쥴퓨 리반엘리의 살모사의 눈부심(문학세상, 2002)에 대한 감상문
평점: 4/5
한줄평: 눈부심과 허상에 불과한 권력 앞에 실재하는 내가 당당할 수 있기를
배경사진은 첫 유럽 여행 때 루브르 박물관에서 인상 깊게 감상했던 외젠 들라크루아(Eugène Delacroix)가 1827년에 그린 <사르다나팔루스의 죽음>입니다.
<살모사의 눈부심>은 한 때 지구 최강대국이었던 오스만 제국의 수도 이스탄불을 배경으로 권력의 의미를 묻는 작품이다. 세상의 사분의 일을 소유한 술탄의 궁전에는 그에게 머리는 조아리는 수많은 신하들이 있고, 이 작품의 화자는 궁전의 가장 내밀한 곳 하렘을 관리하는 거세당한 흑인 환관이다. 환관은 이스탄불에 지진, 홍수, 화재 등 온갖 재앙이 들이닥치는 것을 보며 곧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리란 걸 예감한다.
환관이 모시는 이브라힘 술탄은 관습대로라면 애진작에 죽었을 인물이다. 오스만 제국은 새 술탄이 즉위할 경우 제국의 분열을 막기 위해 동복, 이복, 노소를 가리지 않고 모든 형제를 살해하는 형제 살해 관습을 가지고 있다. 동복형이었던 무라트 4세 술탄 즉위 당시 이브라힘 술탄은 죽을 운명이었으나, 그들의 어머니인 쾨셈 술탄의 비호 아래 카세스라는 독방에 갇히는 것으로 죽음을 면했다. 무라트 4세 술탄이 향년 27세로 요절하기 전까지 이브라힘 술탄은 언제라도 닥칠 수 있는 죽음을 두려워하며 미쳐가고 있었다. 즉위를 위해 독방을 나와야 할 때도 자신을 죽이려는 음모인 걸 모를 줄 아냐며 울부짖었다. 하지만 그의 형은 진실로 죽었으며, 독방에서 미쳐가던 이브라힘은 그렇게 세상의 사분의 일을 소유한 술탄이 되었다.
하지만 그의 재위 기간은 그다지 길지 않았다. 이브라힘 술탄이 자신의 부인을 총애함에 따라 제국 내 최고 권력 여성 자리를 잃게 될 것이 두려웠던 쾨셈 술탄은 자신의 아들인 이브라힘 술탄을 독방에 가둔다. 아들을 폐위시킨 쾨셈 술탄은 자신의 손자를 새로운 술탄으로 즉위시킨다. 후궁 한 명과 함께 또다시 독방에 갇힌 이브라힘 술탄은 비탄에 빠져 절규한다. ‘창살 안에서 사형을 기다리는 왕자였을 때도, 술탄이었을 때도, 나는 같은 사람이었네. 손, 발, 얼굴, 팔, 다리, 눈도 같아. 그런데 왜 나를 왕좌에 앉히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지? 그러니 운명은 내 손에 달려 있지 않아.’ 라며 비명을 지른다.
세상의 사 분의 일을 통치하며 아름다운 보석과 비단을 두르고 있던 술탄이었지만, 독방에 갇힌 후 그를 돌보는 이라곤 '술탄과 함께 갇힌 후궁을 사랑하던 흑인 환관'뿐이었다. 화자인 흑인 환관 역시 소설이 진행됨에 따라 독방에 갇힌 술탄을 향한 마음이 계속해서 변한다. 환관은 술탄이 독방에 갇힌 초반에는 문 밑의 틈으로 음식을 넣어주며 '무언가 잘못된 게 틀림없고, 다시 즉위할 수 있으실 거다.'라며 진심을 담아 술탄을 위로한다. 하지만 술탄을 폐위시킬 정도의 권력을 가진 쾨셈 술탄을 마주한 순간, 이것이 진정한 권력이고 존귀함이며 깡마른 손과 미치광이의 목소리로 자신에게 애걸복걸하는 독방에 갇힌 이는 술탄일 리 없다고 생각한다. 소설이 전개됨에 따라 술탄을 향한 환관의 존경은 한순간에 혐오와 무시로 바뀌었다. 이러한 흑인 환관의 모습은 권력자를 대하는 대중의 모습을 의미한다.
