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현아 미소작가 Oct 29. 2019

엘리트의 책상

◈엘리트의 책상


제가 10년 전 처음으로 직장생활을 시작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제 옆자리에 앉은 직장동료 J는 사내에서도 알아주는 엘리트였습니다. 최연소로 우수한 성적으로 입사해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았으며, 사회 초년생임에도 불구하고 맡은 바를 알아서 척척 해냈습니다. 그는 항상 아침 일찍 1, 2등을 다투며 출근했고, 이른 시간에 출근하면서도 완벽한 헤어스타일과 말쑥한 옷차림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가 원래부터 타고난 완벽주의자일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와 친해지고 난 후 그는 완벽한 사람이 아니며 자신을 이렇게 만든 것은 ‘작은 습관의 힘’이라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그는 원래 모범생으로 공부를 열심히 하는 축에 속했지만 그다지 만족할만한 성과가 나오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입시를 1년 앞둔 시점 J는 마음을 새롭게 다지고자 책상 정리를 시작했습니다. 다 썼지만 가지고 있었던 노트, 더 이상 나오지 않는 볼펜, 앞으로 보지 않을 것 같은 참고서를 버리고, 물건들을 가지런히 정리한 후 책상을 싹싹 닦아나갔습니다. 그 기분이 생각보다 상쾌해서 J는 매일 공부하기 전과 공부가 끝난 후 책상을 닦기 시작했고, 신기하게도 그 후로 성적이 많이 올랐다고 합니다. 말끔한 책상에서 공부를 하니 집중도 잘 됐고, 공부하기 전과 후 책상을 닦는 행위가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하는 마음을 다지게 해 주고 하루를 차분하게 마무리하게 해 주어 여러모로 도움이 되었다고 합니다. J는 이전까지는‘공부할 시간도 부족한데 언제 책상 정리를 하느냐’고 생각했던 마음을 바꿔 계속해서 책상을 정리하고 닦는 습관을 유지시켜 나갔습니다. 1년 후 J는 원하던 학교, 원하던 학과에 진학했고, 대학 졸업 후에는 최연소로 원하던 직장까지 들어가게 됐습니다. J는 여전히 책상을 닦으며 하루 업무를 시작하고 책상을 닦으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습관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저는 처음 입사했을 때 제 옆이었던 그의 자리가 빈자리라고 착각할 정도였습니다. 그 정도로 그의 책상은 간소하고 말끔했습니다.


독일의 심리학자 베르너는 <림비>라는 책에서 복잡한 환경이 얼마나 림비를 혼란스럽게 하는지 이야기합니다. 림비란 대뇌변연계, 즉 '림빅 시스템(limbic system)'이라는 용어의 줄임말입니다. 행복과 불행, 기쁨과 슬픔, 쾌락과 고통 등 우리가 느끼는 모든 감정은 림비의 작용에 의해 일어납니다. 단순하지 않고 복잡한 시스템은 림비에게 불행함을 안겨주며 그때 우리는 림비와 같은 감정을 느낍니다.


“가득 찬 서랍장, 찬장, 상자, 넘치는 서류함, 이런 것들이 얼마나 우리의 금쪽같은 시간을 잡아먹는가. 프라이 호퍼 생산기술 및 자동화연구소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사람들은 업무 시간의 평균 32퍼센트 정도를 물건을 찾는 데 소모한다. 그리고 그중 30퍼센트는 업무에 필요한 서류를 찾아 헤매는 데 쓴다. 이런 불필요한 소모 시간이 얼마나 림비의 짜증을 유발할지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림비, 베르너 티키 퀴스텐마허)”


지금 자신의 책상을 둘러봅시다. 어떤가요? 뒤죽박죽인가요? 혹시 당신의 인생은 어떤가요? 당신의 인생도 풀리지 않은 얽힌 실타래 같지 않은가요? 승진에 누락됐나요? 결혼할 것이라 생각한 사람과 헤어졌나요? 많은 돈을 잃었나요? 그렇다면 지금입니다. 지금이 당신이 책상을 정리할 순간입니다.


