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숨결이 흐를 때

물리치료사의 몸 이야기(호흡의 과학)

 그르릉 하는 가래소리, 코와 입이 아닌 목에 뚫려 있는 관에서 뿜어져 나오는 숨이 환자의 상태를 보여준다. 잦지만 얕은 숨. 시시때때로 뿜어낼 가래를 품고 간신히 얇은 플라스틱 관에 의지하며 드나드는 호흡을 이어가는 생명이 눈앞에 와있다. 조금만 건드려도 기침이 쏟아지는 숨을 밀어내며 결을 바꾸려는 치료를 해간다.     

 숨에는 결이 있다. 사람과 상황마다 결은 다양한 형태로 모습을 드러낸다. 내쉬는 숨은 느낄 수 있는 결을. 들이키는 숨은 보이는 결을. 언뜻 보면 무채색의 스케치처럼 보일 만큼 단순함도 자세히 보면 형형색색의 수채화 같은 다른 모습을 보인다. 더욱이 가지각색의 모양을 한 숨이 환자에게 있을 때 그 결은 무채색 스케치와 수채화 중간 어디쯤 모호한 형태로 나타난다. 우리가 치료를 하며 특히나 신경을 쓰는 이유이다.  


 보통의 사람은 1분에 12번에서 18번의 호흡을 쉰다. 하루로 치면 17,280번을 넘는 엄청난 양의 숨이 드나든다. 흥미롭게도 이렇게 많은 호흡을 하면서 우리는 그 사실조차 알지 못한다. 마치 심장이 뛰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심장과는 또 다른 것이, 호흡은 일정 부분 수의적 조절이 가능하다. 이를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 바로 횡격막. 호흡을 가능하게 해주는 주된 근육이다.

 평상시 호흡은 뇌줄기에 의해 조절되고 있다. 폐의 수축과 팽창뿐 아니라 혈액 내의 산소와 이산화탄소 등의 화학적 변화를 수용체들이 감지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호흡수나 호흡의 깊이를 조절한다. 특히 산소보다는 주로 이산화탄소의 분압에 더 큰 영향을 받고 있다.

 이러한 호흡의 조절은 대부분 무의식적 영역에서 조절된다. 하지만 변연계의 신호를 받아 감정에 따른 영향을 받기도 하고 무엇보다 대뇌를 통해 의식적인 조절을 가능하게 한다. 호흡이 훈련이라는 과정을 통해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는 뜻이다. 최근 많아진 요가나 필라테스 센터에서 호흡법만을 가르치는 과정이 별도로 생기고 있는 만큼 자의적인 호흡법의 제어만으로도 다양한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 호흡은 이렇게 일반인조차 커다란 변화를 가져다줄 수 있다. 그렇다면 환자에게 적용하면 어떻겠는가. 이루 말할 수 없는 삶의 전환을 가져다줄 수 기회를 만들어준다.      


 환자가 가진 숨은 비전문가가 보아도 알 수 있을 만큼 결을 달리한다. 근육병이나 척수 손상 환자는 호흡근 자체의 마비로 인해 그 기능을 잃어 호흡이 약화된다. 또한 뇌 질환 환자는 호흡 기능 자체의 문제뿐 아니라 기도 흡인에 의해 기도 자체가 보호되지 않는 복합적인 문제를 가지게 된다. 한 번이라도 이들의 숨결을 느껴본 적 있는가? 누구라도 그들의 숨길이 약하다는 것을 단번에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일반적인 호흡은 복식호흡과 흉식호흡이 복합된 모습을 하고 있다. 호흡의 형태는 일정한 패턴을 띤다. 숨을 들이마시면 가슴과 배를 가로지르고 있는 횡격막이 아래 방향으로 돔의 형태로 늘어난다. 마치 우산이 펴지는 모습처럼 말이다. 그리고는 갈비뼈 사이에 있는 근육들이 수축하면 흉곽을 옆으로부터 위까지 차례로 확장한다. 배부터 흉곽의 상부까지, 순서대로 공간을 넓히며 새로운 공기가 들어갈 자리를 마련해준다.

 하지만 환자분들께선 이러한 패턴이 망가져 있다. 호흡근의 약화로 횡격막의 움직임이 줄어든다. 어찌어찌 배의 공간 확장이 이루어진다 해도 갈비 사이 근육의 마비로 흉곽이 무너져 배만 볼록한 모습이 된다. 이런 모습의 호흡이 반복되면 점차 폐의 용적이 작아지며 호흡의 깊이가 얕아지고 결과적으로 이를 횟수로 대체하며 호흡수가 잦아지는 결과를 낳는다.

 문제는 들숨뿐 아니라 날숨에서도 발생한다. 강한 호기, 즉 기침이 어려워지며 기도에 걸린 이물질을 빼내기 힘들어진다. 가래 등의 이물질을 제거하지 못하므로 폐렴의 위험이 높아진 상태에서 공기가 드나드는 통로가 좁아지게 되고 자연스럽게 폐활량이 줄어든다. 이런 악순환이 반복되어 점차 기능을 잃어간다.     


 이렇게 나빠질 수밖에 없는 연결고리를 깨뜨리는 것에서부터 우리의 일은 시작한다. 엠부(Ambu)로 불리는 공기주머니로 들숨에 공기를 밀어 넣어 주며 작아진 폐를 늘려준다. 움직임이 없어진 흉곽을 늘려주고 기침을 할 수 있게 보조한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정상적인 패턴의 호흡을 되찾아 가는 모습을 보며 생기를 찾아가는 숨결을 다시 한번 느껴본다.


 색채를 형용할 수 없는 숨결이 기세를 잃어간다. 금방이라도 꺼질 것 같은 이들의 숨, 결을 달리하는 이들의 호흡에 깊은 한숨을 넣어 불씨를 살려본다. 때로는 근심이 담긴 채 깊이 몰아쉬는 한숨이 어느 순간엔 사람을 살리는 잠깐의 한숨이 되어 결을 부풀린다. 미약하지만, 어렵지만, 형형색색의 모습으로 다시금 뻗어 나갈 삶으로 나타나길 기대하며 살아날 이들의 숨을 조금씩 색칠해 본다. 결이 바뀐다. 사람도 바뀐다.

이전 16화 사람 냄새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