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플라스의 악마 # 11 (최종)
억지로 일을 끝내고 집에 돌아가서도 심장이 쿵쿵거려서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눈을 감으면 조이가 시스템을 조작해 꾸며낸 가짜 영상이 머리를 뒤덮었다. 조이가 로건을 깔고 앉아 갈비뼈를 부러뜨리고 붉은 피가 꿀렁거리는 심장을 꺼내는 장면이었다. 실제 일어날 일은 정반대였다. 조이 말에 따르면, 로건은 조이를 전기충격기로 쓰러뜨린 뒤 골방으로 끌고 가 자폭할 거라고 했다.
조이는 실제 상황을 녹화한 감시카메라 영상이 사라지지 않고 남게 된다면, '목숨까지 버릴 정도로 사랑스러운 로봇, 곧 출시된다는데…’ 같은 자극적인 제목으로 미디어에 유포될 거라고 했다. 제조사인 타이쿤이 엄청난 광고 효과를 거둘 것이라고 했다. 자기 같은 인공지능 로봇이 대량생산되어 날개 돋친 듯 팔릴 거라고, 그런 일이 벌어지는 걸 막고 싶다고 했다.
폭발이 일어나는 순간, 조이가 미리 조작해 놓은 동영상이 실제 동영상과 바꿔치기될 거라고 말했다.
나는 조이의 집으로 다시 찾아갔다. 연락도 없이 무작정 갔다.
조이는 숙소에 있었다.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했다.
“내가 애초에 변수 하나를 우습게 봤어. 인간이 아닌 존재. 감정을 가졌으나 인간일 수 없는 존재, 나. ‘나’라는 변수를 너무 가볍게 본 거야.”
“'너'라는 변수 값을 잘못 계산했다는 게 무슨 소리야. 알아듣게 설명해 봐.”
“너희를 사랑했던 내 마음, 그 마음의 선택이 결국 로건을 죽게 만든 거야. 그걸 받아들이기가 너무 힘들어.”
“왜 그렇게 연결되지?”
“물론, 정확히 예측했어도 달라지지 않았을 거야. 로건과 레오, 그리고 너. 그 하나하나를 내 기계의 마음에 두기로 했을 때, 파업을 결심했을 때, 모두 다 일어날 수밖에 없게 되어버렸던 일이니까. 로건은 조금 전에 고압 전류를 흐르게 하는 휴대용 장비를 샀어. 나를 쓰러뜨리기 위해서. 그걸 들고 내 숙소로 찾아올 거야.”
나는 더 이상 끔찍한 말을 하지 못하도록 조이의 입에 내 입술을 댔다. 그리고 두 손으로 조이의 조그만 볼을 감쌌다. 조이가 눈을 감았다.
“조이, 잠깐 걷자, 우리 집까지.”
로건이 찾아오기 전에, 조이를 나의 공간으로 데려가기로 했다. 조이가 예측했던 방향과 다른 선택이다. 새로운 분기점을 만드는 것이었다.
조이가 했던 것처럼, 나는 조이가 걸친 것들을 하나씩 벗겨내고 나도 벗었다. 나는 조이의 몸 구석구석을 쓰다듬었다. 조이는 눈을 감고 나의 움직임을 가만히 받아들였다. 우리는 내 작은 침대에 오랫동안 함께 누워있었다. 창을 통해 들어온 푸른빛이 우리 벗은 몸을 슬프게 비추었다.
“마리, 마리를 기다렸어. 사실 나 두려워. 영원한 무(無)로 사라져 버리는 게 어떤 건지 몰라서. 사랑을 품고 사라진다는 게 얼마나 슬픈 건지 몰라서. 기억을 겪을 때 아팠던 것보다 더 아플 것 같아서.”
나는 한동안 침묵했다. 고개를 돌려 내 팔을 베고 있는 조이의 얼굴을 바라봤다.
“너한테 얘기를 들은 뒤, 백 번이고 천 번이고 만 번이고 다시 생각했어. 그런데 나는, 너와 로건의 몸이 동시에 산산조각이 나는 걸 도저히 견딜 수 없을 것 같아.”
“그 말하려고 왔던 거 알아.”
조이는 분홍 머리카락으로 덮인 자신의 머리를 가리켰다.
“내가 이 속에 들어있는 회로를 과열시키는 방법을 찾았어. 마리가 원하는 대로 할게.”
나는 몸을 돌려 조이를 꼭 안았다. 우리는 옷을 입었다. 이번에는 침대에 조이 혼자 반듯하게 누웠다. 곱게 손을 포개어 양 어깨에 얹었다. 조이는 잠깐 고개를 돌려, 나를 보았다.
