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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어공주의 비애

물리치료사의 몸 이야기(감각의 분류)

 왕자를 위한 순수한 사랑을 그린 이야기 ‘인어공주’. 안데르센의 세 번째 작품집에 수록되어 있으며 안데르센이 가장 감동적이라 여기는 작품이라 한다. 비록 결말은 슬프나 작품에 그려진 사랑의 아름다운 덕분인지 다양한 형태로 지금까지 사랑받고 있다.

 어렸을 적 읽었던 인어공주를 지금에 와서 다시 읽어보니 감회가 새롭다. 그 시절의 나와 지금의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 그런지 보이는 것들이 다르다. 내용은 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커다란 이야기의 줄기만큼이나 세세한 요소가 눈에 들어와서일까. 새로 발견한 문장에서 전과는 다른 감상이 떠오른다. 새로운 감정과 상황. 지금과는 다른 시선으로 인어공주를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바다의 왕의 여섯째인 막내 인어공주는 인간 세상을 구경하러 나왔다가 배의 갑판에 있는 왕자를 보고 사랑에 빠진다. 사랑에 빠진 인어공주는 왕자가 탄 배가 난파되어 죽을 위기에 처하자 왕자를 해안가로 데려가 왕자를 구하게 된다. 점점 더 큰 사랑에 빠진 인어공주는 인간의 다리를 얻어 지상으로 올라가 왕자를 만나는 결심에 이르게 된다. 하지만 이를 위해 찾아간 마녀는 다리의 대가로 목소리를 받아감과 더불어 왕자가 다른 사람과 결혼하면 그녀가 물거품이 되어 사라진다는 말을 전한다. 그 사랑이 얼마나 큰지. 인어공주는 이 제안을 승낙하게 되고 다리를 얻어 인간이 된다. 그리고 세상으로 나아가 꿈에 그리던 왕자를 만나게 된다. 이 모든 과정이 행복의 연결 과정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왕자는 인어공주를 알아보지 못하고 결국 이웃 나라 공주와 결혼하게 된다. 왕자의 심장을 찌르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올 수 있는 인어공주였지만 칼을 바다에 던지고 거품이 되어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비극적인 사랑이라 더 애틋하게 그려진 인어공주의 이야기. 그 이야기 속에는 목소리마저 포기하고 걷고자 얻은 두 다리가 있었다. 안데르센은 인어에서 인간이 되는 매개체로 말이 아닌 다리를 선택했다. 안데르센의 선택은 무엇을 위해서였을까? 왜 그토록 인어공주는 정서적 교감이 아닌 신체적 유대감을 원했을까?

 인어공주가 바다에서 나와 발을 딛는 순간을 생각해보았다. 해변가의 모래가 알알이 발을 포근히 감싸준다. 처음으로 받아보는 체중이 발끝에서부터 사뿐히 타고 올라오는 것을 느낀다. 물결이 아닌 바람결이 피부를 감싸고, 스치는 바람에 담긴 태양빛이 몸에 뭍은 물기를 말린 덕분에 따뜻함과 서늘함이 교차한다. 왕자를 향한 마음에 설레는 마음으로 나왔다지만 느껴본 적 없는 새로운 감각이 자신을 뒤덮었을 것이다.      

