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남편이 찍어준 내 사진을 보고 당장 지우고 싶은 기분이 든 적이 있었다. 내가 이렇게 걷는다고? 몸은 앞으로 기울어져있고 승모근은 한껏 올라가 있었다. 나 왜 이렇게 걷니? 그 뒤로 의식하지 않아도 좋은 자세를 가지고 있는 사람을 부러워했던 것 같다- 그리고 여유롭고 우아한 태도까지. 나도 발레를 하게 되면 달라질 수 있을까?
타이즈도 샤스커트도 없지만 토슈즈를 하나 사서 첫 번째 발레수업으로 향했다. 발 끝이 각이 져있고 딱딱한 토슈즈는 중급자용, 초보인 내 토슈즈는 평소에 신는 덧신과 크게 다르지 않은 신발이었다. 그래도 기분을 내느라 새로 산 핑크레깅스를 입고 발레수업으로 향했다. (한국에서는 이런 레깅스를 입고 다니지 않지만 외국에 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땐 뭐든, 한국에서 안 해봤던 것을 해보고 싶은 법이다)
발레학원이 아닌 커뮤니티센터의 교실을 빌려하는 수업, 내 아이가 아침부터 오후까지 데이캠프로 머물렀던 교실에서 내 발레수업이 이루어진다. 교실 곳곳을 살펴보니 우리 꼬마가 낙서해 놓은 흔적도 보인다. 나중에 집에 가서 혼내줘야지. 오래된 대저택을 기증받아 커뮤니티센터로 운영하고 있어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더없이 멋지지만, 핸드바도 없어서 대신 의자를 가져와 손을 올리고, 스피커도 계속 말썽이라 선생님이 스피커와 교실 중앙을 왔다 갔다 하며 수업을 해야 한다. 가장 불편했던 것은 내 모습을 비춰볼 수 있는 거울이 없다는 점! 거울이 없으니 선생님이 동작을 보여주시면 머릿속으로 기억했다 따라 하는 방법 밖에 없는데 40년 몸치로 살아온 내가 배우고 싶었던 발레를 배운다고 달라질까, 엉성하기 그지없다.
내게 익숙한 짝다리로 서는 대신 어깨를 내리고 등은 곧게 펴고, 두 다리에 나란하게 힘을 실리게 하고 두 발꿈치가 닿게 나란히 섰다. 훌쩍 제자리 뛰기를 해도 1초면 도착할 한 발자국 너머 거리를 발레로 도착하기는 쉽지가 않다. 무릎을 굽히는 플리에, 한 발을 떼는 탕듀, 다른 발을 가져오는 마르슈, 다시 플리에로 4단계를 거쳐야만 한 걸음 옆으로 이동할 수 있다. 내가 40년간 걸어왔던 그 방식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기본동작을 배우는 시간. 숨 쉬는 것부터 배웠던 첫 번째 요가수업이 떠오른다.
새로운 운동을 시작한다는 것은 내게 익숙했던 방식과 멀어지는 것 - 내가 서있었던 방식, 구부정한 등으로 서있고 나도 모르게 어깨는 올라가 있었지. 무의식의 순간들이 모여 나의 습관이 되었지만 이제 의식을 하여 바른 자세를 가지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