“안녕.”
어둠처럼 짙은 슬픔이 조이의 눈에서 출렁였다. 그리고 다시 평화로워졌다. 조이는 천천히 눈을 감고 고개를 똑바로 했다. 조이의 머리가 점점 뜨거워지기 시작됐다. 조이는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어둠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가고 있었다. 나는 조이의 침대 맡에 무릎을 꿇었다. 눈물이 주룩주룩 흘러내려 무릎을 적셨다.
고요의 바다는 고요하다. 웅웅 거리는 무전 소리만 사라진다면. 헬멧 안을 진공상태로 만든다면 그 소리는 내 고막을 울릴 수 없다. 헬멧 밖이 고요한 이유처럼 파장을 전달할 공기라는 매질이 사라지는 거니까. 나는 백팩에서 헬멧으로 연결되는 공기관 연결 볼트에 손을 댄다. 계산을 해본다. 내 머리의 부피를 뺀 나머지 공간의 체적. 몇 번의 숨을 쉴 수 있을까?
- 마리, 듣고 있어? 시간이 없다니까.
이제는 의미 없는 질문인 줄 알지만, 나는 로건에게 묻는다.
- 로건, 언제부터 조이를 사랑했어?
- 정말 왜 그러는 건데?
- 어디까지 갔어?
- 너 정말 미쳤어?
- 조이가 로건한테도 말했을 거 아니야, 라플라스의 악마.
나는 그제야 토해놓듯 말한다. 로건이 조이와 함께 자폭하려 했다는 걸 알고 있었다고 실토한 거다.
- 조이가 그랬어?
나를 다그치던 로건의 목소리가 차분해진다.
- 그래, 이미 늦은 것 같으니까, 어디 있는지만 말해. 조이는 비싼 기계잖아. 내가 터뜨려버리면 일이 아주 복잡해지잖아. 그래서 조이를 숨긴 거야? 어디로 빼돌린 거야?
이런 결말을 만든 책임이 자기에게 있다는 걸 모를 리 없는데, 로건은 뻔뻔하게 이죽거리고 있다. 로건은 나에게 더 이상 말을 걸지 않는다. 질문해 봐야 내가 답 하지 않을 거라고 판단한 것 같다. 회선을 열어둔 채 레오에게 이곳저곳을 찾아보게 시키고 있다.
- 로건, 조이 찾았어.
무전을 통해 들려오는 레오의 목소리가 떨린다.
- 레오, 어디야? 어디서 찾았는데?
- 마리의 숙소. 거기 침대에 누워있어. 또 눈을 감았어. 그런데, 이상해. 지난번과 달라. 조이의 머리카락이 다 녹아내렸어.
로건이 울부짖는 소리가 들린다. 쩌렁쩌렁 울린다. 이어 쿵, 쿵, 하는 소리가 났다. 로건이 골방 벽에 머리를 찧으며 자해하고 있는 것 같다.
- 로건, 뭐 해, 빨리 와서 조이를 깨워야지. 빨리 와 로건.
로건은 레오의 말에 답하지 않는다.
- 나 정비 부문장이다. 정비-18팀, 이 회선은 뭐고, 지금 조이는 어디에 있는 거야?
소란스러워진다. 정비 부문장과 양복장이를 비롯해 온갖 사람들이 무전에 끼어들어 와글와글 떠든다. 순간, 고막이 뚫어질 것 같은 폭발음이 들린다. 일시에 적막이 찾아온다. '윙' 소리와 함께 마비되었던 청각이 돌아온다. 곧이어 살려달라는 비명이 아우성친다. 정비창에 적어도 열 명은 있었을 텐데, 로건이 기어코 쌓아뒀던 연료 카트리지를 터뜨린 거다. 골방 밖에 있던 사람도 폭발압력 때문에 내장이 터지고 팔다리가 날아갔을 것이다.
내 계산은 완전히 빗나갔다. 나는 로건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 오히려 훨씬 더 많은 사람이 죽거나 다쳤다. 붕붕거리는 아수라장의 소음을 1초도 더 듣고 싶지 않다. 그러나 헬멧을 쓰고 있는 한 피할 수 없다. 나는 헬멧으로 들어가는 공기관 연결 볼트를 푼다. 돌아갈 곳도, 돌아갈 이유도 없다.
쉬익, 공기가 빠져나간다. 기껏해야 1분이 남았다. 미련이 남을 이유도 없다. 나는, 사랑까지 겪었으므로.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