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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물리치료사의 마음 이야기(사랑과 간병)

 동서양을 막론하고 종교, 예술, 문학 등 모든 장르에서 빠지지 않는 단골 소재가 바로 ‘사랑’이다. 어느 언어의 정의를 보아도 하나의 뜻으로 의미를 정할 수 없는 참으로 쉽고도 어려운 단어다.

 사랑의 어원은 그 가짓수 또한 다양하다. 주로 이야기하는 어원은 크게 두 가지. 생각 사(思), 부피 량(量)이 합쳐진 ‘사량’이 사랑으로 바뀌었다는 유래 하나와, 삶, 사람, 사랑의 원형인 ‘살’이라는 단어에서 시작되었다는 유래, 이렇게 두 가지가 대표적이다. 사랑을 뜻하는 영단어 ‘Love’의 어원은 ‘기뻐하다’라는 뜻의 라틴어 ‘Lubere’에서 왔다고 하니 하나의 마음에 품고 있는 의미가 너무 풍부할 따름이다.

 병원에선 본 적 없는 사랑의 의미를 볼 때가 있다. 내가 앞서 알던 의미와는 다른 모습을 띄고 있는 사랑을 마주할 때면 신기함을 넘어 의문이 든다. 정말 이런 사랑이 가능한 걸까.     


 오랜만에 젊은 환자가 병원에 입원했다. 나는 치료를 시작할 때부터 성인을 담당하다 보니 어린 분들을 보면 왠지 모르게 낯선 느낌이 있다. 내가 담당은 아니었지만 전두엽을 다쳤는지 치료 시간이면 소리를 지르며 저항이 심한지라 치료실 내에서 꽤 유명했다. 시간이 지나 모두가 그 환자의 이름을 알게 될 때쯤 앳된 보호자의 모습이 보였다. 언제 보호자가 바뀌었는지 조금은 서툰 모양새로 간병을 하느라 언제나 분주했다. 그래도 환자와 나이대가 맞으니 장난도 쳐가며 꽤 부드러운 분위기를 만들어 주었다. 덕택에 치료도 한결 수월해진 느낌이었다.

 내 환자가 아니라 대화해볼 기회가 없었다. 그래서 당연히 가족이라 생각했다. 언뜻 보면 닮았기도 했고 비슷한 나이대의 보호자라면 가족 외에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선입견이라 할 수도 있겠으나 내 기준에서는 당연한 상식선이었다. 여태까지 대부분의 경험이 그랬으니까.

 하지만 세상은 언제나 상식을 넘어선다. 알고 보니 보호자는 환자의 여자 친구였다. 하지만 그보다 더 충격적이었던 사실은 따로 있었다. 서로 알고 지낸지는 오래됐으나 연인으로서 맺은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다. 둘은 사귀게 되고 겨우 일주일도 채 되지 않은 사이였다. 이해하기 힘들었다. 가족도, 부부도 아닌 이가 고작 며칠 사귀었다는 이유만으로 대소변을 치워가며 간병을 한다는 사실이.

 ‘그럴 수도 있지’라는 단순한 이유로는 납득하기 어려운 문제였다. 재활병원의 환자를 간병한다는 것은 그만큼 힘든 일이다.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환자의 하루를 챙긴다는 것은 혼자서 두 명의 삶을 사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그런 어려운 길을 어린 나이에 연인이기에 감당한다는 사실에 놀라울 따름이었다. 이해할 수 없을 만큼 말이다.      


 사랑은 담기는 사람에 따라 모습을 달리한다. 이에 정의할 수 없는 깊이와 밀도를 가진다. 언어마다 다른 뜻으로 설명되고 각기 다른 어원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사랑은 언제나 놀랍다.


“아무리 여자 친구여 도 간병하려고 마음먹기 힘들었을 텐데 어떻게 그런 어려운 결정을 하셨어요?”


 입원 기간 중 내가 치료하게 되어 보호자와 이야기할 기회가 생겼다. 그간의 궁금증을 보호자에게 물어보았다. 의외로 답변은 간단했다. 하지 말아야 할 이유 백 가지보다 해야 할 이유 하나가 중요했다. 시간과 관계로 설명할 수 없었던 상황은 말 한마디로 해결되었다.


“사랑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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