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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roofs Oct 25. 2024

[장편소설] 붉은 눈 3부 -3-

20

 개풍군 24사단 사령부에서 강석철 일행을 태운 수송차량은 한밤중에 출발했다. 새벽2시 였다. 강석철을 포함한 10명은 비밀리에 공단으로 이동했다. 모두 포승줄에 묶여 있었고 눈도 가려졌다.  공단은 쥐죽은 듯 조용했다. 날은 흐려 있었고 달은 구름에 걸쳤다. 드물게 켜져 있는 가로등만이 도로의 형태를 알아 볼 수 있도록 했다. 공단입구 경비초소에서 이들은 모두 내렸다. 경비병은 허가증을 보고 차량을 공단 안으로 들여보냈다. 트럭은 서해산업의 연구동 앞에서 멈췄다. 운전병과 감시병이 이들을 내리게 해 연구동 안으로 들여보냈다. 곧장 이들은 지하로 이동했다. 연구동 경비가 이들을 안내했다. 지하 1층에는 김수필이 있었다. 김수필은 소식을 듣고 지하2 층의 문을 열어 두었다. 불을 키자 수많은 동물들이 안에서 놀라 깨어났다. 사람들이 들어오자 동물들이 비명같은 소리를 질러댔다. 김수필은 경비에게 이들을 동물 실험실 유치장에 두 명씩 넣도록 했다. 앞이 보이지 않아 석철일행은 이곳이 어딘지 구분이 잘 가지 않았다. 하지만 지하에 있는 느낄 수 있었다. 공기는 환기시설이 갖추어져 있다고 해도 눅눅하고차가운 습기가 느껴지는 듯 했다. 석철과 동식은 가장 안쪽에 자리했다. 묶여 있던 손과 안대를 누군가 풀어주었다.


여기는 어디지? 여기는 뭔가 지하 감옥 같소.

침착해라. 어쨌든 우리가 여기서 살아나가면 되는 거야. 설마 노동교화소보다 더 한곳이 있을까. 정신 바짝 차리고 일단 좀 자두자. 지금은 그게 체력을 보존하는 길이다. 둘은 그렇게 누워서 잠에 빠져들었다.

김수필은 일단 이들을 데려오기는 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아직 방향을 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김전호 실장의 말대로  실행하기는 했다.  김병철은 실험체인 이들이 온 이유를 몰라야 했다. 하지만 그도 이미 알아버렸으니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상황을 만들수 밖에 없다. 김수필은 고민하고 있었다. 다음날  김수필은 마르크 박사를 불렀다. 둘은 김수필의 사장실에 마주보고 앉았다.

박사님 드디어 실험체가 도착했습니다. 물밑교섭에서 승인이 난 모양입니다. 저들은 노동 교화소에서 죽는 날만 기다리고 있었던 범죄자들이지요. 그래서 박사님의 연구를 위해 활용될 수 있을 것입니다. 마르크는 자신의 실험과 연구를 완성시키고 싶은 욕심이 있었지만 현재 뭔가 꺼림 직한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저들의 상태는 어떻습니까? 의식 불명의 상태인가요? 칩을 이식해야 하고 약을 투여해야 합니다. 알다시피 제 연구는 의식을  깨우고 모니터링해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아 ......그 부분을 저는 모릅니다. 김전호 실장과 한 계약 건에 충실할 뿐이고 지하2층 연구시설에 박사님이 연구를 완성할 수 있는 모든 준비를 해드린 것으로 족합니다. 1차 최종 인원은 10명입니다. 당장 오늘부터 실험진행이 가능할 겁니다.

알겠습니다.


