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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냄새

물리치료사의 마음 이야기(사람의 향기)

 병원 생활을 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개코가 되었다. 병원은 아픈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특히나 내가 뵙게 되는 환자의 대부분은 사람의 기본적인 활동이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이유로 배설 기능에도 문제가 있다 보니 웃지 못할 일들이 종종 생기고는 한다.


 태생적으로 나는 코가 둔한 편이라 냄새를 잘 맡는 그런 사람은 아니었다. 하지만 향에 무딘 사람이 예민함을 갖기까지 그렇게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그저 몇 번의 일화만 있으면 될 뿐. 지금 생각하면 웃음 짓는 몇 번의 이야기를 적어보고자 한다.(조금 지저분한 내용이 섞여 있을 수 있으니 비위가 약하신 분들께서는 참고해 주셨으면 한다.)


 때는 바야흐로 병원 생활을 시작하던 나의 초년차 시절. 한창 치료를 배우느라 정신없던 시기였다, 치료가 끝나고 알 수 없는 향긋한 냄새가 올라왔다. 잘 씻지는 못했으나 인지가 떨어지는 분은 아니었기에 가스가 나온 정도로 생각했다. 하지만 치료가 끝난 후 시간이 한참 지나도 냄새가 사라지지 않았던지라 정체를 알 수 없던 냄새를 따라 추적해 가기 시작했다. 환자가 떠나간 자리엔 거뭇거뭇한 가루가 길을 따라 떨어져 있었고 모두가 나서 이를 닦았다. 가루만으로도 내용물이 무엇인지 어림짐작할 수 있었다. 다행히 양이 많지 않아 안심하던 그 순간.

“으악!”

 비명 소리와 함께 한 명의 선생님이 화장실을 향해 뛰어갔다. 무슨 일인가 해서 따라가 보니 가루를 따라 떨어져 있던 덩어리를 본인도 모르게 밟은 것이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다 같이 화장실로 따라가 웃었지만 웃음도 잠시, 각자의 신발을 확인함과 동시에 추가로 남겨진 잔여물의 존재를 의심했다. 다음 시간 환자가 오기 전, 모든 치료실을 샅샅이 뒤졌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더 이상의 조각을 찾을 수 없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치료 전후로 배변 냄새를 누구보다 정확하게 판별할 수 있었다.     


 그때만 해도 나는 이제 막 임상에 나온 신졸일 뿐이었다. 어쩌다 한 번 생길 법한 일 정도로 생각했지만 이런 일들은 나에게 일상이 되었다.

 앞의 일이 잊힐 때쯤이 되니 어느덧 치료뿐 아니라 이런 상황에도 나름 익숙해져 갔다. 웬만한 상황에는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대응 능력을 갖추어 가는 중이었고 한 번 깨어난 후각은 조금씩 예민함을 더해 갔다. 그러던 어느 날. 잊을 수 없는 두 번의 사건이 일어난다.


 우리의 치료는 다이나믹 하다. 동작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몸의 자세가 변한다. 그로 인해 평상시에 할 수 없었던 형태로 몸이 움직이며 신체에도 변화가 생긴다. 휠체어에 있을 때보다 몸의 긴장도가 높아지기도 하고 어지럼증을 느끼기도 한다. 이런 변화는 치료의 시작과 마지막에 가장 커지기 마련이다. 치료의 시작과 끝. 가장 사건 사고가 많은 시점인 이유이다.

 두 번의 사건 모두 치료의 마지막이었다. 한순간 높아진 몸의 높이가 익숙하지 않아서였을까. 한 명은 나의 팔을 향해, 또 한 명은 나의 발을 향해 각각 입과 다리 사이에서 구토와 소변을 뿜어냈다. 더 기억에 남는 것은 너무나 다른 둘의 반응이었다. 한 명은 미안함에 어쩔 줄 몰라하는 반면 다른 한 명의 보호자는 젖은 나의 다리를 보면서도 남은 시간 치료를 요청했다. 내게 벌어진 상황들만으로도 잊히지 않을 일이었지만 후에 보인 정반대의 반응이 이 사건을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게 해 주었다.

 두 분의 다른 반응에도 나의 대응은 같았다. 조금 매정해 보일 수 있어도 환자의 분비물은 결국 감염의 원인으로 간주되어진다. 오염된 곳을 빠른 시간 내에 소독해야 다음 환자의 치료를 문제없이 이어가기 때문에 이런 경우 치료를 지속할 수 없다. 혹시 기저귀를 차고 있을지라도 같은 이유로 치료는 불가능하다. 후자의 이해할 수 없는 반응도 평소 배변 활동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환자의 간병을 하고 있다 생각하면 이해가 가기도 한다. 소대변을 보더라도 치료는 이어 나갈 수 있다 생각할 수 있으니까. 그럼에도 치료의 시작이든 끝이든 상관없이 향이 나는 순간 바로 환자를 돌려보내게 되는 이유이다.


 이렇게 각기 다른 사람의 몸에서 나올 수 있는 거의 모든 배설물을 맞으며 일을 하다 보니 요즈음엔 냄새로 내용물을 구별 가능한 기능까지 갖추게 되었다. 물론 이런 상황들이 처음부터 마냥 유쾌했던 것은 아니다. 아니 지금도 이런 상황을 만나면 즐겁지만은 않다. 하지만 처음 병원에서 일하던 나와 다른 점이 있다면 그건 한 가지다. 이런 기본적인 생리현상이 누군가에겐 절박하다는 것. 이 사실 하나가 누군가는 코를 찡그리게 하는 냄새를 그저 사람 냄새로 나게 해 준다. 그래서 사람 냄새를 알아채는 지금의 코가 그리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에게 사람 냄새가 나는 것이 이상할리 없듯이 치료실에 넘실대는 환자의 사람 냄새가 이상하지 않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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