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원과 이별
“엄마 나 누구야?”
치료 시간마다 건네는 질문에 돌아오는 의미 없는 손 짓. 어떤 대답이 돌아올지 다 알고 한 질문이지만 내심 기대가 드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갈수록 어린아이가 되어 가는 모습에 아직 기억 속 따뜻했던 얼굴이 비쳐온다. 아직도 내 이름을 부르며 안아줄 것만 같다. 손길이라도 닿으면 기억나지 않을까. 움직이지 않는 가늘어진 손을 잡아 보아도 옛날의 온기는 어디 갔는지 차가움만 전해져 온다. 지금까지 만들어온 추억이 그 마음속에 소용돌이친다. 자신을 기억해 주지 못하는 사람 앞에서 지어지는 표정은 읽을 수 없다. 어떻게 이해할 수 있다는 쉬운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사랑하는 사람의 기억이 사라져 가는 애잔한 현실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 이런 비극이 하루에도 몇 번씩 펼쳐지는 곳이 나의 현장이다.
인지는 인간이 사고하는 과정을 뜻한다. 인지를 확인하는 방법 중 가장 기본적인 평가로 MMSE라는 검사법이 있다. 단시간에 인지 기능과 치매 여부를 평가하기 위해 사용되는 평가이다. 물론 MMSE의 점수만으로 인지의 모든 상태를 파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치매 선별 검사 방법으로, 평가의 구성 항목을 통해 인지라는 개념의 구성요소를 알 수 있다. 검사를 구성하는 항목으로는 지남력, 기억 등록, 기억 회상, 주의 집중 및 계산, 언어 능력, 시공간 구성이 있다. 해당 항목들만으로도 사람을 사람답게 해주는 중요한 것 중 하나가 기억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기억은 저장할 수 있어야 하지만 꺼내 올 수도 있어야 한다. 뇌의 일부가 다쳐 기억을 담당하는 곳이 일을 못하게 되는 경우, 둘 중 하나만 작동을 못해도 기억에 큰 문제가 생기게 된다.
기억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하면 단기 기억과 장기기억으로 분류된다.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감각 기억과 작업기억 같은 것도 있지만 쉽게 풀어가고자 여기선 줄여서 이야기하도록 하겠다.) 사람에게 쏟아지는 수많은 자극과 정보 중 필요한 것들을 선택하게 된다. 순간순간 취사선택하여 기억하는 것을 단기 기억이라 한다. 단기 기억은 짧게 저장된 후 잊힌다. 그중에서도 등록과 회상이 반복되면서 오랜 시간 기억돼야 하는 것들 생겨나는데 이를 장기기억이라 한다. 오래전 추억을 생각해 낼 수 있는 능력이 장기 기억인 셈이다. 단기 기억이 다친 사람들은 오래전 기억은 다 기억한다. 주변 사람들의 얼굴도 이름도 모두 기억해 낸다. 하지만 새로운 정보들을 기억해 내는데 어려움을 호소한다. 학습이 거의 불가능 해진다. 반면에 장기기억이 다친 사람들은 때마다 던져주는 정보에 대해서는 이해하고 짧게 기억한다. 그러나 오래된 기억은 잊어버린다. 지금 알려주는 내용에 대해서는 잠깐 기억하는 듯하다가도 바로 옆에 있는 사람 조차 누구인지 알아보지 못하는 상황이 생겨버린다.
아무래도 우리가 하는 치료는 학습을 필요로 한다. 한 번의 행위로 끝나지 않고 몸과 뇌에 기억시켜야 한다. 따라서 기억할 수 있는 힘은 치료에 가장 필요한 요소 중 하나다. 그래서 나는 신체 기능 보다도 MMSE 결과 값을 먼저 확인하곤 한다. 아무리 신체 기능이 좋더라도 인지 기능이 떨어지면 치료 결과가 좋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기억할 수 있는 종류와 정도에 따라 치료 전략도 달라지게 된다.