마르크는 그의 말을 듣고 오후부터 연구를 시작하겠다고 김수필에게 통보했다. 당연히 김수필은 김전호에게 상황을 보고 할 것이다. 김전호실장은 연구에 대한 기대감을 그동안 여러 번 내 비쳤다. 오후에 마르크는 지하 연구동으로 내려갔다. 환기장치가 가동된다고 하지만 실내는 눅눅한 느낌이 있었다. 그는 모니터로 대상을 관찰했다. 마르크는 깜짝 놀랐다. 모두 아무런 장애를 가지고 있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이후 마르크는 김수필과 이 문제에 대해서 얘기를 했지만 김수필은 자신의 입장만 반복할 뿐 이였다. 실험과 관련된 것은 전적으로 마르크의 재량과 권한으로 자신은 관여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마르크는 고민에 빠졌다. 마르크는 일단 사람들을 만나서 대화를 나눠보기로 했다. 처음으로 누군가를 만나자 교화소에서 온 이들은 공포에 사로잡혔다. 마르크는 독방 가장 바깥의 강석철과 김동식에게 말을 건냈다.


여기를 어떻게 온 겁니까? 이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마르크를 처다 보았다.

누구요? 석철은 마르크에게 물었다.

당신이 책임자요? 우리한테 무슨 실험을 할 거요? 그게 궁금하오. 우리를 죽이거나 몸을 자르는 것이요? 마르크는 이런 상황을 상상해 본적은 없었다. 아버지나 교통사고로 인지가 불가능한 상태의 사람들 마지막 희망을 붙잡아 보려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이었다. 하지만 이들을 멀쩡하지 않은가. 이들에게 일부러 외적 충격을 가할 수는 없는 일이다. 만약 이들을 통해 실험을 진행한다면 전혀 다른 접근이 필요할 것이다. 마르크는 이들을 보며 고민하고 있었다.

제 실험은 기본적으로 불완전한 의식으로 인해 자신의 의사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거나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사람이 대상이었습니다. 지금 상황은 저도 당황스럽군요.

뭐요? 우리더러 사고를 당하라는 말이요?

아뇨, 실험방법을 바꿔야 합니다. 당신들은 의사를 표현하기가 어렵지 않기 때문에 약물 투입의 양이 늘어나야 할 겁니다. 마르크는 실험의 과정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했다. 지금까지 두 번에 걸쳐 자신이 실험을 진행했고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성공했다고.   실험을 통해서 의지를 주입할 수 있는 가능성도 있다는 말을 그는 덧붙였다. 이 과정에 펜타닐계 마약이 사용되고  중독이  위험도 있다고 마르크는 솔직하게 말했다. 마르크는 잠시 생각할 시간을 줄 테니 선택하라고 덧붙였다. 실험은 내일부터 시작된다고 말했다. 참여하지 않아도 상관은 없고 그렇다면 당연히 원래 있는 곳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얘기를 하겠다고 말해 주었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동일한 내용을 설명헀다.

 뭐 사지를 자르거나 하는 것은 아니라서 다행인데 만약 잘못되면 우리는 영영 알아보지도 못하는 바보가 되는 거 아니요. 동식이 걱정된다는 투로 말했다.

아무도 장담하지 못한다고 하니. 어쩌겠냐. 그래도 여기서 살아남아 돌아간다면 사령관과의 약속대로 새 삶을 살 수 있을 테니 모든 것을 걸어보려 한다.

나도 노동 교화소로 돌아가기는 싫소. 그냥 버터 볼 생각이오.


이들은 마르크에게 실험에 참여하겠다는 약속을 전달했다. 다음날부터 이들은 마르크가 진행하는 대로 약물을 투여하고 마취를 한 뒤  칩을 넣는 과정부터 시작했다. 다른 이들도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전했다. 마르크는 기존의 방식대로 한명씩 모두에게 뇌파측정을 위한 칩을 이식했다. 뇌의 생체신호를 의식으로 전환시켜 마르크는 의식을 컴퓨터에 연결해 읽어내기 시작했다. 운동능력에 이상이 없는 대상에게 진행한 최초의 실험이었다. 그 과정과 내용을 마르크는  보고서로 작성해 기록으로 남기고 있었다. 문제는 약물반응이었다. 마이크로 칩을 통한 전자기 신호의 자극과 흐름이 운동능력이 없는 사람에게는 의식 모니터링과 외부장치를 통한 소통으로 이어질수 있었다. 다만 일반적 신체에서는 전혀 다른 반응이 나타났다.

