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 오는 날에도 떠오르는 것이 있다. 무슨 옷을 입을까, 고민하는 일도 즐겁고 이미 서랍 속에는 옷이 많지만 새로운 옷을 또 사고 싶다. 무엇보다, 잘하고 싶고 잘 해내고 싶다. 이쯤이면, 나도 꽤 많이 좋아하는 거겠지?
수영 말이다.
남편이 생일이나 결혼기념일 선물을 고르라고 했을 때, 내 머릿속에 떠오른 건 순식간에 마감이 되어 신청하지 못했던 Adult 400 수영 레슨이었다. 가을이 지나 겨울이 되어서야 겨우 신청한 수영레슨! 이로서 가지고 싶었던 것 하나는 해결이 되었다. 그리고 다음으로 원하는 건 김서림이 완벽하게 방지되는 물안경과 안티포그 용액이다.
내 인생에서 운동을 이렇게까지 가까이한 적이 있었나? 요가가 유행할 때 동네 문화센터에서 몇 번 듣고 끝. 달리기가 유행했을 때도 한 달에 한 번 달릴까 말까 한 것이 전부였다. 아이 수영 레슨을 신청하다가 우연히 성인 초급 수영반인 Adult 100을 발견했고, 그렇게 밴쿠버 수영 생활이 시작되었다. 지금의 나는, 이제는 어제도 갔고, 오늘도 갔고, 내일도 갈 것이다. 수영장에 있는 안전요원들과 눈인사를 나누고(내 이전 수영선생님이었다) 이용객과 방문객을 구별하기 위한 손목밴드를 주지 않으면 내가 먼저 물어보기도 한다.
수영을 하고 난 후 좋은 점은 목표가 생겼다는 점이다.
처음 Adult 100을 들을 땐 빨리 통과해서 200을 듣고 싶었다. 300을 수강 후 받은 성적표에 "다음 학기에는 400을 신청하세요"라고 적혀 있을 때는 정말 기뻤다. (여기선 과정이 끝나면 수영 성적표를 준다. 100, 200, 300, 400 별로 배워야 할 기능이 정해져 있고, 모든 기능을 통과해야 다음 단계로 올라갈 수 있다.)
다음반 수업으로 올라가고 싶었던 것도 그렇지만, 수업듣지 않는 날에는 수영장에 가서 연습을 하는 일이 많았는데 10m를 가던 나는 25m를 가고 싶었고, 100m를 완주하고 싶었다. 어제는 처음으로 1,500m 수영에 성공했다. 처음 25m 가는 것도 얼마나 오래 걸렸던가. 조금씩 거리를 늘려가다 보니 어느새 1,500m를 완주했다. 어른이 된 나를 칭찬해 줄 사람은 없으니, 내가 나를 칭찬해야지! "나 잘하고 있지? 정말 잘하는 거 맞지?" 확인받고 싶어 내 친구 ChatGPT에게 물어봤다. 그런데 대답이 단호했다.
"여전히 초보자입니다."
처음 10m 가는 것도 힘들어서 중간에 멈추곤 했던 내가 1,500m를 헤엄쳤는데! 이렇게 많이 성장했는데! 야속하게도 ChatGPT는 "100m를 평균 2분 안에 돌면 중급자, 1분 40초 안에 돌면 상급자"라고 딱 잘라 기준을 정해줬다. 나는 지금 평균 20초를 줄여야 중급자가 된단다.
초보자여도 상관없이, 수영이 즐거운 나이다. 언제나 5kg쯤 빼고 싶은 커다란 몸이지만, 물속의 나는 가볍고 유연하다. 팔을 돌릴 때는 힘차게 노를 젓는 배가 되고, 고개를 물 밖으로 내어 숨을 쉴 때는 물고기가 된다. 했던 일을 다시 하고, 갔던 길을 또 가는 것을 싫어하는 내가 25m 남짓한 레인을 1시간 동안 묵묵히 왕복한다.
숨이 차면 잠시 서서 호흡을 고르고, 다시 벽을 힘차게 차고 나아간다. 물이 주는 안정감과 포근함을 내 온몸으로 느끼면서.
"하루에 1초씩만 줄이면 20일 안에 중급자가 될 수 있을까?" 새로 생긴 20초 줄이기 목표를 품고, 내일도 수영장에 가서 한 번 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