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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현아 미소작가 Oct 29. 2019

성공한 워킹맘의 서재

◈성공한 워킹맘의 서재


B는 원래 평범한 전업주부였습니다. 살림하는 것도 좋아하고 육아도 적성에 잘 맞아 알뜰살뜰 살림하며 자신의 삶에 만족하면서 지냈다고 합니다. 하지만 남편의 사업이 기울자 B의 평온한 일상이 깨졌습니다. B는 그때 처음으로 자신이 나약한 존재임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뭐든지 해야 하는 상황이 되자 B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돌아보았습니다. 자신이 집안을 가꾸며 열심히 해왔던 셀프 인테리어에서 그녀 답을 찾았습니다. 창업자금 1500만 원으로 셀프 인테리어 관련 사업을 시작했고, 지금은 30억 원 규모의 사업체를 운영하는 어엿한 대표가 되었습니다.


어느 날 우연히 그녀의 집 앞을 지나다 연락을 했는데 때마침 집에 있다며 들렀다 가라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갑작스러운 방문이었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고 기쁘게 맞아주었습니다. 처음 방문한 그녀의 집은 역시나 그녀와 닮아 있었습니다. 정갈하면서도 아늑했고, 군더더기 없이 심플했습니다. 여백이 있는 공간이었지만 인테리어 회사 대표답게 적재적소에 그녀의 취향이 가득 담긴 물건이 오브제처럼 놓여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진가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진짜 공간은 따로 있었습니다. 그곳은 그녀의 서재였습니다. 그녀의 서재는 그녀만의 짙은 향기가 느껴지는 곳이었습니다. 집안 전체에서는 가족 간의 따뜻함과 그녀의 편안함이 묻어났다면 그녀의 서재에는 한 기업의 대표로서의 그녀가 있었습니다. 차분하고 묵직한 공기와 극강의 심플함, 그녀의 서재는 집안의 다른 곳보다 더욱더 군더더기가 없는 공간이었습니다. 길쭉한 원목 책상과 사무용 의자, 책장이 가구의 전부였습니다. 특히 의외였던 것은 서재라는 명목이 무색하리만큼 책이 많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어른 팔을 벌렸을 때의 길이 정도의 고급 원목 책장 하나만 서재에 있었고, 책장도 빽빽하지 않았다. 하지만 책의 정리만은 확실히 되어 있었습니다. 목공과 관련된 책, 사업에 관련된 책, 마케팅과 브랜딩에 관련된 책, 에세이나 외국 서적 등으로 나뉘어 있었다.


의외로 책의 권수가 적다고 이야기하자 그녀가 대답했다.


“참고만 할 서적과 소장할 서적은 확실히 구분해. 우리 업계는 트렌드가 빨리 변하기 때문에 과거의 책을 붙들고 있기보다는 앞으로 나올 정보를 파고들어야 해. 물론 오래된 영구 소장한 책을 통해서 영감을 얻기도 하지만 그것 때문에 모든 책을 붙들고 있다간 새로운 아이디어에 오히려 방해가 되어 버려.”


서재 구경을 마치고 나는 그녀에게 정말로 궁금한 것을 물었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많은 역할을 해내면서도 집안을 이렇게 말끔히 관리하고 아이들 학업도 독려해서 영재고에 보낸 것인지.



사실 처음 그녀도 사업을 하겠다고 발 벗고 나섰을 때는 집안이 엉망진창이었다고 합니다. 항상 집안을 정갈하게 가꾸고 가족들에게 쾌적한 공간을 제공하는 것을 자부심으로 여겼던 B는 그것이 참 속상했습니다. 더 안타까운 것은 사업에 실패로 기죽어 있는 남편과 엄마의 부재를 느끼는 아이들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상황 속에서 버티고 있는 가족들인데 집안까지 난장판이니 더 갈피를 못 잡고 휘청거렸습니다. 아이들의 방황으로 학교 선생님과 상담하기도 여러 번 했었다는 이야기를 조심스레 털어놓았습니다. B는 지금 이 순간 자신만은 흔들리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 이상 안 되겠다 싶어 그녀는 아끼던 가구와 소품들을 많이 버렸다고 합니다. 아이들에게 다시 따뜻하고 깨끗한 공간을 만들어주고 싶은 마음에서였습니다. 자신이 전업주부일 때는 감당 가능한 물건들이었지만 지금은 애물단지가 되었으니 가차 없이 비워냈다고 합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결심을 했다고 한다. 집안일을 아웃 소싱하기로. 그녀는 바로 알선업체를 통해 도우미 아주머니를 일주일에 한 번씩 오시도록 했습니다. 솔직히 한 푼이 아쉬운 그 시점에 그것은 큰 결심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녀는 돌이켜봤을 때 그 당시에 했던 그 결심은 최고의 선택이었다고 이야기합니다. 엄마의 손길은 아니지만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도우미 아주머니가 오셔서 집안을 정리하고 청소해주시니 가족들도 한결 편안해 보였고, 무엇보다 자신의 느끼는 가사의 부담이 줄어 회사일에 열중할 수 있었고, 집에 와도 편히 쉴 수 있었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 누군가의 도움의 손길이 받는 것이 이렇게 큰 줄 미처 몰랐다고 B는 이야기합니다.


“삶을 컨트롤하고 시스템화하는 것에 답이 있어. 그것은 회사에서나 집에서나 마찬가지야. 물론 언제나 변수가 생기지. 그 변수를 줄이기 위해서 단순화해야 하는 거고. 물건을 버리면서 내 인생이 달라졌고, 물건을 버렸기에 회사와 가정, 대표와 엄마라는 직함 사이에서 삶의 균형을 맞출 수 있었어.”


그녀는 물건을 줄임으로써 자신과 가족이 따뜻하게 보낼 수 있는 공간을 컨트롤하고 집안일을 아웃 소싱함으로써 자신이 없어도 집안이 무리 없이 돌아가도록 시스템화한 것입니다.


그녀가 어려움을 딛고 성공한 비결은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그 무엇을 놓지 않은 것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힘든 상황에서도 적절한 선택을 하여 공간을 통제했던 것. 공간이 가진 힘을 믿었던 것. 그녀의 성공 비결은 거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삶을 변화시키는 마법, 비움 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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