마르크는 뇌파 신호의 증폭을 위해서 펜타닐계열의 약물과 근육강화제인 글로스테볼, 플루옥시메스테론과 흥분제인 아마넵틴의 농도와 종류를 조절해 반복실험을 진행했다. 이 과정은 실험체에게 극심한 통증을 동반했다. 펜타닐계 약품의 효능이 다하면  통증이 찾아오는 것이다. 뇌의 전자기파를 스캔하기 위해 흥분제와 근육 강화제를 활용했을 때 통각세포가 비정상적으로 발현하기 때문이었다.  실험과정 중에 고통조절이 되지 않아 이들은 수없이 소리를 질러댔다.


 마르크는 신중했다. 몇 주 동안 서서히 상황을 지켜보았다. 하지만 예상과 다르게 금단증상의 빈도가 잦아졌다. 이들은 마치 피부를 태우는 것 같은 고통과 근육통과 함께 밀려들었다. 누구도 예외일 수 없었다. 마르크는 부작용을 줄이려 해보았지만 한계가 있었다.  통증을 줄이기 위한 노력이 필요했다. 마르크는 실험과정에서 근육을 강화하면 통증이 줄어들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시행착오를 거쳐 약물의 혼합비율과 투여횟수를 반복해  가장 적절한 비중을 서서히 알아 낼 수 있었던 것이다. 고통을 줄여주기 위해서 이들에게 진통제를주사하고운동량을 늘려 근육을 강화하도록 했다. 실험과정에서 몇몇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벌어졌다. 마르크는 죄책감을 느꼈다. 이 후 몆 주 동안 실험을 중단하기도 했다. 김수필은 실험을 독촉했다.


마르크 박사 오늘도 쉬는 겁니까? 지하 실험실에서 마르크 박사가 멍하니 데이터를 보면서 고통에 몸부림 치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 있는 모습을 본 뒤 그는 알 듯 말 듯 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일을 맡았으면 제대로 해야지. 저들을 그대로 두면 안돼요. 어떻게 해서든  박사가 성과를 만들어야합니다.

저들의 고통이 보이지 않습니까? 아무리 결과가 중요하다고 해도 저들도 사람입니다. 지금 혼합된 약물을 주입하고 발현결과를 보고 있는 중입니다. 기다려야 합니다. 속도 조절이 필요해요. 근육량을 늘리고 운동신경을 발달시키는 게 통증을 줄일 수 있는 방법입니다. 따라서 반복적 근력운동이 따라야죠고통을 줄여야 하니. 아직 완전한 결과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걸릴 겁니다.

아하. 박사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실험도 중요합니다. 저들은 어차피 교화소에서 죽을 목숨들이었어요. 그걸 우리가 살려준 겁니다. 말하자면 실험체인거죠.

얼마 전 죽은 2명은 어떻게 됐습니까? 장례라도 제대로 치룰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무슨 장례입니까? 시신은 강에 처리했습니다. 바다로 나갈 수 있도록 자연으로 돌아가는 거지요. 박사의 연구실 마이크는 켜져 있었다. 마르크 박사는 약물투여 후 사람들에게 지시할 내용들을 전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고 둘의 대화는 고스란히 방송처럼 연구동으로 퍼져나갔다.


 여기서 나가면 저 김수필이라고 하는 놈을 죽여 버립시다. 우리를 인간으로 보지 않고 있소.동식은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도 근육강화 운동을 멈추지 못했다. 고통과 숨을 참아냈지만 그것도 오래가지 못했다. 동식은 고통으로 몸부림치며 바닥에 누웠다. 손으로 가슴을 누르며 고통을 견디고 있었다. 예상하지 못한 부작용이 이들의 운동능력과 근력을 극대화시켰다. 실험대상자 중 일부는 이미 숨을 거뒀고 2명도 연이어 사망했다. 동식은 여기서 나가는 대로 죽은 자들을 장사지내주자고 했다. 2년여의 시간이 지나는 동안 마르크의 실험은 완성단계에 다다르고 있었다. 약물투여와 의식의 스캔과정 중에서 이들의 고통은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약품의 비율 조절이 열쇄였다. 더불어  근육은 강화되고 운동능력은 일반인들을 뛰어넘고 있었다.  이식한 칩은 여러 번의 교환과정을 거쳤고 약물을 투여 받고 의식을 스캔하는 과정은 끝없이 반복되었다. 동시에 의식을 주입하는 테스트도 이뤄졌다. 일주일에 몇 번 씩 지하 독방에서 나와 연구동 근처의 공터에서 근력 운동 테스트를 진행했다. 마르크는 얼마 전 이들에게 실험의 마지막 단계에 대한 통보를 했다.


