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스키 레슨을 등록했지만 기다리던 눈 대신 비가 내리는 밴쿠버 날씨가 이어진 탓에 스키장 슬로프 상태가 좋지 않아 레슨이 취소되었다. 계절이 한 바퀴 돌아 다시 겨울이 왔고, 1년 묵은 디파짓으로 아이와 나의 레슨을 등록했다. 20대 때 스노보드를 배웠지만, 밴쿠버에 와서는 뭐든 안 해본 것을 해보고 싶은 법. 새롭게 스키를 배우기로 했다.
Cindy 선생님을 만나 강습용 슬로프로 종종 따라갔다. 한쪽만 스키를 신고 오른쪽, 왼쪽으로 돌려보고 앞으로 미끄러져 나가 보기도 하는 등 스키에 익숙해지려 노력했지만, 여전히 스키는 거추장스럽고 무겁기만 하다. 스키 날을 세워 언덕을 올라가기, 내려가다가 멈추기 등을 배우니 벌써 턴을 배울 시간이다! 세 번 정도 번갈아 턴을 하며 내려오라고 하는데, 왜 내 몸은 말을 듣지 않는 것인지. 겨우 한 번 턴을 하고 나니 벌써 슬로프 끝에 도착해 있다. 남들에게는 빠르지 않은 속도겠지만, 나는 너무 빠르게 느껴져 제어를 못하겠다. ‘아, 잘하지도 못하는 것 같은데.. 남들이 다들 한다고 역시 할게 아니었어...’ 추우면 집에 있지 왜 스키를 타는 걸까, 짧은 시간 동안 온갖 생각을 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내 이름이 들려왔다. 주위를 둘러보니 스키 레슨을 받고 있는 아들이 리프트를 타고 나를 발견하고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다. 그래, 아이와 같이 스키를 타고 싶어서 배우기로 한 거였지! 아이는 선생님과 벌써 리프트도 타고 높은 슬로프로 스키를 타고 있으니 아이를 따라가려면 내가 더 부지런히 배워야 한다.
Cindy 선생님에게 배우는 학생은 나 외에 두 명, 모두 나와 비슷하거나 더 나이가 들어 보이는 여자분들이다. 우리 모두 나이 들어 스키 배운다고 애쓰고 있군요. 허허. 그중 한 사람은 헬멧과 고글부터 스키복, 부츠, 스키 플레이트까지 새로 장만했는지 반짝반짝 빛이 난다. 함께 몇 번을 미끄러지고 넘어지다가 마침내 잠시 숨 돌릴 시간이 왔다. 높은 슬로프에서 스키 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그녀가 말했다.
“저도 언젠가는 저기서 탈 수 있겠죠?”
나는 너무 늦게 배우기 시작해서 그런지, 상급자 슬로프까지 갈 수 있으리라고는 기대도 하지 않고 있었다. 보기만 해도 아찔한 경사와 빠른 속도를 즐기는 사람들—내가 즐길 만한 것은 아닌 것만 같았다. 그렇지만, 나에게 밴쿠버는 하고 싶은 것 다 하는 곳이듯, 그녀에게도 그런 장소가 될 수 있으니 미소를 가득 담아 웃으며 말했다.
“그럼요! 그렇게 될 거예요!”
Cindy 선생님에게 물었다.
“스키가 제일 좋아하는 운동인가요?”
“음… 그렇다고 할 수 있죠. 수상스키도 해봤는데 이제는 나이가 있어 허리에 무리가 가서 그만두었고, 크로스컨트리도 해봤고…”
“와! 모든 스키 종목을 다 해보셨네요! 스키의 어떤 점이 좋으세요?”
“눈 올 때 스키 타는 거요! 그때 정말 세상이 아름답게 보인답니다.”
생각해 보니 눈이 오는 풍경은 여러 번 보았지만, 눈 오는 날 스키장에 있어본 적도, 스키를 타며 눈을 맞아본 적도 없었다. 직접 해보면 별거 아니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선생님의 말을 들으며 나도 궁금해졌다. 눈 오는 날 스키장에서 보이는 풍경은 어떤 모습일지, 스키를 타고 내려가는 기분은 어떤 느낌일지. 그리고 내 아이와 같이 스키를 타고 내려오는 기분은 또 어떤 기분일지.
아직 스키를 좋아하게 된 건 아니지만, 모든 것을 좋아할 이유는 없으니. 내가 좋아하지 않더라도 스키를 좋아하는 사람은 얼마나 많은가! 내가 좋아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분명한 건, 나에게는 밴쿠버 와서 시도해 본 수많은 처음인 것 중 스키 타기가 있다는 사실이 기쁨이고 그 자체가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언젠가 아이와 함께 슬로프를 자유롭게 내려오는 날이 오겠지. 그렇게 또 하나의 새로운 세계가 열리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