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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

물리치료사의 마음 이야기

"L2에서  S1까지 EMG 결과 Denervation potential로 인해 Lower extremity의 motor revovery 기대하기 어려워, ADL 증진을 위해 Dynamic sitting balance training을 통한  Independent wheel chair transfer 및 ambulation 증진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치료가 시작되는 8시 30분의 물리치료실. 의사, 물리치료사, 작업치료사, 사회사업팀 등 각 파트의 전문가가 모여 환자와 보호자와 함께 회의를 진행한다. 알아듣기도 힘든 의학용어가 쏟아지는 자리 한가운데에서 당사자는 자신의 이야기를 알아듣지 못한다. 모든 파트의 브리핑을 마친 후, 담당 교수님께서 전체적인 치료 계획을 요약하여 환자에게 전달하지만 전체를 이해하지는 못한 듯하다.

 회의가 끝나고 모두가 자리를 떠나갔다. 남겨진 건 환자와 보호자, 그리고 그들의 담당 치료사인 나. 지금까지의 상황을 정리하는 듯 말없이 치료 테이블에서 휠체어로 옮겨 타는 환자의 얼굴에 복잡함이 담겨있다.


"아까 했던 이야기를 다시 한번만 설명해 줄 수 있을까?"


사실 환자 분께서 원하는 이야기가 무엇인지는 알고 있었다. 다시 걸을 수 있을까에 대한 희망. 이번 회의를 기다려왔던 이유이기도 했다.

 그 마음을 알기에 주저할 수밖에 없었다. 머릿속에서는 최대한 쉽게, 마음을 건드리지 않는 선에서 한 글자 한 글자 단어를 조합해보지만 차마 입 밖으로 말이 나오지 않는다.


"검사 결과 상으로는 다리 근육에서 나타나는 신경 반응이 나타나질 않았어요. 그래서 일단은 서고 걷는 것보다는 휠체어에서 건강하게 생활하는 것에 대해서 우선적으로 치료를 하게 될 것 같아요."


 이 정도 문장으로도 전체의 맥락을 이해할 수 있는 분이었다. 잘 돌려서 이야기했다고 생각했지만 마음에 와 닿는 충격을 완화시키기엔 부족했다. 눈가엔 눈물이 차올랐고 한 방울, 두 방울 흘러내렸다. 다음 환자 분의 치료 시간이 되었지만 침묵을 깰 수 없어 눈물이 흐르는 시간을 한참이나 함께 했다. 앞으로 걷기 힘들 것이라는 판정을 받게 된 그 날. 유난히도 하늘이 맑은 그런 날이었다.


 급성기 환자들을 치료하다 보면 숙명처럼 받아들여야 하는 순간이 있다. 아무리 현대 의학이 발달했다 한들 사람의 힘으로는 더 이상 해줄 수 없는 것들이 존재한다. 기술이 미치지 못한 곳에 병이 침범하면 이는 이미 사람의 영역이 아니게 된다. 이러한 이유로 모두가 낫고 싶다는 희망으로 병원을 찾지만 모두가 희망하는 만큼의 회복을 가져갈 수는 없다. 그렇기에 병원은 생사화복의 모든 순간을 담게 된다.

 안타까운 소식을 전하게 된 환자는 특별히 내가 아끼던 분이었다. 늘 환자인 자신보다 치료해주는 내가 힘들까 봐 안 되는 것도 혼자 해보려는 배려를, 둘러봐도 아픈 사람들밖에 없는 병원에서 언제나 나을 것이라는 희망을, 주위에 밝게 비춰주시는 분이셨다. 그런 분께 나는 그 희망을 거두어들이는 말을 전해야 했다. 피하고 싶지만 피할 수 없는 그런 숙명과 같은 순간. 우리는 그 순간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환자의 예후를 판단해서 이야기할 수 있는 법적 근거는 의사 선생님께 있다. 즉 의사결정(Descision making)을 하는 것은 의사 선생님이다. 우리는 그 과정(Process) 진행하는 사람들이다. 희망뿐 아니라 절망을 전해야 하는 상황에서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다. 그렇지만 최선의 결과를 내기 위해 많은 것들을 공유하게 된다. 우리 또한 완벽한 자유를 가질 수는 없다. 그 날의 그 상황처럼 말이다.


 기적은 주인공에게만 일어나는 일 같다. 나는 그 기적이라는 것을 경험해 본 적이 없다. 내 눈 앞에서 벌어진 적도 없다. 모두가 바라지만 벌어지지 않기에 기적이다. 기적은 기대하는 데서 생겨나지 않는다. 그것이 세상의 모순이고 현실이다. 사실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기적이기도 하다. 가령 기적을 경험했다 할지라도 계속해서 다음 기적을 바라면 이를 요행이라 부른다. 그렇기에 기적은 현실에 냉랭하다.


 나는 그럼에도 기적을 바란다. 내 평생에 뵙게 될 환자 중 한 명이라도. 아니, 사실은 내가 만나는 모든 환자 분들께 기적이 일어나길 바란다. 당사자가 느끼는 간절함만큼일지는 알 수 없으나 진심으로 매 순간 기적을 기도한다.

 앞에 계신 분께서 깨어나시기를, 앞에 계신 분께서 자리에서 일어나시기를, 앞에 계신 분께서 당당히 걸어 나가시길을. 어쩌면 요행이 될지도 모르는 기도를 오늘도 드리며 치료실로 나아가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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