‘그깟 책상 하나로 내 일이 풀리지 않는다고?’ ‘책상이 지저분해서 운이 없다고?’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하나요? 정돈되지 않은 책상은 정돈되지 않는 루틴을 만듭니다. 루틴이 깨지면 악순환의 일상이 거듭됩니다. 작은 책상 위에 방치된 며칠 동안 치우지 않은 작은 컵 하나가 또 다른 지저분한 물건들을 하나둘씩 불러 모으고 그렇게 쌓인 물건들은 당신의 인생을 지저분하게 만들 일들을 끌어당깁니다. 루틴은 우리의 삶에 위기가 찾아올 때 우리를 이끌어주는 역할을 합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의 위기를 마주합니다. 갑작스러운 상사의 부당한 요구, 갑작스러운 전출, 심지어 갑작스러운 야근까지. 이때 우리를 바로잡아주는 것이 루틴입니다.


우리의 일상에는 흐름이 있습니다. 그 흐름이 막히게 되면 운도 막히게 됩니다. 책상을 치운다는 것은 내 업무와 공부에 운을 터주는 행위입니다.


다음은 운이 따르는 책상을 만들기 위한 팁입니다


1. 최대한 여백을 확보한다.

“서재는 일이나 공부는 물론, 뭔가를 차분히 생각하거나 독서를 하는 이른바 ‘자신과 마주하는 공간’입니다. 서재에서 효율적으로 일을 해나가려면 먼저 책상 위가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어야만 합니다. p. 150, 스님의 청소법”


텅 빈 책상은 무언가를 해보고 싶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습니다. 텅 빈 책상 앞에 앉으면 마음이 차분해지면서 에너지가 생기고 여러 가지 영감들이 떠오릅니다. 최대한 여백을 만든 후 정말 내게 좋아하는 필기구나 향초 같은 취향이 가득 담긴 물건 한두 개만 올려놓아 보세요. 집(회사)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공간이 될 것입니다.


2. 매일 치운다.

“다음 날에도 계속 같은 파일과 서류를 사용해야 한다면, 그날 일이 끝난 후에도 책상 위에 그대로 둔다는 사람이 꽤 있다. 하지만 그날 작업이 끝나면 일단 모두 정리합니다. 책상 위는 아무것도 두지 않은 상태가 가장 이상적입니다. 다음 날 아침, 새로운 기분으로 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책상이 한 번 정리된 상태라 ‘자, 시작해볼까’하는 기운이 솟아 새로운 기분으로 일에 임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책상을 전날 상태 그대로 둔다면 ‘어제의 연속’이라는 기분이 들어 타성에 젖기 쉽습니다(p.151, 스님의 청소법, 마스다 슌묘)”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매일 비슷한 글을 쓰는 작업을 항상 같은 공간에서 ‘연속적’으로 하지만 매일 저녁 작업이 끝나면 모두 정리합니다. 노트북을 닫아 한쪽으로 치우고 마우스, 마우스 패드, 필기구 등도 전용 파우치에 담습니다. 사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남편과 같이 책상을 공유하기 때문입니다. 남편이 내 물건이 널려진 책상을 보면 기분이 좋지 않을 것 같아 치우기 시작했는데 저 역시 새로운 기분으로 다음 작업을 시작할 수 있어서 일석이조입니다. 요즘 구글이나 P&G 등 여러 회사에서 이렇게 ‘공유 데스크’를 활용한다고 합니다. 이런 방식이 창의력과 효율성 면에서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지요.


3. 당장 떠날 수 있도록 준비한다.


“사람은 자신이 자유롭다고 느낄 때 가장 행복하고 생산적이며 창의적이 된다.

(p. 85, 가장 단순한 것의 힘, 탁진현)”


요즘 디지털노마드, 카공족이라는 말이 흔합니다. ‘디지털 노마드’는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일하는 사람이고, ‘카공족’은 카페에서 공부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이제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자유로운 장소에서 자유롭게 일을 합니다. 자유로움의 가장 큰 근원은 ‘언제든 떠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노트북 가방 하나만 들고 언제고 가볍고 홀가분하게 떠날 수 있도록 책상의 짐을 간소화해 보세요. 나의 집(회사)에 있는 책상이 어느 휴양지 해변의 썬배드, 어느 도시 카페의 한 공간이라고 생각하며 짐을 정리해본다면 정말 나에게 필요한 물건만 남길 수 있습니다. 내가 가진 물건이 빌려 쓸 수 있는지, 대체 가능한지, 어느 정도 빈도로 쓰이는지 찬찬히 살핀 후 비우고 정리해봅시다. 언제든 떠날 수 있도록.


"삶을 변화시키는 마법, 비움 효과"

이전 02화 내 인생은 왜 이 모양이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