이제 고통도 조금씩 줄어들고 있고 약물배합의 마지막단계가 거의 완성된 듯 합니다. 예상치 못한 부작용은 여러분들의 운동능력입니다. 고통의 줄이기 위한 과정에서  신체능력의 비약적 향상이 가능해 진거죠. 예상하지 못한 부작용이지만. 다만 한계를 벗어난 운동량은 통증을 가져옵니다. 반복되면 그 빈도가 훨씬 심해지고 나중에는 진통성분도 잘 듣지 않게 됩니다. 눈의 색소가 침착되고 그 과정에서 혈관이 터져 눈은 붉은 색으로 변할 수도있습니다.  근육이 녹아 내립니다. 마르크는 그렇게 말했다.

실험이 거의 끝난 것이요? 동식이 물었다.

최종 점검만이 남았습니다. 여러분들에게 마지막 테스트를 해 보려고 합니다. 매일 하던 대로 하면 될 겁니다. 고통은 어떻습니까? 어느 정도 잦아들었고 이제 일상생활에도 문제가 없을 겁니다. 이들은 마르크의 말대로 통증이 줄었다는 것을 언젠가부터 느끼고 있었다. 다만 거대한 바위가 온몸을 짓누르거나 불에 덴 듯 한 감각은 불현듯 찾아왔다. 이를 줄이기 위해 근력운동과 심폐운동을 반복해야 한다고 했다.  펜타닐의 중독 증상도 이들을 따라 다녔다. 마르크는 의식을 스캔하는 동시에 전달자의 의지도 지속적으로 전달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테스트 과정은 몇 단계로 나눠졌다. 우선 이들의 의식에 공단의 위치와 규모를 입력했다. 실험체인 석철 일행은 깨어났을 때 정확하게 주입한 내용을 파악하고 기억하고 있었다. 마르크가 내린 지시 사항을 이들은 실행에 옮겼다.  실험은 완성단계에 도달해 있었다. 이들의 의식을 스캔하고 통제하는 단계에 가까워 진 것이다이 모든 자료는 고스란히 김전호 실장에게 전달됐다다만 마르크는 실험데이터의 마지막 부분은 아직 전달하지 않았다. 최종보고서 작성을 앞두고 김수필과김전호에게 지금까지 내용을 일러두었다.


 마르크는 실험이 막바지에 이르자 숙소에서 이런저런 생각에 잠겼다. 과연 이 실험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십 여명의 시험 참여자들 중에 절반은 이미 숨졌다. 김수필은 그의 말대로 사체를 강에 흘려보내 처리했을 것이다. 초기 실험을 떠올렸다. 실험의 목표는 의지대로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사람에게 자유롭게 외부와 소통이 가능하고 자신의 의사를 전달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 실험은 원래 목적에서 이제 벗어난 지 오래였다. 예상하지 못한 부작용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김경섭 교수도 이 연구를 진행한 것인가? 이 때문에 이들의 모든 요구를 들어줄 수 없다고 한 것인가? 이들이 부당한 요구를 한 것인지. 마르크는 갑자기 궁금해졌다. 이들은 이제 인간 이상의 운동능력을 갖출 수 있게 됐다. 그 능력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물론 부작용도 있다. 약의 효과가 떨어졌을 때 극심한 통증이 밀려오게 되며 의식을 잃은 상태에서 자신을 통제할수 없을지 모른다.


