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플라스의 악마 # 10
조이와 우리에게 약속된 시간이 절반쯤 지났을 때, 팀의 분위기가 부쩍 나빠졌다.
로건이 문제였다. 골방에 처박혀 보내는 시간이 부쩍 많아졌다. 팀원들의 작은 실수에도 불같이 화를 냈다. 로건은 조이를 외면하려고 했다. 간단하게라도 말을 건네는 법이 없었다. 조이의 표정도 티가 날 정도로 어두워졌다. 레오로 말할 것 같으면, 불안정해졌다. 나도 상태가 좋지 않았다. 나는 분위기를 살려보려고 애를 썼지만 역부족이었다.
딱 보름이 남았을 때, 우리를 짓누르던 먹구름의 본질이 분명해졌다.
로건이 조이를 골방으로 불러들였다. 로건이 잠금장치를 걸었다.
문은 닫혀있었지만 로건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귀를 기울였지만, 내용을 알아들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리고 잠시 몸싸움을 하는 듯 우당탕 소리가 났다. 몸싸움이라면, 로건이 조이를 이길 수 없다. 잠금장치가 부서졌다. 문이 열리고 조이가 나왔다.
“조이라는 이름 따위? 착각하지 마. 나는 그냥 제조 번호 3345-8783-0091, 열두 자리 숫자로 특정되는 물건이야. 물건이라고. 알잖아, 나는 여기 옥토끼에 머물 수 없어. 나는 시험용이고, 그들이 공장에서 여러 벌 찍어내서 누군가의 소유물로 판매할 거야. 일련번호가 계속 늘어나는, 그런 공산품인 거야.”
조이는 모두가 들을 수 있게 큰 소리로 말했다.
“아니, 그런 얘기도 다 필요 없지. 간단해. 너는 가난하잖아, 그러니까 나라는 제품이 너의 소유가 될 수 없는 거야. 그렇게 되길 내가 원하지도 않고. 우리는, 사랑할 수 없다고.”
나는 깜짝 놀랐다. 사랑이라고 했어? 사랑이라고?
사랑이라는 단어가 조이의 입에서 나왔다. 그리고 그 말이 튀어나왔을 때, 조이의 얼굴에 순간적으로 스치던 당혹스러운 표정을 나는 놓치지 않았다. 조이는 스스로에 대해 몹시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나도 그랬다. 어떤 단어도 의식이나 무의식에 먼저 준비되지 않고는 입으로 나올 수 없다. 그래, 그게 인간의 언어이다. 물론 조이는 인간이 아니지만.
나는 생각했다. 사랑한다는 것, 도대체 얼마나 많고 많은 조건이 필요한 걸까. ‘느낄 수’는 있어도 조건을 갖춘 존재만 ‘이룰 수’ 있는 거라면, 사랑만큼 잔인하고 비겁한 것이 또 있을까?
‘우주의 현재 상태는 과거의 결과이자 미래의 원인이다. 만약 존재가 어느 순간, 어느 시점에서 자연을 움직이는 모든 힘, 그리고 모든 물체들의 위치를 알고 있다면 그리고 그 존재가 이 모든 자료를 분석하기에 충분한 연산 능력을 갖고 있다면, 단 하나의 식에 우주 만물의 운동을 담을 것이다. 그러한 존재에게는 그 어떠한 것도 우연이 아니라 필연 안에 있으며, 과거뿐만 아니라 미래 또한 눈앞에 보일 것이다.’
조이가 나에게 속삭인 이야기는 아무리 애를 써도 기억나지 않았다. 내가 왜 눈물을 흘렸었는지도. 다만 나는 조이가 말한 ‘라플라스의 악마’가 무슨 뜻인지 단말에서 찾아볼 수는 있었다.
일주일을 남긴 밤, 조이가 나를 찾아왔다.
조이의 작업복 상의 지퍼가 망가져 있었다. 누군가 힘을 줘 억지로 잡아당긴 것 같았다. 내 눈길이, 풀어헤쳐진 조이의 가슴 쪽으로 갔다. 분명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였다. 조이도 내 시선의 움직임을 느꼈지만 반응하지 않았다. 왜 그렇게 됐는지, 누가 그렇게 만든 건지 설명하지 않았다. 설명하지 않아도 나는 짐작할 수 있었다. 로건이 한 짓이었다. 조이는 차분하게, 내가 들어줄 수 없는 부탁을 했다.
“정비창 시스템 관리자 열쇠 갖고 있지? 그게 필요해.”
안 된다고 잘라 말하지 못했다. 내가 타인에게 열쇠를 넘기는 순간 그건 진짜 해고의 사유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그게 왜 필요한 지 말해줘.”
“마지막 날, 로건이 나를 납치할 거야. 골방으로 끌고 가서 자폭할 거야.”
예감은 충분했다. 뭔가 좋지 못한 일이 일어날 것 같다는 건 나도 레오도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끔찍한 사건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내 얼굴에 피가 가셨다.
나는 로건이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렇게 무모한 사람일 수 없다고.
“마리, 네 앞에 서 있는 나, 나는 그냥 패턴을 읽는 기계야.”
수학 전공자인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말이었다. 그런데, 인간은 다른가? 인간의 신경망도 결국 인공지능의 신경망과 다를 바 없는 건데. 게다가 나와 로건, 레니는 제대로 된 인간도 아니다. 복제인일뿐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나마 불량품이었다.
