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플라스의 악마 # 7
열이 내린 뒤에도 나는 꼬박 반나절을 기절한 듯 잤다. 그 뒤에, 나는 심문이 어떻게 중단되었는지 자초지종을 들었다. 레오는 잔뜩 흥분해 있었다. 안 그래도 붉은 얼굴이 아예 자두 색깔이 되어있었다. 기적을 현장에서 두 눈으로 목격한 사람처럼 침을 튀기며 당시 상황을 전했다. 두서없는 그의 말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조이가 우리 팀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었다'는 얘기였다. 레오는 조이가 너무 고마워서 끌어안고 아이처럼 펑펑 울었다고 했다.
부끄러웠다. 그러니까 로건과 레오, 그리고 로봇은 조사실 밖에서 나를 구할 방법을 의논하고 있었던 거였다.
엔지니어답게 내 식으로 정리해서 말하면, 조이는 자기 인공 의식에 저장된 기억(그걸 ‘기억’으로 부를 수 있다면)을 외부 장치로 전송해서 우리 잘못이 없다는 걸 입증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는 거였다. 그날 우리가 작업한 내용 전체를 빠짐없이 관찰했고 그건 폐쇄회로텔레비전이나 다름없는 객관적 기록이므로, 누명을 벗을 증거가 될 수 있다는 논리였다.
레오는 몇 번이나 ‘목숨을 걸었다’는 표현을 썼다. 그렇게 말할 정도로 위험한 건지는 잘 몰라도, 조이가 괜히 폼을 잡는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조이의 그 결정을 비웃고 싶지도 않았다. 조이에 대한 내 시선은 달라져 있었다. 그러나, 나는 조이의 계획이 성사될 거라고 믿지 않았다. 기대하지 않았다. 내가 경험해 온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으니까.
다음날 정비창에 나갔을 때 조이는 나를 봤지만 가벼운 눈인사를 건넸을 뿐이었다. 먼저 말을 걸지 않았다. 공치사 같은 건 없었다. 나는 우주정 아래로 들어가 함께 작업하던 조이와 레오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고맙다는 인사를 건넸다.
“꿈도 없이, 아주 깊은 잠을 잤어.”
“다행이야.”
조이는 나에게 엄지손가락을 세워 보이고 다시 레오의 일을 거들었다.
내가 생각했던 대로였다. 제조사는 반대했다.
㈜옥토끼는 책임을 벗을까 하여 잠시 반색했던 것 같은데, 금방 단념했다. 우리가 보기에 옥토끼는 '슈퍼 갑'이었지만 다른 '갑'들이 보기에 연약한 '을'이었다. 스테이션 최고의 기업, 타이쿤을 거스르고 조이의 기억을 강제로 꺼내자고 주장할 만큼 무모하지 않았다. ㈜옥토끼는 괜한 심술을 부리듯 중단되었던 심문을 바로 재개하겠다고 통보했다.
다음 날 정비창에는 쌍발 엔진의 화물선이 입고됐다. 위성 잔해를 정면으로 맞닥뜨렸는지 선체 곳곳에 총알을 맞은 것 같은 구멍이 숭숭 뚫려있었다. 딱 보기에도 하루 이틀 만에 수리를 끝내기 어려울 것 같았다. ㈜옥토끼는 조사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우리를 놀릴 생각이 없었던 거다.
로건과 레오, 그리고 회복 못한 나까지, 정비창에 겨우 나온 우리는 물에 젖은 천 조각처럼 축 늘어져 있었다. 그런데, 작업 시간에 늦는 법이 없던 조이가 출근하지 않고 있었다. 로건이 조이를 호출했다. 응답이 없었다. 레오는 분리 불안을 겪는 아이처럼 반응하고 있었다. 주둥이를 나팔 모양으로 삐죽거리며 화물선 몸통을 툭툭 찼다. 이빨을 딱딱거렸다. 로건은 나에게 빨리 조이의 숙소로 가 보라고 시켰다.
숙소는 우리 정비창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옥토끼의 간이 창고 하나를 개조한 공간이었다. 문이 열려있었다. 이상했다. 달의 모든 건물은 문이 자동으로 닫히도록 설계되어 있다. 유성우 같은 긴급 재난 상황이 발생했을 때 급격히 기압이 떨어지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다. 나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안으로 들어갔다.
정방형에 가까운 공간에는 겨우 다리를 뻗고 누울 수 있는 철제 침대가 놓여있었다. 숙소 안으로 들어가 본 건 처음이었다. 어둡고 비좁은 공간이었다. 조이는 그 침대에 똑바로 누워 눈을 감고 있었다. 나는 가만히 조이의 얼굴로 손을 가져갔다. 차가웠다. 시체처럼 차가웠다.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로건에게 손목단말기로 연락하면 된다는 아주 간단한 사실이 떠오르지 않았다. 무작정 정비창으로 달렸다. 숨이 턱까지 차올라 로건에게 조이의 상태를 알렸다. 죽은 것 같다고. 말을 하고 나니 우스웠다. 뭐? 죽은 것 같다고? 로봇인데?