 실험동 연구시설에는 끊임없이 약이 제조되고 있었다. 대체 저 많은 약을 어디에 쓰려고 하는가. 실험을 위해서는 충분한 약이 제조되었고 예비물량도 있다. 몇 년간 실험을 넉넉히 해도 남을 양이었다.  생산되고 있는 약은 혹시 북한의 장마당과 해외로 나가는 것인가. 마르크는 그 부분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날 밤 개성에서 여러 발의 폭탄이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생산동과 연구동에서 동시에 사이렌 소리가 울려 퍼졌다. 몇 개의 포탄은 공단 시설까지 근처로 넘어왔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폭발음이 들렸고 공단 주변의 아스팔트에도 폭탄이 터져 도로가 훼손되었다. 개성세력과 평양군의 교전이 또 벌어졌는지 가끔 투닥하는 총 소리가 얼핏 들렸다. 싸이렌이 울리자 김수필과 직원들은 공단에 연구와 생산동 시설의 사람들을 대피 시켰다. 잠시 후 포탄소리와 총소리가 잠잠해지자 사람들은 곧 숙소로 돌아갔다. 이미 여러 번 겪은 일이었다. 하지만 예상하지 못한 문제가 터졌다. 석철과 동식 그리고 다른 피 실험체를 연구소로 다시 이동시키는 도중 이들이 틈을 노려 산 속으로 도주한 것이다. 지금까지 사이렌이 울려도 지하의 실험체를 대피시킨 적은 없었다. 사실 김수필은 일부러 이들이 탈주하도록 상황을 만든 것이다. 김수필은 선택을 했다. 김병철과의 약속을 지키는 것이 자신에게 유리하다는 판단이었다.


  어떻게 된 겁니까? 마르크는 달려 나와 김수필과 관리인들에게 물었다.  

  감시를 소홀하게 한 틈을 타 연구동을 빠져나갔나 보네요. 이런 낭패인데.    

아니 어떻게 이럴 수가. 저들은 아직 관리부분에서 신경 써야 할 것이 많아요. 저대로 두면 위험합니다. 마르크는 걱정스러운 듯이 말을 꺼냈다.

어쩔 수 없죠. 우리야 뭐 실험 데이터는 확보했으니 알아서 어딘가로 갈 테죠. 그들이 달아난 것을 어쩌겠습니까. 할 만큼 한 겁니다. 김수필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노동 교화소에 있는 이들을 데려와 어쨌든 살 수 있는 기회를 준거 아닙니까? 거기에 있었으면 죽은 목숨이나 다름 아니었을 겁니다. 박사가 준 데이터와 지난번 말씀을 들으니 연구는 거의 마무리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박사는 어떻게 할 겁니까? 다른 실험이나 연구를 목표로 한다면 얘기하십시오. 저도 박사님의 추후 연구를 도울 겁니다. 마르크는 김수필의 말과 행동이  이전과 달라졌다고 느꼈다. 실험은 마지막 단계이기는 했다. 하지만 부작용이 얼마나 지속되면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되는지 그 한계를 파악하지 못했다. 마지막 실험데이터가 아직 남은 것이다. 마르크는 허탈함과 안타까움이 마르크의 심리를 덮쳤다. 마르크는 한동안 멍하니 이들이 사라진 연구동 뒷편의 동산을 바라보았다아직은 안 돼. 조금 더 있어야 한다. 마르크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

   김수필이 그들의 군용 지프를 타고 부대를 나가기 전 부관이 그를 불러 세웠다.    

선생은 공단에서 의료용품만 만드는 것이 아니지? 알게 모르게 약을 만들어 유통시키는 것으로 알고 있소만. 당신 그러다가 꼬리가 밟혀서 큰일을 치루는 수가 있소. 공화국에서 허락을 받지 않고 불법으로 약을 만들어 제조하면 사형이야.

사령관님께 제안 드릴 것이 있습니다.

말해 보시오. 내가 전달하겠소.

공단이 지속적으로 커지고 있습니다. 이번에 실험설비를 확장하면서 제조시설이 첨단화 됐죠. 문제는 물량을 처리하는 방법입니다. 아마도 새로운 방법을 찾으면 더 많은 수익을 낼 수 있을 겁니다. 사령관님께 전해주십시요

으음. 당신 대범하구만 기래. 기러다가 죽을 수도 있어. 목숨이 여러 개야? 부관은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말했다.

