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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unyiun Oct 25. 2024

연결

라플라스의 악마 # 8 




  조이의 설계를 맡았던 사람이 스테이션에서 직접 날아왔다. 소장의 예상대로였다. 요란하게 열 명 가까이 되는 안전요원까지 끌고 왔다. 통제를 거부했다는 걸 눈으로 보기 전에는 믿을 수 없다는 이유였다. '조이'라는 상품이, 작은 체적 안에 고도로 집적된 인공지능 장치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는 깃을 세운 흰색 재킷을 입고 있었다. 옷차림부터 권위가 느껴졌다. 나이는 더 어린것 같은데, 양복쟁이와 소장이 그에게 구십 도로 허리를 꺾어 인사를 했다. 그렇지만 설계자도 다를 게 없었다. 조이를 깨어나게 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방법은 단 하나였다. 파업을 하고 있는 조이의 요구를 들어주는 것. ㈜옥토끼가 바랐으나 이내 포기한 것, 제조사가 거부했던 것, 바로 조이의 기억을 읽어 정비-18팀의 결백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우습긴 하지만, 조이에게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하면 되는 거였다. 몇 날 며칠을 고심하고 본사와 회의를 거듭하던 그들이 결단을 내렸다. 결단의 이유는 웃음이 날 정도로 단순했다. 기억을 읽어 조이가 망가지나, 조이가 깨어나길 거부해서 못 쓰게 되거나, 어차피 결과는 매한가지라는 판단이었다.


  설계자는 엄숙하게 조이의 이마에 손을 얹더니 '원하는 대로 해줄 테니 깨어나라'라고 말했다. 레오와 나는 그때 조이의 오른손과 왼손을 하나씩 나눠 쥐고 있었다. 그럴 상황이 아닌데, 나는 웃음이 났다. 무슨 주문 같기도 하고 퇴마의식 같기도 해서다. 


  조이는 금방 반응했다. 지금까지 있었던 모든 대화를 계속 듣고 있었다는 듯이. 몸이 금방 따뜻해졌다. 레오와 나는 쥐고 있던 조이의 손을 흔들면서 환호성을 질렀다. 조이의 전체 기능이 정상으로 돌아오는 데 5분이 채 안 걸렸다. 조이는 확실히 로봇이었다. 조이가 눈을 떴다. 그리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상체를 일으키고 우릴 보며 웃었다. 그 모든 일들이 싱거운 농담 같았다.


  조이의 기억을 읽는 준비를 하는 데 사흘이 걸렸다. 대여섯 명의 기술진들이 들락날락했다. 그들은 모자를 벗기듯 조이의 머리 뚜껑을 열었다. 여러 가닥 전선이 머리에서 빠져나와 커다란 스테인리스 기둥처럼 생긴 기계에 연결됐다. 지름이 한 육십 센티미터 높이는 일 점 오 미터 정도 되는 것 같았다. 중앙에 타이쿤(Tycoon)이라는 글자가 음각되어 있었다. 어떻게 보면 조이가 원통형 기계에 머리채를 잡힌 것 같은 꼴이었다. 소장은 보이지 않았다. 지휘는 양복장이가 했다. 


  기술진들은 조이를 물건 다루듯이 했다. 나는 신경이 쓰였다. 


  나중에 그 얘기를 하니, 조이는 웃기만 했다. 원통형 기계는 스테이션의 메인 컴퓨터와 조이의 전뇌를 초고속 심우주 통신망으로 연결하는 장비라고 설명해 줬다. 


  “연결한다고?”


  나는 머리를 갸우뚱하며 되물었다. 


  "로봇이 다른 지능에 연결되어선 안 된다고 하지 않았어?"

  “읽어내려면 연결하는 방법밖에 없대. 설계자가 그렇게 결론 내렸대.”


  여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타이쿤은 소장이 얘기했던 엄한 규정을 어기기로 결심했다는 건가? 그러나 그건 내 알 바는 아니었다. 


  “참, 소장한테 혼나지 않았어? 너 잘 아는 것 같던데?”

  “옥토끼 오기 전에, 소장님과 같이 있었어. 아빠 같은 사람이지. 다시 그러지는 말래. 안 그랬던 애가 왜 버릇이 없어졌냐고.”


  조이가 아이처럼 웃었다. 


  기억을 꺼낼 준비가 끝난 날, 로건과 레오, 나, 어느 누구도 조이에게 가까이 갈 수 없었다. 옥토끼가 조이의 숙소 주변을 ‘접근 불가 구획’으로 지정하고 출입을 통제했기 때문이다. 그날 우린 일을 하지 않았다. 순순히 ㈜옥토끼의 배려라고 생각할 수는 없었지만, 딱히 나쁠 것도 없었다. 


  나는 숙소를 나서 중앙 광장으로 갔다. 쿠폴라 아래에 아예 누어버렸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흘끔거렸다. 그러든 말든. 나는 새카맣기만 한 하늘을 봤다. 그 공간에 하나씩 상상의 별을 그려 넣었다. 그것은 별자리가 되었다. 온몸으로 나를 끌어안은 조이가 되었다. 눈을 감았다. 살에 닿았던 조이의 느낌이 살아났다. 조이는 왜 그랬을까? 꼭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될 일을.


  광장의 사람들은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다른 팀원들이 생각났다. 레오는 최대한 조이에게 가까이에 가고 싶어서 그 근처 어디에서 애를 태우고 있었을 것이다. 로건은 골방, 자신의 동굴 속에 조용히 숨어들어 있었을 것이다.


  조이의 인공 의식은 깨지지 않았다. ㈜옥토끼 관계자들의 참관 아래, 기술진은 조이의 기억을 검증했다. 당시 정비-18팀은 사고의 원인이 될 만한 행동을 하지 않았음이 증명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누명을 벗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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