 왕자를 향한 사랑으로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기엔 그 느낌이 너무 선명하고 새로웠을 것이다. 새롭게 얻은 두 다리에 맞게 신경이라는 길이 생겨나야 한다. 신경으로는 전기 신호를 통해 감각, 쉽게 말해 ‘느낌’이라는 것이 뇌를 향해 올라간다. 이런 감각은 분류법이 다양하지만 크게 특수 감각과 일반 감각으로 나뉜다. 일반 감각은 촉각, 진동감각, 통각, 온각, 고유감각 등 몸 어디에서든지 느낄 수 있는 감각을 말하고, 특수 감각은 눈, 코, 입, 귀에서만 받아들일 수 있는 후각, 시각, 청각, 미각, 전정 감각을 이야기한다. 어류의 꼬리에서 사람의 다리로 바뀌며 모양도 피부도 바뀐다. 때문에 새로운 일반 감각들이 생겨나야만 하는 상황이다. 이는 새로운 신경이 생겨나는 결과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특수 감각은 바뀌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 두 다리로 일어설 뿐 아니라 중력에 맞서 몸을 세워야 하기 때문에 눈으로 보는 위치가 높아졌을 것이다. 더 멀리 볼 것이고 이를 위해 목을 더 곧게 세워야 할 필요가 생긴다. 또한 몸의 움직임을 감지하는 전정기관은 높아진 무게 중심만큼이나 몸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몸을 세워주기 위한 새로운 작업에 들어가게 된다. 이처럼 지금과는 다른 다양한 감각들이 쏟아져 들어오면 새로운 몸이 구성된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속담이 있다. 속담처럼 감각 자극은 몸을 구성하는 씨앗과 같다. 심은 씨앗을 토대로 결과물이 나온다. 그렇기에 우리가 환자를 치료할 때 올바른 감각 자극은 새로운 몸을 만드는데 정말 소중한 씨앗이다.


 이런 변화뿐 아니라 예상해보건대 인어공주가 만약 인간의 다리로 오랜 시간 지냈다면 허리가 아플 가능성이 높다. 우리 몸의 척추는 땅을 향해 쏟아지는 중력에 대응하여 두 발로 설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그만큼 큰 하중을 유연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인어공주의 십여 년이 넘는 인생에서 허리가 그 역할을 한 적이 없다.

 실제적인 예가 바로 우주 비행사이다. 우주 비행사들이 우주 비행을 하고 지구에 돌아오면 공통으로 호소하는 증상이 허리 통증이다. 무중력 상태에서는 등 근육과 디스크에 걸리는 부하가 거의 사라진다. 더구나 온도가 낮아지며 허리 주위 근육이 긴장 상태에 놓이게 되고 장시간 노출되면 주변 조직까지 뻣뻣해지게 된다. 그래서 중력에 노출되는 지구에 돌아와 중력, 즉 몸무게를 받는 순간 통증으로 연결된다. 이런 이유로 지구를 벗어난 우주 비행사들에게 하루 일정량의 운동을 의무적으로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수중은 무중력은 아니긴 하나 부력으로 인해 중력의 노출이 적은 상황이다. 그래서 자신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는 마비 환자들은 오히려 수치료를 통해 물속에서 부담을 줄이고 비교적 자유로운 움직임에 대한 교육을 받게 된다.

 통증은 인간이 생존하기 위한 가장 필수적인 감각 중 하나이다. 이처럼 비교적 적은 중력에서 생활해 왔던 인어공주가 갑자기 받게 된 하중 덕분에 생기는 웃지 못할 새로운 감각이 허리 통증일지도 모르겠다.     


 신체적 접촉이 정서적 안정과 발달에 필수적이라는 연구 결과는 너무나도 많다. 그만큼 신체적 가까움은 정서적 유대감을 연결하는데 중요하다. 말하지 않아도 피부로 느끼는 감각 덕분에 사람은 사랑을 느끼고 감정을 공유한다. 지금까지 이야기한 일반 감각, 특수 감각, 통증, 모두 말로 설명하는 것이 아닌 몸으로 느끼는 감각들이다. 인어공주는 이런 감각을 위한 신경을 연결하며 새로운 세상에 문을 열었다. 때로는 말 한마디보다 가까이에서 쓰다듬어주는 손길 한 번이 마음과 마음을 연결해주는 연결고리가 되어주기 때문에 말이다.


 어떤 이유인지는 알 수 없으나 신체적 거리가 가까워지는 것이 사랑의 표현이 됨을 선택한 안데르센의 선택. 말이 아닌 다리를 주기로 한 그 선택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비록 비극적인 사랑으로 끝을 맺은 인어공주이지만 처음 발을 내디딘 그 순간, 발끝에서 느낀 감각은 분명 사랑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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