이렇게 죽으나 저렇게 죽으나 매한가집니다. 사령관님도 개성지역을 안정적으로 통치하려면 아무래도 자금이 필요할 테니 말입니다. 그 방법을 고민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제가 드리는 제안입니다.

우리 공화국은 그런 더러운 돈 따위는 받을 생각이 없소. 아무튼 내가 사령관님께는 얘기해 보겠소.


김수필은 그렇게 부대에서 살아 돌아올 수 있었다. 죽을 고비를 넘기자 김수필은  자신의 생존이 무엇보다 우선이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부대에서 총살을 당하거나 죽임을 당해서 개성 시내 한 복판이나 공단 주변에 널 부러져 있어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죽으면 다 무슨 소용인가. 김전호 실장? 그 자 역시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무슨 수라도 쓸 위인이다. 총통은 이미 정상이 아니다. 부관의 말대로  남한공단의 한 대표가 북한에 불법으로 넘어가서 사고가 나서 죽었다고 한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것이다. 업체의 대표는 그들이 또 구해서 앉히면 그 뿐이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니 김수필은 목표의식이 더 분명해졌다.  이곳을 그만두게 되면 새로운 사업체를 꾸려 더 많은 것을 누려볼 생각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마르크는 사람더욱 이해가 되지 않았다. 식물인간인 아버지를 위해서 장치를 개발하고 연구를 한 부분은 언뜻이해할 수 있다.  다만 아무리 미국에서 실험을 할 수 없다 치더라도 이곳 까지 와서 굳이 남은 연구를 완성하겠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따로 계약한 부분이 있기도 하겠지만 급여는 형편없었다.


 그가 털어놓은 또 하나의 목표인 사회 실험은 뭐란 말인가. 북한 주민을 위한 이상적인 사회적 공동체라고? 김수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김씨 부자의 일인 독재정권하에서 대체 무엇을 바란다는 것인가. 그가 개성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생각과 만들고 싶은 사회적 공동체라는 것은 포말처럼 흩어지는 허무한 모래성이거나 오아시스 앞에서 수분을 머금은 공기가 만든 허상에 불과한 신기루다. 그는 아직 현실감각이 없다. 다들 자신의 이해에 충실하면 되는 것이다. 하긴 마르크도 자신을 이해할 수 없을 터. 그는 자신의 사무실에 <쾌락의 정원> 속 비밀 금고에 쌓여 있는 채권과 현금을 생각했다. 금액이 쌓여 갈수록 자신의 힘과 권력도 더욱 커질 것이다. 김수필이 부대에서 살아 돌아온 며칠 후 그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김병철 사령관으로 부터의 연락이었다. 김수필은 그가 보낸 차를 타고 개성시내로 들어갔다. 새벽 2시에 차는 거의 눈에 띄지 않았고 시내 가로등도 거의 꺼져 있었다. 마치 게임속 폐허가 된 도시안으로 들어가는 듯 했다. 차는 속도를 줄여 통일관으로 들어섰다. 수필이 차에서 내리자 군인들이 그의 몸을 수색했다. 붉은색 카펫이 깔린 접객실에서 김병철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김 선생을 다시 보니 반갑구만 그래. 김병철의 환대에 그는 뭔가 일이 재미있게 돌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앉으시오. 거두절미하고 김 선생이 부관한테 재미있는 제안을 했다지. 얘기나 한번 들어보지. 어떻게 할 생각이요. 자본주의자인 김선생의 제안을 생각해 보갔소. 김수필은 생각을 가다듬었다. 어떤 말을 해야 자신에게 유리할지를 생각하고 있었다.

저를 이곳으로 부르신 이유가? 혹시 저를 죽일 생각은 아닐 테고.

하하. 내가 김 선생을 처리할거면 진작했지. 데려간 사람들의 연구는 어디까지 진행이 되었소?

거의 완성이 된듯합니다.

