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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누구나 웅크립니다.

물리치료사의 몸 이야기(웅크림과 성장)

 나는 겁이 많다. 시작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크다 보니 어떤 일이 생기면 겁부터 난다. 어렸을 적부터 시작도 하기 전부터 겁먹냐는 이야기를 많이 듣기도 했다. 일이 생기면 맞서기보다는 웅크리는 것이 우선시되다 보니 한껏 웅크린 채 추위를 피하는 모습을 보자면 마치 겨울잠 자는 곰과 닮았다는 생각마저 든다. 이런 모습을 스스로의 한계로 인식해서일까. 문제에 당당히 맞서는 사람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동경의 시선으로 바라보고는 한다.

 웅크림은 아픔으로부터 나를 지켜내기 위한 미봉책이라 생각해왔다. 그래서 웅크린 나를 보며 겁먹은 나를 다그치듯 때로는 자책을, 때로는 비판을 했다. 당당하게 맞서 보자며 자신에게 주문을 걸어 보지만 잠시일 뿐. 다시 움츠러드는 나를 발견했다.

    


 아이들은 웅크린 모습으로 태어난다. 정확히 말하자면 배 속에서부터 웅크린 채 성장한다. 무엇인가에 한껏 겁을 먹은 것처럼 몸을 둥글게 말고 있다. 뱃속에서는 작은 공간에서 자라기 위해서라는 이유로 볼 수 있겠지만 태어난 후에도 한참을 그 자세를 유지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런 자세로부터 몸을 펴는 건 태어나고 약 6개월이 지난 후. 혹여나 10달을 채우지 못하고 조기 출산하게 된 미숙아들은 인큐베이터 속에서 이 모습을 유지하도록 만들어준다. 그렇다면 이렇게 아이들이 웅크린 이유는 무엇일까? 단순히 세상에 겁먹어서라는 이유만으로는 이렇게 장시간 웅크린 모습을 설명하기 어렵다.


 뱃속에서 아이가 둥글게 웅크리고 있는 모습을 생리적 굴곡(Physiological flexion)이라 부른다. 병리적 소견이 없는 아이들의 경우 공통적으로 이 자세를 취하게 되는데 이는 성장을 위한 준비 과정이다. 사람은 출생과 동시에 생존할 수 없다. 뇌와 신체가 생존에 부족한 상태로 태어나기 때문에 세상에 나오고 나서야 이를 위한 성장이 일어난다. 그것이 도드라지게 보이는 것이 첫 1년. 뇌의 성장과 더불어 신체적 성장이 일어난다. 뇌는 수초화라는 작업을 통해 언어, 인지적 발달을 보여준다. 그리고 목조차 가누지 못하던 신체는 점차 자신의 무게를 이기며 차츰 몸을 세우게 된다. 특히 몸을 지탱해 주는 근육들은 몸을 펴주는 근육으로 중력에 대항하여 꼿꼿이 세워주는 역할을 주로 한다. 웅크린 자세는 해당 근육들이 가장 늘어나 있는 자세로 아이들의 성장에 있어 몸을 펴주는 근육들이 충분히 힘을 쓰며 자랄 수 있도록 길이 확보를 해주는 역할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웅크림이 있어야 점차 몸을 가누고 본능적으로 일어서는 것이다.

 또한 웅크린 자세는 손과 발이 만나는 가장 가까운 자세이다. 신체적 미성숙 상태에서 출생한다는 것은 시력을 포함한다. 온전치 못한 시력에서 단계적으로 눈의 능력이 좋아지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보는 것뿐 아니라 만지는 행위를 통해 자신의 몸에 대한 지도를 머릿속에 그리게 된다. 그 지도가 있어야 보지 않고도 우리 몸을 움직이는 것이 가능해진다. 결과적으로 몸에서 가장 먼 발을 만지고 보면서 신체에 대한 인식력을 높이고 몸의 움직임을 다양하게 만들어낼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이렇게 다양한 이유로 아이들은 몸을 둥글게 말아 세상에 나갈 준비를 한다. 처음엔 누구나 웅크린다. 나는 그렇게 자라왔다. 누구도 다르지 않다. 그렇게 자라왔기 때문에 지금처럼 살아갈 수 있다. 부족하기 때문에 웅크렸고 그 때문에 자랐다. 몸의 성장만큼이나 마음의 성장도 마찬가지이다. 웅크린다는 건 자라나기 위한 준비 과정이다. 오히려 준비가 없으면 정상적인 자라남도 없다. 부족함이라 불렸던 그 모습이야말로 내가 자라나기 위한 성장의 바탕이었다.


 겁이나 웅크린다는 건 내가 아직 성장의 여지가 남아있다는 말이다. 두려움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을 넘어서는 것이 용기라 한다. 다치지 않고 당당히 문제와 대응할 수 있게 자라기 위한 준비를 하며 마음을 키운다. 나의 웅크림을 더 이상 비판도 자책도 하지 않는다. 그저 자연스러운 과정이라 여기며 함께한다. 나는 오늘도 어김없이 웅크린 처음을 맞이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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