진단명에 Alzheimer(알츠하이머) 혹은 Dementia(치매)라는 단어가 들어가게 되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이런 분들은 점차 인기 기능이 떨어지며 신체 활동도 함께 줄어들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최대한 활동 감소가 신체 기능 저하로까지 이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물론 이 진단명만으로 우리에게 오는 경우는 드물지만 간혹 처방이 나오는 이유이다. 치료는 몸이 힘들지 않다. 마음이 힘들다. 보호자가 간병인이 아닌 가족일 때, 사랑하는 사람이 기억에서 사라져 가는 과정을 고스란히 지켜봐야 한다.
한 번은 한 할머니 환자를 치료하게 되었다. 낮은 MMSE 점수와 진단명만으로도 치료가 쉽지 않겠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목관을 하고 있어 말을 못 했던 분이었지만 목관을 막으며 차차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30분을 치료하면 30분 동안 이야기를 하셨다.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쉼 없이 무엇인가를 말씀하셨다. 주로 하시던 말씀은 먹는 것과 관련되곤 했다. 간혹 말씀하시는 것에 질문을 해봐도 동문서답의 대답이 대부분이었다. 간호는 주로 간병인 여사님이 하셨다. 그런 중에도 이따금 따님들이 휴가를 쓰고 와서 보시곤 하셨다. 따님들은 매번 올 때마다 치료 내내 말동무를 하시며 치료 시간을 함께 하셨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님을 향해 ‘엄마 나 누구야?’라는 질문을 하셨다. 평소에 자주 하시던 질문이었다. 그런데 그 날은 예상치 못한 대답을 했다.
“딸이지.”
딸이라는 명확한 답변이 돌아왔다. 모두가 당황하는 사이 말을 이어 가셨다.
“나 제사 준비하러 가야 해. 나 죽으면 제사 지내야 하는데 아무것도 준비가 안 되어 있어. 안 그럼 자식들이 고생해.”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로 이야기했지만 모두가 알아들을 수 있었다. 차마 더 이상의 말을 들을 수 없었던 따님께서는 입을 감싼 채 치료실을 떠나 한참을 울고 오셨다. 나는 자리에 남아 치료를 이어갔다. 나도 치료 시간이 끝난 후 어머님을 보내 드리고 나서야 잠깐이나마 쉬면서 내 감정을 추수를 수 있었다. 기억이 사라져 가는 와중에도 어머님의 마음속에서는 자식들을 고생시키고 싶지 않았던 것일까. 퇴원하기 전까지 몇 번이고 이런 이야기를 전해와 마음을 아프게 하곤 하셨다.
기억력이 좋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기억술 중 기억의 궁전(Mind palace)이 있다. 상상 속의 장소를 만들고 그곳에 정보를 기억해 두는 방법을 사용한다. 기억을 위해 자신만의 세상을 창조한다. 추억의 장소에 담아두고 싶은 기억을 위치시킨다. 기억이 쌓일수록 그 세상은 차츰 넓어져 간다. 세상이 넓어질수록 세상을 공유하는 사람도 많아진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추억이 곳곳에 담긴다.
기억이 사라져 간다는 건 이 세상이 무너져 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 사람의 세상이 무너진다. 그 사람과 함께하는 사람들이 공유하던 세상이 무너진다. 언제까지나 함께할 것만 같았던 추억인데 영원할 수 없음을 깨닫는다. 망각은 신이 주신 축복이라 하던데. 그들에겐 축복이 아닌 비극만이 남는다.
나는 계속해서 이런 사람들을 만날 것이다. 한 사람의 세상이 사라져 가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다. 많은 선배들이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진다고 하지만 익숙해진다는 말은 아마 무디어진다는 표현을 다르게 한 것이 아닐까 싶다. 언제가 되어야 무디어질지 잘 모르겠다. 아마 그전까지는 마음이 힘든 치료가 계속 이어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