마르크 박사라고 했나? 그 사람에 대해 조사를 해보니 재미있는 사람이더군. 그래 지금까지 연구된 것을 좀 얘기해 보라우.

마르크 박사는 자신의 아버지가 식물인간 상태에 빠지자 그와 의사소통을 하기 위한 노력을 한 모양입니다. 아버지를 대상으로 실험을 했습니다. 잠깐 성공을 했고 이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이후에 유사한 사람을 대상으로 인체실험을 한 게 알려져서 미국에서 활동을 할 수 없게 됐죠. 그런데 그들은 사지를 움직일 수 없고 의식도 거의 없었던 자들이었죠. 지금 실험대상자들은 멀쩡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박사는 연구 방법을 바꾼 겁니다.

실험대상은 식물인간 상태가 아닌지라 약물과 이식한 칩으로 인해 극심한 고통과 통증을 느끼지만 운동능력이 비약적으로 향상되고 있습니다. 고통을 줄이기 위해서 근력운동이 반복되다 보니 육체적 능력이 좋아지고 있고. 실험은 거의 완성단계가 되었습니다. 그 때문에 재미있는 현상 아니 부작용이 발생했습니다. 이들의 운동능력과 근력이 일반인을 몇 배나 뛰어넘습니다. 또한 박사가 의식을 스캔하는 과정에서 그들을 의지대로 움직이고 통제하는 것이 일부 가능한 듯 했습니다. 미국에서 오래전 CIA가 연구 수행했지만 실패한 실험이었죠.


이거 정말 대단해. 남조선 당국은 상상을 뛰어넘어. 참 부지런 하구만 그래. 그는 껄껄 웃었다. 그렇게 권력을 놓기 싫은가. 그쪽 총통과 사람들은. 하긴 당연한 게지. 자 그럼 말이지. 선생은 실험이 성공하면 그들 중에 살아남은 자들을 우리에게 좀 보내줘야겠어핑곗거리는 만들면 될 테니. 자원은 우리가 제공한 것 아니겠나. 김전호 실장은 아주 노련해. 우리 측 자원을 활용해 실험도구로 써먹고 그 자료만 쏙 빼먹겠다는 심산이구만. 김병철은 야릇한 미소를 지었다

그들이 살아있다면 써먹을 데가 많을 것 같은데 말야. 기대가 돼. 그건 그렇고 김 선생은 참 개성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오? 김병철은 갑자기 뜬금없는 질문을 던졌다.

여기는 실질적으로 내 말이 먹히고 있지. 인민들의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려면 말이야. 돈이 필요해. 중국에서 식량도 더 사와야 하고 배급도 늘려야 하지. 그게 우선 아니겠소? 김씨 일가로 고통 받는 것은 이제 그만해야 할 때가 되었지. 남조선도 경제사정이 안 좋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쪽 총통은 그래도 먹고사는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하기는 했지그런데도 더 뭔가를 하려 하나? 아직 욕심이 남았어?

인간의 탐욕은 원래 끝이 없는 법 아닙니까? 제가 개성에 온 것도 그것 때문이죠. 알고 계실 테지만 국민들의 주머니를 털고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욕구와 욕망을 이용해야죠. 의료용품에서 마약성 진통제 성분의 수요가 늘고 이를 정책으로 만드는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그것 말고 김 선생이 또 나름대로 하는 게 있지? 그건 어떻게 할 거요. 충분한 생산량을 갖추고 물건이 만들어지면 그것으로 외화를 좀 벌수 있겠어? 김병철은 속내를 드러냈다.

자본에 국경은 없는 법이지. 공단에서 물건을 내다 팔아서 개성을 살릴 수 있다면 그건 해볼 만해. 선생은 어떻게 생각하오?

정해진 물량을 공급처로 보내고 있습니다. 추가로 생산이 가능하면 다른 배송방법을 알아봐야 합니다. 남쪽에 아는 공급처가 있습니다. 그쪽을 통해서 물량처리를 늘릴 수는 있습니다.

