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 속 돌담병원

퇴원과 이별

학부 시절, 나를 설레게 한 드라마가 하나 있다.


‘낭만 닥터 김사부’


2016년에 방영된 이 드라마는 2020년에 2편이 제작될 만큼 인기 있는 드라마다. 시험공부를 하며 몇 번이고 돌려보다 보니 시험공부보다 드라마 대본을 더 외울 정도였다. 그만큼 당시 나의 겨울을 따뜻하게 해 준 드라마였다.


낭만 닥터 김사부는 돌담 병원이라는 지방의 병원을 배경으로 한다. 지역의 응급 환자 대부분을 충당 하지만 남는 것은 적자뿐. 재단의 온갖 눈치와 압박을 이겨내야 한다. 인력도, 시설도 낙후된 그곳에서 돌담 식구들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병원으로의 취업을 앞둔 내가 어떻게 이걸 보고 뜨거워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비록 분야는 다르지만 드라마 속 상황과 대사에 녹아들어 갔다. 내가 드라마 속 등장인물이 된 것 마냥 함께 울고 웃었다. 그들의 아픔에 함께 힘들어하고 어려움을 이겨낼 때면 함께 환호했다. 무엇보다 드라마가 주는 따뜻함에 치료사가 될 나를 기대하게 해 주었다. 내게 낭만 닥터 김사부는 그런 드라마였다.

모든 드라마가 그렇듯 돌담 병원의 이야기도 끝이 났다. 많은 여운을 남겨준 돌담 식구들. 평생 함께 할 것 같았지만, 임상에 나와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며 기억에서 차츰 지워져 갔다.


병원이란 곳은 드라마처럼 아름답지만은 못하다. 결국 수익을 내야 운영이 가능한 곳이 병원이다. 많은 인력과 고급 장비, 끊임없이 들어가는 소모품까지. 모든 것이 돈이다. 자본이 들어가지 않는다면 병원은 운영되지 않는다. 아름답게 포장한다 한들 돈이 병원을 움직인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치료라는 명분 아래 우리는 돈을 벌어야 한다. 각 부서는 수익을 내고 수익률을 비교당한다. 각 직군에 따라서 낼 수 있는 실적에 따라 값이 매겨진다. 공평한 듯 보이지만 그 이면에 자리 잡은 서열이 존재한다. 그 서열을 지켜 내기 위해 실적을 위한 압박을 가한다. 병원은 그렇게 운영된다.


병원에서 모든 행위는 가격이 매겨져 있다. 이를 의료 수가라 부른다. 물리치료도 마찬가지로 치료별로 의료수가가 매겨져 있다. 인체에 가해지는 무형의 치료인 만큼 시간과 횟수에 따라 가격이 책정되어 있다. 처방에 따라 행해지는 각각의 행위에 맞춰 비용이 지불된다.

물리치료 수가는 상대적으로 낮은 편에 속한다. 한 번 진행하는 것만으로도 천문학적인 비용이 발생하는 수술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다. 재활이라는 분야 자체가 수술과는 거리가 먼 만큼 다른 부서의 실적을 따라간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이야기이다. 따라서 실적을 높일 수 있는 방법으로 많은 치료 횟수를 택한다. 치료의 시작과 끝이 규정되기 힘든 우리에게 그 기준점은 순서나 단계가 아닌 시간이다. 하루에 몇 타임 진행하였는가를 통해 그 수익성을 판단된다. 하루 8시간의 근무를 30분으로 쪼개면 16번의 치료 시간이 나온다. 병원은 진행할 수 있는 한 16번의 치료를 원한다. 그렇기에 일을 하는 모두가 적어도 일정 타임 이상의 치료를 채워야 한다. 나도 예외는 될 수 없다.

환자와 보호자가 치료 중간 쉬는 시간이 없냐고 이야기한다. 쉬는 시간은 따로 정해져 있지 않다. 내가 치료를 마치고 나면 다음 환자가 치료해 주기를 바라며 기다리고 있다. 우리에게 환자는 고객이다. 치료사에겐 한 타임 치료가 끝난 시간이지만 다음 환자에겐 치료가 시작되는 시간이다. 조금만 쉬자고 시간을 지체하면 손해 보는 건 다음 환자이다. 물이라도 한 잔 마시느라 늦으면 돌아오는 건 불평 섞인 항의가 전부.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죄송하다는 말 뿐이다. 가끔은 내 몸을 갈아서 치료한다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치료하든 돌아오는 건 매달 같은 월급인데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는지 고민하게 된다. 이런 고민은 직업을 계속 이어가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까지 도달하게 한다.


이런 나날이 지속되던 와중 텔레비전에서 익숙한 소리가 들려왔다. 김사부의 고함치는 소리. 실로 오랜만에 들어본 돌담 식구들의 목소리였다. 자리에 앉아 물끄러미 드라마를 지켜보았다. 몇 년이 지난 후에도 화면 속 그들은 그대로였다. 환자를 살리겠다는 열의 하나로 세상과 맞서 싸우는 모습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하지만 처음에 받았던 그 느낌과는 사뭇 달랐다. 한참을 바라보았다. 바뀐 건 나였다.

돌담 병원의 사람들처럼 될 것만 같았던 나였건만. 꿈꾸던 나는 온데간데없다. 타임 수를 채우기 위해 환자를 통계 한 명으로 대하고 있는 치료사 한 명이 되었다. 사람 생명을 가지고 어떻게 돈으로 논하냐며 분개하던 그 시절의 내가 그리워진다.


"가치가 죽고, 아름다움이 천박해지지 않기를”


고은 시인의 편지 글 중 한 문장이다. 김사부를 연기한 한석규 배우님이 수상소감에 전한 드라마의 전체 기획의도이다. 병원이란 사람의 생명과 삶을 매개로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곳이다. 하지만 그 사실이 높은 가치를 부여해 준다. 그렇기에 돈이 아닌 가치를 부여잡고 가야 그 본질이 훼손되지 않는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세상 모든 곳이 가치를 매도한다 할지라도 어딘가에 가치를 잊지 않는 돌담 병원이 있을 거라 믿는다. 내가 있는 곳이 그곳이 되기 원한다. 내가 가는 곳이 그곳이 되기 원한다. 조금씩 바뀌어만 가는 어린 치료사 한 명이지만 내가 평생 몸 담게 될 그곳이 돌담 병원이길 원한다. 마치 수상소감을 마무리하는 한석규 배우님의 대사처럼.


"이 시대에 죽어가는 소중한 가치들 촌스럽고 고리타분하다고 치부돼가는, 그러나 실은 우리 모두가 아련히 그리워하는 사람다운, 사람스러운 것에 대한 향수들. 사람은 무엇으로 살아가는지 나는 왜 이러고 살아가는지, 길을 잃은 많은 사람에게 따뜻한 위로와 용기를 전할 수 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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