“숫자가 엉켜있는 행렬이든, 유체역학이든, 행성의 움직임이든, 대상이 무엇이건 간에 복잡하게 전개되는 패턴을 읽고 예측하는 건 내가 제일 잘하는 일이야. 잘하는 일이 아니라, 나라는 존재는 원래 그게 전부야. 나는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나길 바라지 않아. 로건이 자폭하는 걸 보고 싶지 않아. 가능성이 있다는 건 오래전에 느꼈어. 그리고 바꿀 수 없다는 게 분명해졌어. 너에게 '라플라스의 악마'를 얘기하던 즈음이야. 계산이 틀리길 바랐어. 간절하게. 네트워크에 연결되었을 때, 그 힘을 빌어서 다시, 또다시 계산을 반복했어. 어떻게 해도, 결과는 동일했어. 그러니까 로건의 행동을 막을 수 없는데, 나는 그런 식으로 우리가 끝나는 걸 원치 않아. 로건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나는 울음을 터뜨렸다. 그건 두려워서가 아니었다.
내 앞에서, 조이는 로건과 함께 죽는 엔딩을 받아들이겠다고 말하고 있었다. 조이는 목 놓아 우는 나를 꼭 안아주었다.
나는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정비창 시스템 접근 코드가 담긴 양자 암호 열쇠를 조이에게 넘겼다.
아픈 이야기를 비밀로 품는 건 가시를 꼿꼿이 세운 고슴도치를 품에 안는 것과 같다. 여전히 조이가 귓속말로 했다는 이야기가 기억나지 않았지만, 나는 왜 그것이 '라플라스의 악마'에 관한 것인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조이가 우리와 한 팀이 되고, 우리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얻으면 얻을수록, 미래를 예측하는'단 하나의 식'을 구성하는 변수들이 점점 더 많이 결정되었을 것이다. 희미하던 미래가 점점 더 세밀한 그림이 되어갔을 것이다.
로건은 더 이상 이성적인 존재가 아니었다.
발정 난 수캐 같았다. 한시도 조이를 가만두지 않았다. 레오가 팀장인 로건에게 그만 좀 하라고 나무랄 지경이었다. 언제 문제가 터져도 이상할 것 없었다. 그런데 희한했다. 분위기를 뻔히 알 텐데도, ㈜옥토끼나 제조사는 움직이지 않았다. 모르는 척, 개입하지 않고 관찰했다. 다만, 나와 조이는 알았고 ㈜옥토끼나 제조사가 눈치채지 못했던 사실이 있었다. 로건은 골방에 메탄 연료 카트리지와 산화제를 조금씩 쌓아두고 있었다. 작은 전기 불꽃만으로도 우주정과 그 안에 든 모든 것을 흔적 없이 날려버릴 양이었다.
석 달을 이틀 남기고, 로건은 눈이 쑥 들어간 모습으로 골방에서 나왔다. 그날은 조이를 귀찮게 하지도 조이에게 말을 걸지도 않았다. 작업 시간이 끝나고 조이가 연장들을 정리하고 있을 때 로건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떠나면, 연락할 방법이 있을까?”
“없어. 생각해 봐, 방법이 있겠어? 그 많은 ‘조이’ 제품 중에, 나를 찾을 수 있겠어? 아니, 너를 기억하지도 못할 텐데, 그 어느 것이라 해도 나일 수 있겠어?”
조이답지 않게 목소리가 컸다. 로건은 고개를 푹 숙이고 다시 골방으로 들어갔다.
조이의 슬픔과 고통과 두려움이 나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인간이 만들어낸 존재, 인간의 소유인 존재, 인간이 운명을 결정해 주는 존재, 로봇 조이. 사랑할 수 없게 태어난 내가, 처음으로 사랑에 빠진 존재. 아직 고백하지 못했지만, 그걸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나는 이를 악물었지만, 눈물이 샘에서 새어 나오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레오는 정비 중인 우주정 배 아래에 들어가 있었다. 일을 하는 줄 알았는데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억지로 정비를 끝내고 집에 돌아가서도 심장이 쿵쿵거려서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눈을 감으면 조이가 시스템을 조작해 꾸며낸 가짜 감시카메라 영상이 머리를 뒤덮었다. 조이가 로건을 깔고 앉아 갈비뼈를 부러뜨리고 붉은 피가 꿀렁거리는 심장을 꺼내는 장면이었다. 물론 실제 일어날 일은 정반대였다. 조이 말에 따르면 로건은 조이를 전기충격기로 쓰러뜨린 뒤 골방으로 끌고 가 자폭할 거라고 했다.
조이는 실제 상황을 녹화한 감시카메라 영상이 사라지지 않고 남게 된다면, ‘목숨을 버릴 만큼 사랑스러운 로봇’ 같은 제목으로 유포돼, 엄청난 광고 효과를 거둘 것이라고 했다. 자기 같은 인공지능 로봇이 대량생산되어 날개 돋친 듯 팔릴 거라고. 그런 일이 벌어지는 걸 막고 싶다고 했다. 폭발이 일어나는 순간, 조이가 미리 조작해 놓은 동영상이 실제 동영상과 바꿔치기될 거라고 말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