배송방법은 나도 알아볼 수 있을 거요. 김병철은 탁자로 가서 위스키를 마셨다. 김수필은 김병철과 얘기를 마무리 짓고 부대를 나왔다. 수필은 하늘을 처다 보았다. 저 멀리 초승달이 그를 노려보고 있는 듯 했다.


 연구소를 탈출한 석철과 동식 그리고 몇 명은 한동안 개성일대 야산에서 숨어서 며칠을 지냈다. 이들은 앞으로의 계획을 두고 논의를 했다. 다들 특별한 계획은 없었다. 일단은 살아남는 것이 유일한 목표였다. 개성시내를 돌아다니다 보위부나 사회 안전성의 검문에 걸리게 되면 다시 노동교화소로 보내질 것이다. 공단시설에서 다시 노동을 하는 것도 위험한 일이었다. 결국 이들은 자신들을 남측 연구소로 보낸 김병철한테 가서 약속을 받아내는 것이 우선이라고 판단했다. 이들은 밤을 틈타 하루 동안 조심스레 움직였다. 처음 운송트럭에서 내렸던 익숙한 부대였다. 위병소의 감시병들을 제압하고 윗선과 통화를 요청했다. 잠시 후 이들을 맞이하러 부관이 나와 이들을 감시하고 위병소 유치장으로 이동시켰다. 김병철과의 만남은 다음날이었다.


돌아온 탕아구만. 김병철이 이들을 보며 한 말이었다.

어디 보자 2년 정도 지났나? 아니 3년?   

다섯은 죽고 6명이 살아 돌아왔구만 그래. 내 대충 얘기는 들었어. 살아 돌아와 기쁘고 반갑네. 눈빛을 보니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구만 기래. 사령관은 만족스럽다는 듯 이들을 쳐다보며 다독이듯 대했다. 석철과 동식 그리고 나머지 인원들은 약속을 지켜라라는 무언의 압력을 가하듯 사령관을 보았다.

부관, 이들에게 임무를 주고 앞으로의 할 일들을 설명해 주라우. 그럼 난 들어 갈 테니. 김병철은 그 말을 마치고 뒤돌아 집무실로 향했다. 부관은 이들에게 깨끗한 새 군복을 주고 갈아입으라고 말했다.  잠시 후 이들은 부관의 사무실로 이동했다.

살아 돌아온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이제부터 너희들은 사령관님과 특별한 임무를 하게 될 것이다. 복무가 끝나면 약속한 것을 지킨다는 것이 사령관님의 방침이다. 하지만 당장은 개성으로 가족을 데려올 수 없으니 시간이 걸릴 것이다. 부관은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눈빛을 보니 많은 일이 있었던 것 같군 기래. 부관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사실 김병철과 이들은 얼마의 시간이 지난 것인지도 잘 모르고 있었다. 지하연구시설에서 실험과 운동을 반복했고 가끔씩 외부 운동장에서 근력을 키우며 햇빛을 받은 것이 전부이다. 계절은 여러 번 바뀌었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극심한 고통으로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매번 반복되는 운동으로 그들은 아무런 생각을 할 수도 없었다. 오로지 삶아 남겠다는 의지만이 그들의 머릿속을 채웠다.   


어떤 일을 하게 되는 겁니까? 동식이 물었다.

너희들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능력을 얻게 되었다. 우리도 사실 모르는 일이었고. 기대도 하지 않았어. 영상으로 확인한 결과 너희들은 일반인들 보다 훨씬 바른 반사 신경과 근력 지구력과 심폐력을 갖고 있어. 다들 몸으로 느끼고 있을 것이다. 석철과 동식을 비롯해 이들 모두 자신의 몸이 변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다. 약물이 효과이기도 했지만 고통을 잊기 위한 노력은 이들의 운동능력을 한계까지 끌어올린 것은 분명했다. 이틀간 숨어서 산길을 이동하거나 움직일 때도 전혀 체력이 떨어지거나 피곤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너희들의 임무는 사령관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염두 해 두는 일이다. 또 하나는 남쪽으로 바다를 헤엄쳐 물건을 배송하는 것이다. 추후에 몇 가지 임무가 더 있을 것이다. 이들의 눈빛은  살짝 붉은 기운을 띄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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