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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라 Aug 03. 2019

섬 섬 옥수 통영

느리게 살아보기


벚꽃 가득한 봄,  텁텁한 무더위 여름, 낙엽 우수수 떨구는 가을이 와도 사계절이 특별해서 내겐 언제나 반가운 곳 통영. 우연히 만나게 된 남쪽 마을 통영이 왜 끌리는 걸까.


친구 부부가 몇 해 전 아예 통영으로 내려가 정착했다. 남편의 직장 조기퇴직 강요와 벌여놓은 일들의 시행착오가 삶에 불안감을 가져온 이유가 한몫했다.  남쪽 여행 중 만난 통영이 소란스럽지도 않고  파도가 없는 잔잔한 바다와 섬이 주는 위안에 결심하게 되었 했다. 통영에 살면서  달에 한번 찾아가는 섬은 누군가를 만나는 일처럼 새롭단다. 욕지도 매물도 연화도 지심도 사랑도 읍도 홍리도 50여 개가 넘는 섬은 생이 다할 때까지 손으로 꼽아가며 방문하기에 충분하다고.

부부욕심소박하기만 하다. 일정한 분량 노동과 최소한의 소비할 비용만 있으면 된다. 그만큼 비울 거 비워내고 거둬낼 것들을 쳐낸고 난 후에 오는 삶이 아닐는지.


4월 통영 음악 때 잠시 왔다가 아쉬움을 가득 안고 돌아가 휴가 날짜를 세고 기다리다 다시 내려왔다. 태어나고 자란 곳이 아님에도 골목골목 옛 모습의 흔적들은 미처 잊지 못한 어린 날들을 기억하게 한다.  꾹꾹 눌러 잊어버리고 싶었던 오랜 시절 아픔도 누군가에 대한 그리움도 이제는 상처만은 아닌 추억으로 바뀌게 해주는 묘한 장소.

 에어비엔비에서  찍어 놓은 강구항이 바로 앞에 보이 언덕  하얀 집. 작지만 내 집처럼 편안하다. 삼도 수군 통제영과 12 공방이 있는 세병관 망루에선 바다를 품고 바다를 안은 모습이, 저녁 무렵 동피랑 언덕을 따라 전망대에 올라서면 통영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여 나만의 산책로를 만들기에 충분한 곳. 점점이  멀리 불빛이 오르락내리락하며 정박한 배도 등대도 산 중턱 집들도 숨을 고르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걸 볼 수 있다.


누구 말대로 낯선 곳에서 한 달 아니 일주일이라도 지내보고 싶었다. 늘어지게  자고  일어나 배고프면  밥 해 먹고 이따금  들춰 보고  어슬렁 돌아다니다 이것저것 그림이든 일기든 끄적거리며 게으름의 극치를 누리면서. 한 가지 지속적으로 해야 하는 게 있다면 하루 30분 요가하기. 요가만큼은 게으름이 아닌 그나마 내 몸을 세우는 나와의 약속이자 의무이기 때문에 싫어도 해야 하는 유일한 일 중 하나.

게으름? 바빠 죽겠는데 게으름이라니.

게으름은 이제 결코 나태함이 아니라는 건 살면서 체득한 몸소 깨달은 결과물이다. 온몸 굴리고 바빠봐야 몸은 고사하고 정신이 쏙 빠져 버린다. 그 옛날 어른들은 바빠야 에너지도 나오고 정신력으로 버텨야 강해진다고 강요 아닌 강요를 했었다. 먹고살아야 하는데 나태함이 뭔 말이냐고 하면서. 뼈 빠지게 노동하고 그 대가로 취하는 물질과 유흥이 암흑의 시대를 거쳐 여기까지 온 자본주의 폐해가 아니었던지.

자유경쟁 아래 여전히 빈과 부는 분리되고 보이지 않는 신분 형태로 점점 단순화되어가기만 한다. 상층으로 가려는 물거품 꿈을 안고 이룰 수 없는 꿈과 열정을 쏟아부으면서. 취업을 앞둔 딸에게도 연봉이나 기업에 연연해 시간과 꿈을 허비하기보다  자신의 시간을 조절하고 확보해서 '나답게' 살아야 한다고 강요 아닌 강요를 했다. 느긋함이 느림이 필요한 사회다.

그래서 잘 산다는 개념어는 바뀌어야 한다. 물질도 돈도 지위도 아닌 마음의 오롯한 형태를 갖추는 것으. 


 올 휴가, 집을 떠나 며칠간  하고 싶은 것이, 어딘가를 매일 열심히 돌아다는 것도 아닌 그저 삶의 속도를 늦춰보는 것이다.  느리게 할 수만 있다면, 아니 시계 추마저  완전히 추고픈 마음이 간절한 그런 쉼을 원했다.

무얼 한다기보다  하고 싶을 때 무엇인가를 하는 것, 마음과 몸이 움직이는 로 따르기. 이런 행위가 사치가 아닌데도  보면 가만히 있는 시간이  견딜 수 없이 불안하고 힘들었다.  시간 단위로 움직이고 일하고 시간을 쪼개어 누군가를 만나고 일과를 마치고 늦은 밤 잠자리에 드는 시간이 유일하게 나와의  만남이었고, 숨을 고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단 며칠이라도 시간을 잃어릴 수 있다면 아니 까마득히 잊고 있다가 세상 밖으로 아무도 모르게 슬며시 기어 나가고 싶었다.