우리는 모두의 머리를 조아리게 만드는 강력한 권력자의 모습을 상상하곤 하지만, 실상은 우리가 ‘그가 권력을 가지고 있다’고 믿기에 그는 권력을 가지게 된다. 권력이란 스스로 쟁취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라, 다수가 그 존재를 믿을 때 생기는 허상이다. 그렇기에 이브라힘 술탄이 절규했듯이 같은 사람임에도 왕좌에 앉기도 하며 죽기도 하는 것이다. 우린 ‘저 사람 권력 없어졌네?’라고 생각만 했을 뿐인데도 그 생각은 현실에서 힘을 발휘해 권력자를 추락시킨다. 권력은 사람들의 믿음과 편의에 따라 이곳저곳으로 이동하며 대다수가 믿고 있는 사회 질서와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힘쓸 뿐이다.
현실의 우리가 별생각 없이 권력의 이동을 받아들이 듯이 <살모사의 눈부심> 세상 속 사람들도 순순히 이브라힘 술탄으로부터 그의 아들로의 권력 이동을 받아들이는 듯했다. 하지만 점차 아무 죄 없이 독방에 갇힌 술탄이 안쓰러우며, 자신의 아들을 폐위시킨 쾨셈 술탄이 사악하다는 여론이 형성된다. 이렇듯 이브라힘 술탄은 다시금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독방 속에서 권력을 얻게 된다. 이렇듯 왕관은 필요에 따라 입맛에 맞춰 누구에게라도 씌어질 수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권력을 동경하곤 하지만 권력에 한 번 휘말린 인간은 자신의 운명을 자신의 손으로 결정할 수 없다. 권력이란 손에 쥘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다수의 상상에 의해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주어지며 다수의 상상에 의해 실질적인 힘을 가지게 되기 때문이다. 권력에 휘말린 인간은 그저 생존을 위해 권력이란 파도에 맞춰 움직여야 한다. 하지만 한 때 세상의 사분의 일을 소유했던 오스만 제국의 술탄은 이브라힘은 그 위대함에 걸맞게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선택한다.
흑인 환관은 백성들이 이브라힘 술탄의 복위를 바라고 있다며 자신에게 새 술탄을 죽여라는 명을 내리라고 청한다. 이제껏 모든 술탄들이 왕좌를 위해 자신의 형제를 죽였으며, 아들들마저 죽였다며 말이다. 하지만 이브라힘 술탄은 새 술탄인 자신의 첫 아들이 태어났을 때 자신이 얼마나 기뻐했는지 알고 있다며 그럴 수 없다고 말한다. 그는 권력의 파도가 다시금 그에게 왕관을 씌우고자 했을 때, 술탄이 아닌 아버지와 인간으로서 자신의 운명을 선택한다. 이브라힘 술탄을 복위시키면 고위 관료가 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던 흑인 환관은 아쉬워하면서도 그의 숭고함에 부끄러움을 느낀다. 그렇게 이브라힘은 비단 터번을 정성스레 감고 수염을 다듬은 채 숭고한 기개로 신앙고백을 한 후 비단천에 목이 메어 죽는다.
아버지가 죽었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새 술탄의 휘황찬란한 즉위 행렬이 이스탄불 거리를 뒤덮는다. 그 휘황찬란함은 눈빛만으로도 주위의 모든 것을 마비시키는 살모사조차 눈 뜰 수 없을 정도로 눈부셨다. 하지만 그것은 결국 눈부심일 뿐이다. 그저 빛일 뿐이고, 눈만 한 번 깜빡여도 없어질 그저 빛일 뿐이다. 상상에 불과한 권력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실재하는 인간이 피를 흘리고 고통받고 있는지. 이를 생각하다 보면 인간이 얼마나 멍청한지 다시금 깨닫게 된다. 그렇기에 고귀한 혈통으로서 자신의 인간성을 마지막 순간에나마 지켜낸 이브라힘 술탄의 의지에 마음이 미어진다. 지존하고 비천한 술탄이 천국에서 나마 평안하실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