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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휘찬 Feb 26. 2021

나만 생각할수록 잃는 것

나를 지키되 이기적이지 않는 것

"유학은 아무나 가는 거 아니야."

말문이 막혔다. 그리고 화가 났다.

내가 '아무나'인 건 알겠는데, 그렇게 콕 찍어서 얘기했야 했나.

유학을 가려면 실력이 뛰어나거나, 집에 돈이 많거나,

둘 중에 하나여야 한다는 건 나도 이미 들어서 알고 있었다. 

나는 둘 다 '해당사항 없음'이지만,

그것 때문에 고민하는 사람에게 굳이 칼을 꽂을 필요는 없지 않은가.

유학을 준비하던 시기였다.

내가 하던 공부가 너무 좋았고, 유학을 가면 그 공부를 계속할 수 있다는 사실이 좋았다.

처음에는 다른 것들이 보이지 않았다.

유학생활이란 당연히 고생길이고, 그런 고생쯤은 거뜬히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끼니 걱정을 하거나 혹은 밥을 굶더라도 공부가 나를 행복하게 할 것 같았다.

비교적 학위를 빨리 받을 수 있는 미국도 아니고 독일로의 유학은 그 끝이 언제일지 기약도 없었다.

하지만 독일은 학비가 저렴하다는 이유로 그 조차도 핑크빛으로 보였다.

막상 결정을 하고 첫 발을 내딛는 순간, 현실적인 문제들이 하나씩 떠올랐다.

나는 장남이었고, 대학에 입학 한지 얼마 안 된 동생이 있었다.

이미 대학원을 다니느라 한참 길어진 부모님의 뒷바라지를 계속 바랄 수 없었다.

오히려 내가 빨리 자리를 잡고 동생 뒷바라지를 도와드려야 할 판이었다.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다고 해서 보장되는 자리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학위를 받는데 오래 걸리는 만큼 늦어지는 사회생활과 나이가 문제였다.

그리고 내가 나누고, 덜어야 할 것들이 있었다. 


"유학은 아무나 가는 거 아니야, 유학은 이기적인 사람만 가는 거야."

이어진 말에 화가 가라앉았다. 

그 친구가 나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은 실력이나 돈 얘기가 아니라 뻔뻔해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진짜 유학을 가고 싶다면 이것저것 따지지 말고, 계산하지 말라는 것.

현실적인 문제들 따위는 모르는 척하고 뻔뻔하게 생각해야 된다는 것.

'내가 성공하면 되지.'

'내가 성공해서 다 갚아드리면 되지.'

이렇게 이기적으로 생각해야 떠날 수 있다고 했다. 너무 맞는 말이어서 반박할 수가 없었다.

내가 망설이고 있는 건 넉넉하지 않은 현실 때문이었고, 그건 따지면 따질수록 발목을 잡는 것들 뿐이었다.

다시 고민에 빠졌다.

이기적이라 할 지라도 다른 건 따지지 않고 나의 성공, 만족을 위해 떠나는 게 맞는 걸까,

상황에 맞게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현실을 따르는 게 맞는 걸까.

정답은 없다. 하지만 나는 뻔뻔하게 떠나는 결정을 할 수는 없었다.

나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결정이 결국은 나를 잃어버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일단 나는 그렇게 뻔뻔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아무리 이기적으로 결정하더라도 나를 둘러싼 것들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나의 생각에 따라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후회하지 않는다.


살다 보니 때때로 나만 생각해야 편한 그런 상황이 있다.

나의 결정으로 누군가 피해를 볼 수도 있는 상황이거나 

어떤 결정이든지 누군가는 불이익이 있고, 그게 누가 되느냐의 문제인 그런 상황들.

사실 다 같이 좋은 결정을 내릴 일은 거의 없다.

이런 상황에서도 정답은 없다. 나만 생각하고 결정하면 고민할 필요 없이 편할 뿐이다.

다만 내가 원하는 것을 한다는 것과 이기적인 것은 다르다.

이기적인 결정은 결국은 나만을 위한 것이고, 

아이러니하게도 나만 생각하다 보니, 나를 잃게 된다.

그때 내가 독하게 마음을 먹고 유학길에 올랐다면

나는 지금쯤 힘든 유학생활을 마무리하며 고진감래의 기쁨을 느끼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걱정과는 달리 원하는 공부를 계속하는 연구자가 되었을 수도 있고

지금보다 한층 더 나은 생활을 보장받고 

힘들게 뒷바라지해주신 부모님께 보답할 생각을 하며 남은 인생을 계획하고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을 경우에도 나는 감당할 수 있었을까.

내가 원하는 것, 하고 싶은 것들을 잘 알고 이루어나가는 것은 

인생에서 아주 중요한 일이지만 그것을 어떻게 실현하는가는 더 중요하다.

결과만을 위해 법을 위반하거나 부도덕한 수단을 사용할 수도 있다.

물론 그것은 처벌을 받거나,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나 자신을 위반하거나, 나를 어기는 건 어떻게 될까.


방법에는 정답이 없지만

나를 잃어버리는 것이 오답인 것은 확실하다.

나를 어기고 얻어진 결과들은 

이미 나를 잃어버린 다음이라 아무 소용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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