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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물리치료사의 마음 이야기(후회하지 않을 한 명)

눈을 떴는데 한쪽 팔에 감각이 없다. 아니 정확히 표현하자면 아무 느낌이 없다기보단 마치 고운 모래가 내 팔에 흩뿌려져 존재하는 그런 기분이다. 공중에 흩날리는 듯한 내 팔을 보며 식은땀이 흘렀다. 아 큰일 났다. 이런 일이 나에게도 일어나다니. 분명 눈에는 보이는데 움직이지도 느껴지지도 않는다. 한참을 반대 팔로 만져도 보고 두들겨도 봤지만 아무 소용 없었다. 수많은 마비 환자를 보아온 내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에 미치자 두려움이 밀려왔다. 머릿속은 고요한 진공 상태가 되었다.

 나의 심적 호들갑과는 다르게 십여분이 지나자 팔에 감각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너무 오랜 시간 팔이 눌린 채 엎드려 잔 탓인지 신경이 조금 많이 눌려 있었나 보다. 혹시나 더 큰 문제가 아닐까 하던 나의 걱정과는 다르게 한 번 돌아온 감각은 고속도로가 뚫리듯 순식간에 살아났다. 잠깐의 시간이었지만 영겁의 시간을 보낸 듯 기운이 빠졌다.

 다행히 별일 아니었지만 내가 최근에 겪었던 것들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일이다. 이론으로만 알고 행해왔던 일이 정작 나에게 다가오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이란. 짧은 시간 속에서도 강렬하게 느낀 몸이 멈춰버린 그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내 환자들은 이런 상태로 24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들이 겪고 있는 공포와 아픔은 상상을 초월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기존에 가지고 있던 관념이 무너졌다. 단편으로 전체를 이해할 수는 없지만 ‘피부로 와 닿는다’는 표현이 정말 피부에 와 닿았다. 순간의 경험이 나의 살갗을 스친 것만으로도 온몸의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지난주 한 보호자가 눈물을 보이셨다. 하루아침에 몸의 반을 쓰지 못하게 된 남편을 보며 감당하기 힘든 감정에 빠지신 듯 했다. 보호자에게 다가가 이야기를 나누었다. 몇 마디의 대화 만으로도 눈물은 흐느낌까지 이어졌다. 남편이 회복될 수 있겠냐는 질문에 아무 대답할 수 없었다.

 남들보다 조금 더 안다는 이유만으로도 한계를 미리 깨닫는 순간이 있다. 희망보다는 할 수 없다는 현실이 먼저 보인다. 이런 사실은 종종 나를 힘들게 한다. 더욱이 완벽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희망을 주어야 하는 때가 있다. 처음에는 모르기에 당당했다. 모르지만 일단 해보자는 이야기에 더 큰 기대를 품게 하고는 했다. 조금의 변화로도 기뻐했다. 그래서 당시의 치료는 설레였다.

 하지만 지금은 희망에 가득 찬 말이 힘들다. 기대가 무너지는 순간을 많이 봐서일까. 한 때의 희망이 절망으로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이 나를 조심스럽게 만든다. 내가 드린 희망만큼 나를 원망하지는 않을까. 괜한 말이 스스로를 다그치게 하지는 않을까. 할 수 있다는 말이 혹여나 거짓말이 되지는 않을까. 이런 마음이 모여 말을 아끼게 한다. 이렇게 말조차 겁내는 나 이다. 그렇기에 눈물 짓는 보호자에게 건내 드릴 수 있는 말은 하나밖에 없었다.

“결과는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손의 느낌을 잃었던 찰나의 순간 덕분에 알게 되었다. 치료에 협조적이라도, 혹은 그렇지 않더라도 치료를 받으러 오는 것만으로 환자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 움직이지 못할 것이라는 공포와 무딘 감각에 싸우며 치료에 몸을 맡기고 있다. 환자는 환자의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젠 내가 최선을 다하기만 하면 된다. 결과의 좋고 나쁨은 환자의 최선에 대한 결과일 뿐, 나의 역할은 거기 까지 이다.

  예전의 노력은 나의 만족을 위한 노력이었다. 내가 치료한 만큼 보이는 호전에 대한 만족. 결과를 내가 만들었다는 자신감의 표출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노력은 조금 다르다. 나의 전심을 쏟아 부었을 때, 후회하지 않을 한 명. 언젠가 되돌아 보았을 때 후회를 남길 한 명을 만들지 않기 위해 오늘의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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