 바삐 돌아가는 도시, 속앓이를 하고 있는 정치 문제들 뭐하나 놓치고 뒤쳐지면 바보가 될까 에 불을 켜고 들여다보(그래 봐야 sns에 을 퍼 르고 동감시키일이 전부지만)  현실의 여러 고리는 마음을  쉽게 놓아주질 않았다.

눈 가리고 귀 막으면 될까 싶다가도 이기적인 개인의 욕심이 아닐까 하는 두려움. 하지만 숨 고르기는  필요하다. 누군가와의 싸움도 경쟁도 쉼의 조율이  필요하다.  상대가 밉다가도 그에 대한 이해는 한 템포 늦춘 빈 여백에서 생겨나게 마련이다. 가족도 사랑하는 이도 내가 속한 일터도 마찬가지다.

간밤에 비가 한바탕 퍼붓고 멀리 구름 속에 가려진 햇살이 비치고 있다. 꾸물렁 거리다 일어나 소매물도 뱃 시간을 찾아보고 항구로 향했다. 작년 통영에 처음 왔을 때 식물원을 방불케 하는 꽃천지 장사도하고, 봄날의 연화도에서는  바위능선을 따라 오르내리며 잔잔한 호수 같은 바닷길을 한참 걸었다. 올 늦은 봄에는 거제에서 출발하는 배편으로 동백이 흐드러져 동백섬이라  불리는 지심도에 올랐다. 이번이 네 번 째다.

어딜 가든 배를 타고 한 시간 남짓, 멀어져 가는 육지와 항구를 뒤로하고 물살을 헤쳐 도달한 작은 섬외롭지만  말끔하다. 섬이 좋아 찾은 사람들은 이내 둘러보고 부리나케 뒤를 돌아 떠난다.

하지만 섬을 늘 그 자리 , 온갖 식물이  피고 지고를 반복하며 기다려 준다. 사람들은 변해도 그 자리 그곳에 지키고 있는 섬은 도시로 떠난 자식이 제 어미를 만나러 오는 것처럼 그저 묵묵히 반겨준다.

소매물도. 최남단의 등대섬을 따라 기암절벽과 촛대 바위를 만날 수 있는 곳. 소매물도와 등대섬을 연결해주는 몽돌 지형이 썰물 때가 되면 두 섬을 연결해주어 건너갈 수 있다.

이른 아침부터  배에 사람이 그득하다. 1시간 20분 거리, 이전의 뱃길에 비하면 가장 먼 거리다. 휴가철이라 배편이 늘었던지 생각보다 작은 배다.    승객들은 방바닥 같은 마루에 털썩 주저앉거나 누워 잠을 청한다. 선실 안과 밖을  왔다 갔다 반복하다 뱃멀미가 심해질 때쯤 도착을 알리는 고동소리가 들렸다.

 내리자마자  등대섬을 잇는 숲길로 따라간다. 습기 머금은 숲의 기운과  바다와 뒤섞인 바람이 울렁거리는 뱃속을 조금씩 가라 앉혀 준다. 도심에서 밟아 보지 못한 흙 길, 빽빽한 나무들 사이로  바다가 보인다. 오래간만에 맡아보는 깨끗한 공기, 언제 다시 느껴볼까 아껴가며 숨을 들이켠다.

높은 경사길 가뿐 숨을 몰아쉬고 등대섬을 향해 오르고 내려가니 썰물 때라 물이 빠진 돌길이 드디어 보인다. 바닷물이 갈라지어느 섬처럼 건너갈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울퉁불퉁 반질한 돌들을 건너간다.  섬과 섬이 만나는 길이 드러났다.

바다 가운데 서서 바다를 보고 하늘을 보는 일, 외부에서 나를 바라보는 것처럼 온전히 바라보게 된다. 누군가를 그렇게 온전히 볼 수 있다면.  


 둘로 나뉜 작은 섬이 어느새 길이 이어져 만나게 되는 곳. 언제든 둘도 되고 하나도 된다. 바닷길이든 육지 모든 길이 열리고 만난다. 작은 섬 위 등대는 뱃길을 잃어버리지 않게 밝혀주누군가에게는 안도와 쉼을 혹은 간절한 빛이 되어준다.

돌아오는 길, 이슬비와 땀에 흠뻑 젖어 숨을 고르는데 아리랑 아리랑 하며 즐겁게 노래 부르는 어르신을 만났다. 손 사위에 어깨춤까지  슬픈 아리랑이 아닌 기쁨에 겨운 미소 가득한 아리랑이다. 힘들 때도 기쁠 때도 굽이굽이 넘어가는 아리랑 고개, 우린 그 고개를 얼마나 건너오고 넘어왔을까. 아직도 넘어야 할 고개가 많고 견뎌야 할 고비가 많은 인생살이. 고단한 인생살이에 부르는 아리랑이 힘겹게 요동치곤 했던 마음을 가라앉혀 준다.


땀에 젖은 몸은 노폐물이 빠져나간 듯 개운하다. 돌아오는 배에서 멀리 사라져 가는 섬이 아련하다.


항구에 도착해 중앙시장에 들러 콩국물 한주머니를 샀다. 삼천 원. 두 번 이상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양도 넉넉하다. 국수 대신 말아먹어보라고 우뭇가사리까지 덤으로 한 줌 주신다.  할머님이 직접 집에서 삶아 껍질 벗겨 곱게 갈았다는 뽀얀 국물이 어찌나 고소했는지. 마음도 뱃속도 든든하다.


천천히 느긋한 하루다. 많이 돌아다니지 않기. 하루와의 약속을 지켰다.

내일도 느긋한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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