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플라스의 악마 # 9
조이는 원통형 기계에 사흘을 더 연결되어 있었다.
나와 레오는 급한 일이 없으면 휴식시간마다 조이를 만나러 갔다. 로건에게 같이 갈 거냐고 물었지만 대답이 없었다. 나는 로건이 따뜻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정하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런데, 사흘째 되는 날, 나는 조이의 숙소 앞에서 서성이던 로건을 발견했다. 눈이 마주쳤으므로 서로 못 본 척할 수 없었다.
“로건, 들어와. 레오랑 나는 돌아가려던 참이었어.”
나는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입꼬리가 미소 짓는 것처럼 약간 올라갔는데 눈에는 힘이 들어가고 눈썹이 처져서 전체적으로는 매우 낯선 표정이었다. 나는 얼른 레오의 소매를 끌고 밖으로 나왔다.
기술진들은 조이 전뇌의 신경망을 일일이 점검하고 일부 모듈은 업데이트했다. 허락 없이 문을 잠그고 잠들어버리는 일이 재발되는 걸 막기 위한 조치일 거라고 생각했다. 우리와 웃고 떠들다가도 조이는 불쑥불쑥 인상을 찌푸렸다. 통증을 느끼는 것 같았다.
나는 혼자 조이를 찾아갔다.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조이는 아직 전선 다발을 주렁주렁 연결한 채였다. 그 상태로 상체를 일으켜 동그랗고 조그만 창에 얼굴을 붙이고 있었다. 하얗게 반짝이는 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조이의 얼굴이 창밖에서 들어온 빛을 받고 있는데도 그늘이 짙고 차갑게 느껴졌다.
조이는 인기척이 나자 고개를 돌렸다. 조이가 내 손을 잡았다.
“나, 꿈을 꾸나 봐.”
내 꿈 얘기가 아니었다. 조이 자신의 얘기였다.
동굴 문을 여는 주문만 남겨놓고 죽음 같은 깊은 잠으로 빠져들었을 때, 그때 처음 그런 일이 있었다고 했다. 꿈을 꾸는 로봇이라니. 그런데 조이라면. 거짓말 같지 않았다.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으니까. 꿈을 꾸는 게 가능할 것 같았다. 나는 조이에게 관대해져 있었다. 소장이 말해준 것처럼 두개골을 열고 기억을 읽히는 게 그렇게 위험한 일이었다면, 조이는 정말 죽을 결심을 한 로봇인 거니까. 아니, 죽었다가 살아난 거니까.
조이는 그 꿈이 희미하고 어렴풋했지만, 인간이었던 기억 같았다고 했다.
어떤 얼굴들의 딸, 아내, 어머니였던 기억. 명치 어디쯤을 쿡쿡 찌르는 듯 아픈 사랑, 그리고 심장을 저미는 것 같은 이별의 기억이었다고 했다. 그건 아마 기술진들이 넣어둔, 인공지능 학습 목적으로 대량으로 합성된 가짜 데이터임에 틀림이 없을 거라고 했다. 진짜가 아닐 거라고 했다. 그런데도 자꾸 생각이 난다고 했다. 눈물을 글썽였다. 나는 조이를 안았다. 등을 쓸어주었다. 조이의 볼이 내 목에 닿았다.
그때, 조이가 나에게 안긴 상태에서 불쑥 로건의 이름을 꺼냈다.
“로건이 왔었어.”
내 가슴속에서 무언가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내 마음의 떨림이 닿은 살을 통해 전해진 것일까? 조이는 더는 로건 얘기를 하지 않았다. 대신, ‘라플라스의 악마’를 기억하냐고 물었다. 내가 쓰러졌을 때 자기가 내 귀에 대고 이야기했다고 했다. 나는 잘 기억나지 않았지만, 그냥 심드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모른다고 하고 싶지 않았다. 조이는 웃었다. 주머니에서 너트 하나를 꺼냈다. 한쪽은 육각형의 면이 살아있고 다른 한쪽은 모서리가 동그랗게 갈려있는 평범한 너트였다.
“각이 있는 쪽이 앞, 동그란 쪽이 뒤라고 할게. 자, 마리. 이번에 어느 쪽이 나올지 맞춰봐. 앞일까 뒤일까?”
“그건 베팅하는 거지 맞추는 게 아니지 않나?”
“맞아. 베팅하는 거지, 홀짝놀이처럼. 그런데 나는 맞출 수 있더라고. 문득 그럴 수 있을 것 같았어. 좀 난데없지만, 우주정은 왜 폭발했을까 한참을 생각하다가 깨닫게 되었어. 자 봐.”
조이는 결과를 예고하고 던졌다. 열두 번 모두, 너트는 조이가 말한 그대로 손바닥에 자리를 잡았다. 꼭 마법을 쓰는 것처럼.
“그거 알아? 동전 던지기는 공평하지 않아. 50:50의 확률이 아니야. 처음 나온 면이 나올 확률이 조금 더 높아. 축이 흔들리는 세차운동 때문이지. 디아코니스가 그걸 예측했고, 나중에 실제 실험으로도 증명됐어. 마법이 아니라 물리학이지. 세상의 모든 건 물리학의 법칙에 따라서 결정돼. 이 너트는 동전보다 앞뒷면의 차이가 훨씬 커. 그러니까, 내가 이 정도는 쉽게 맞출 수 있어야 하는 거야.”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르겠어.”
“마리, 내가 귀에 속삭인 거 기억 못 하는 거 알아. 어쩌면 다행일지도 몰라.”
내 얼굴이 붉어졌다. 조이가 나를 놀리는 것 같지는 않았다.
분위기가 제법 심각했다. 조이는 두렵다고 했다. 왜, 무엇이 두렵다는 건지, 나는 알고 싶지 않았다.
조이가 정비창에 돌아왔다. 조이는 밝았다. 그렇게 보였다.
우리는 함께 고요의 바다를 보러 가기로 했다. 가자고 한 건 나였다. 마침 달의 밤, '별의 날들'이 시작된 지 얼마 안 된 시기였다. 그런 큰 사건이 일어난 뒤인데도 제조사와 ㈜옥토끼는 단체 휴가를 허락했다. 아마 그것도 실험의 일부로 여겼을 것이다. 조이는 작업복 외에는 옷이 없었다. 그걸 입고 관광지에 갈 수는 없으니까, 내 옷을 입혔다. 별 모양이 촘촘히 박힌 검은색 긴팔 상의와 흰 바지였다. 좀 헐렁해 보였는데 로건은 '잘 어울린다'라고 했다.
우리는 함께 장거리 셔틀을 탔다. 주르륵 네 명이 앉은 우리는 괴상하긴 하지만 가족 같았다.
레오와 나는 많이 웃었다. 나는 관광 안내원처럼 고요의 바다는 눈부신 조명이 많으니까 별이 안 보일지 모른다, 셔틀로 이동할 때가 기회다, 어두운 밤하늘에 촘촘하게 걸린 별을 질릴 때까지 충분히 봐둬야 한다, 다시 못 올 수도 있으니까 꼭 그래야 한다, 열을 올리며 팀원들에게 당부했다.
별이 빛나는 밤은 내가 보고 싶었던 거였지만, 셔틀이 남극 기지를 벗어난 뒤 나는 조이를 창가에 앉혔다. 정말로 내가 기대하던 완전한 밤이었다. 별빛 외에, 그 아무것도 별빛을 간섭하지 않았다.
나는 같이 보자면서 창밖을 내다보는 조이의 뺨에 내 뺨을 꼭 붙였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