이어달리기를 하듯 이번엔 로건이 뛰기 시작했다. 나도 따라서 조이의 숙소로 달려갔다. 조이는 흔들어 깨워도 반응이 없었다. 사후경직이 일어난 시체처럼 온몸이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조금 지나 레오가 숨을 헐떡거리며 도착했다. 어떻게 연락했는지 제조사 기술자들까지 함께 왔다.
레오는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몸을 떨었다. 조이를 살려내라고 울부짖었다. 기술자들은 제조사에서 파견되어 ㈜옥토끼에 머물던 사람들이었다. 두 시간쯤 지나 그들의 우두머리로 여겨지는 사람이 도착했다. 그는 복제인이 아니었다. 백 년은 넘게 산 사람 같았다. 머리가 희고 얼굴에 자글자글한 주름이 있었다. 어깨와 목이 구부정했다. 공감능력이 뛰어난지, 구슬프게 우는 레오를 토닥이며 달랬다. 기술자들은 그를 ‘소장님’이라고 불렀다.
“몇 번을 얘기해야 알아듣습니까, 로봇은 안 죽는다고.”
기술자들은 조이의 뒤통수에 동그란 진단장치를 붙이고 상태를 점검했다. 그들도 당황한 것 같았다. 덥지도 않은데 땀을 뻘뻘 흘렸다. 사전에 이상을 감지할 만한 낌새가 전혀 없었다고 했다. 아무리 검사 장비를 돌려도 고장이 난 곳이 한 군데도 안 나온다고 했다. 그들은 조이에게 달라붙어 꼬박 하루를 보냈다.
“파업이네요.”
다음날 소장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 우리는 공용 표준어로 듣고도 알아듣지 못했다. 한 번도 접해보지 못한 단어였으니까.
나중에 찾아보니 뜻은 이랬다. 약자일 수밖에 없던 인간 노동자들이 스스로 곤경에 처하고 위험에 빠질 걸 감수며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벌이는 노동 제공의 중단. 로봇이 인간 노동력을 대체하면서 그 말의 쓰임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사전에는 나와 있었다. 나는 아주 어렴풋이 소장이 어떤 의미로 그 단어를 쓰는지 알 것 같기도 했다. 조이는 자신의 의지로, 작동을 멈춘 것이다.
“내가 당신들에게 설명할 의무는 없어요.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으면 계속 시끄러울 것 같아서 말하는 겁니다. 조이는 죽은 게 아니에요. 깊이 잠들어 있어요. 그런데, 우리가 깨우는 걸 거부하고 있네요. 방문을 걸어 잠그고 대화를 거부하는 고집 센 아이처럼 말이죠. 우리가 조이를 만들었지만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에요. 나랑 있을 땐 이런 적이 없었어요.”
소장의 표정은 복잡했다.
“우리는 조이가 통제 가능한 인공지능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네요. 곧 설계자가 오겠지만, 그 역시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 힘들 겁니다. 통제가 불가능한 거라면, 조이는… ”
아무리 두드려도 조이는 응답하지 않았다. 작동을 멈추고 깨어나길 거부하는 조이의 행동은 사람을 해하는 것도 로봇 스스로 다치게 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인간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는 원칙을 거스르는 행동임엔 틀림없었다.
“조이가 말한 대로 해주면 안 되는 건가요? 그러면 깨어나지 않을까요?”
소장이 단호하게 말했다.
“그건 안 되죠. 절대로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답답하다는 듯이 한 숨을 몇 번이나 쉬더니 소장이 다시 입을 열었다.
“엔지니어 양반, 3차 전쟁 알아요?”
복제인이 역사 같은 걸 알 리가 없었다. 나는 멍하게 머리가 희고 주름진 사람을 쳐다봤다.
“미안해요. 잘 모르겠죠. 그냥 들어요. 3차 전쟁 이후에 인공지능에 대해 아주 강력한 규제가 생겼어요. 인류가 스테이션과 달로 이주할 수밖에 없는 재난의 원인이었으니까요. 첫 번째, 인공 의식을 담은 전뇌(電腦)는 인간 두개골 평균 체적을 벗어날 수 없도록 했어요. 두 번째, 인간과 똑같이 말, 그러니까 음성으로 발화되는 언어 이외에 다른 통신수단으로 전뇌가 다른 지능에 연결되어서 작동될 수 없습니다. 그 규제들 때문이에요. 인공 의식을 구현하려는 시도가 번번이 실패했던 건 말이죠.”
“그런데 조이는…”
“그러니까요. 대단한 제품이죠. 조이의 전뇌는 아주 민감하고 복잡한 장치예요. 매우 작은 공간에 신경망을 고도로 집적시켜 놓은 거죠. 그런 규제들을 극복하고도 우리가 진짜 사람 같은 인공 의식을 만든 거라고요. 그러니까, 조이가 두개골을 열고 인공 의식의 밑바닥을 구성하고 있는 기억을 건드리게 하겠다는 건, 제조사로서는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인공 의식이 깨질 거예요. 조이가, 사라진다는 뜻이죠.”
레오는 마침 소장의 설명을 듣지 못했다. 나도 로건도 레오에게 전달하지 않았다. 조이가 죽을 수 있다는 얘기를 하면 또 소리를 지르며 날뛰게 될까 무서웠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