 했다. 당시는 사건 사고가 유난히 많았던 시기였다. 잠도 제대로 자기 힘들었고 몸과 마음은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공황장애의 증상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든다. 일을 시작하고 이런 증상은 처음 겪어봤기 때문에 무척이나 당황했다. 갑작스러운 몸의 반응을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도 몰랐고 참으면서 일을 했다. 밥도 잘 넘기지 못했다. 나 홀로 자취하는 아들이 이런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 얼마나 걱정하실지 알기에 가족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나는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채 망가지면서도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인생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내가 즐겨 듣는 노래 중에 사람 때문에 받은 상처는 사람으로 다시 메꾼다는 가사말이 있다. 노랫말은 대부분 작사가의 경험을 담는다고 하던데 그 경험이 나에게도 통했던 걸까. 나의 마음의 상처는 내가 늘 위로를 전해야 했던 보호자에게서 마음의 연고를 받을 수 있었다.
내가 치료하던 환자 중 내가 치료사 생활을 하기 전부터 치료를 하고 계신 환자도 있다. 이런 환자와 보호자분들은 나와는 비교도 안 되게 많은 병원 생활을 경험하신다. 나는 그 긴 세월에서 만난 한 명의 어린 치료사 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존중과 배려로 나를 대해주신 고마운 분이 계셨다. 치료를 받으시던 중 당시의 내가 조금 달라진 모습을 어렴풋 느끼셨던 모양이다. 조심스럽게 내게 괜찮냐며 걱정의 말을 건네주셨다. 나의 감정을 드러낼 수는 없기에 괜찮다고는 했지만 혹시라도 몸상태가 드러날까 조심하였다. 하지만 숨겨진다고 숨겨지는 게 아닌 것이 당연지사. 나를 볼 때마다 위로가 섞인 한 마디씩 해주셨다. 이런 마음에 감사해 조금씩 내가 겪는 어려운 상황들을 이야기하며 마음의 응어리를 풀기 시작했다. 나의 이야기를 하나 할 때면 진심으로 공감해 주며 힘이 되는 말들을 해주셨다. 당시의 나에겐 병원에서 상담하게 된다면 받게 될 약 한 봉지보다 뛰어난 치료를 보호자에게서 받았다. 마음이 조금씩 부드러워진 탓일까 점차 나타나는 증상이 회복되기 시작했고 이전의 생활로 차츰 돌아올 수 있었다.
각자 가진 성격마다 다르겠지만 나뿐 아니라 많은 치료사 선생님들께서 이런 어려움을 한 번쯤 겪어보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우리는 생명과 삶을 대하는 직업이다. 그만큼 우리의 삶이 안정적이지 못한다면 치료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 각자가 한 걸음 물러서서 서로의 마음을 둘러본다면 병원은 병을 치료하는 것 그 이상의 가치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병원이 그런 곳이 되길 기대한다. 내가 보호자께 받은 마음의 위안처럼 병원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이 서로에게 상처가 아닌 힘이 되어 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