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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roofs Oct 26. 2024

[장편소설] 붉은 눈 3부 -4-

내일 김판수부터 정리할 것이다. 석철은 그렇게 생각하고 숙소로 향했다.

21

 김수필은 남산 소월길로 김전호를 찾아갔다. 둘의 대면은 오랜만이었다. 2차 공단설립과 함께 김수필이 사장으로 취임하고 일년 후 이들은 첫 만남을 가졌다. 김전호가 김수필을 만나기로 한 것은 큰 결심이었다. 사람을 쉽게 믿지 못하는 그의 성격상 당연했다.  하지만 김수필은 일처리가 좋았다. 김전호가 지시한  업무와 업체 운영과 관련된 보고서를 꼼꼼하게 작성해서 보내고 수익을 만들자  김수필에 대해 믿음을 갖게 됐다. 이후 정기적으로  만남을 이어갔다. 김전호는 이후 종종 수필을 불러 공단 운영과 관련된 안건을 얘기하기도 했다. 그를 신뢰하게 된 계기는  평양과 개성의 교전이 본격적으로 벌어지기 시작할 즈음이었다. 위기의식이 고조되고 전 세계는 한반도에서 다시 큰 전쟁이 일어나는 것이 아닌가에 대한 우려가 나올 때였다.  김병철이 개성의 출입국 사무소를 몆 주간 막기도 했다. 김수필은 김병철의 출입 제한 가능성에 선제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의견을 전달했다. 고민끝에 김전호는 그의 말 대로 대처를 해 놓았다. 서해산업은 물량을 미리 조절해 피해를 줄일수 있었다.  이후 남한과 개성의 김병철은 판문점에서 물밑 접촉을 통해 원하는 것을 얻어 낸 것이다.


 김수필은 매주 남한으로 월경을 했지만 그때마다 서울의 상황은 좋지 않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기습 시위대의 숫자는 점점 늘어나고 그 때마다 중심가의 상점은 문을 닫았다. 거리는 관리가 되지 않아 쓰레기가 나뒹굴었다. 사람들의 얼굴은 잿빛이었다. 밤이 되면 거리에는 노숙인과 중독자들이 구걸을 하고 있었으며 그 수가 점점 늘었다. 도시에 악취가 심해지는 듯 했다. 하지만 언론에서는 이런 모습들이 전혀 다뤄지지 않고 있었다. 방송에서는 연예인들이 게임을 벌이고 방송사마다 로또 추첨방송이 일주일에 몇 번씩 이뤄지곤했다. 김수필은 오래간만에서 시내를 걸어보았다. 뒷골목에는 악취와 시궁창 그리고 오줌냄새가 진동했다. 쓰레기가 건물 구석에 쌓여갔다. 공공서비스의 감당 범위를 넘어서고 있었다. 그는 남산중턱의 언덕을 걸어 올라가 김전호의 사무실로 들어갔다. 김전호는 책상에 앉아 창밖을 보고 있었다. 김수필이 오자마자 대뜸 일의 진행경과를 물었다.


김대표 개성은 어떤가? 보내준 자료와 내용은 잘 활용하고 있네.

네. 뭔가 시간이 지날수록 국내 사정이 안 좋아 보이는 듯 합니다.  

반정부세력이 사회혼란을 부추기고 있어. 이 고비를 잘 넘겨야 자유 대한민국을 지킬 수 있지. 실험도 완성단계 아닌가?

시위대를 좀 잡아들이거나 본보기를 보여주면 좀 잠잠해지지 않을까요?

물론 그렇기도 하네. 그래서 이번에 자네에게 맡긴 그 프로젝트가 중요한 것이었어. 물량은 잘 확보하고 있지? 수익금액은 APA를 활용해서 실수 없도록 해. 새로운 정책들을 구상하고 있는데 자네의 그 역할이 막중해. 이제 생산량을 늘려 국가 재정에 보탬이 되어야 하고. 극비 사항으로 진행되고 있겠지?

네 물론입니다. 지난번에 말씀하셨던 김판수에 대해서는 어떻게 진행하실 생각입니까?

아직은 좀 더 두고 봐야지. 단기간에 믿을 만한 마땅한 판매루트를 구할 수가 없어. 김판수가 문제를 일으키면 그 다음을 생각하고 있으니까. 자네는 생산량과 관리에 신경 써. 이번에 국무회의에서 정책이 확정되면 한꺼번에 진통제 성분의 제약 물량을 늘리고 그 물량을 바로 처리해야 할 거네.

죽은 실험대상은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뭘 어떻게 해 알아서 처리해. 그들은 그냥 실험용일 뿐이야. 그 부분도 자네의 역할 아닌가. 강에 익사로 처리해 버리든. 그곳에 빈 공터에 파묻든지.

마르크는 어떻게 하고 있나? 실험이 완성단계라면서 박사의 연구 결과물대로 이제 우리가 시작해야지박사의 연구가 드디어 빛을 볼 차례인가.

 지금까지의 연구 데이터는 잘 받으셨습니까? 마르크 박사에게 독촉을 하고 있는데 거의 완성된 것처럼 보였습니다만. 박사와 얘기를 해봤습니다. 마지막 데이터만 정리하면 된다고 하더군요.

김전호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스트레스가 많은지 표정은 어두웠다.  정치상황과 시국으로 인해 처리해야 할 일이 많은 모양이다. 김수필은 김전호가 자신과 김병철 사이의 거래에 대해 언급이 없는 것을 보니 자신과 김병철사이의 거래를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연구가 완성되면 실험체 처리에 대해서도 얘기를 해야 하지만 김전호는  신경을 쓰지 않는 눈치였다. 사실 그가 필요로 하는 것은 실험데이터였고 그 데이터를 활용해 남한에 필요한 자원을 만들면 그뿐일지도 모른다.  그들이 살아서 김병철에게 돌아갔다고 하면 상황이 복잡해지니 굳이 얘기를 꺼낼 필요도 없다. 죽었다고 하면 그만이다. 살아서 나갔다 해도 지금은 그 문제를 신경 쓸 틈이 없을 것이다.

 남한의 상황은 혼란 그 자체였다. 무역수지는끝 모를 적자를 기록하고 있고 원화의 가치는 추락했다외환은 곧 바닥이 드러날 것이다. 환율은 치솟고 있다. 이 상황에서 쓸 카드가 무엇이 남아 있을까. 권력을 유지하기도 벅찰 것이다. 김수필은 소월길을 내려오고 있는 중이었다. 시위대와 진압경찰이 뒤엉켜 난투극을 벌이는 광경이 보였다. 일부는 화염병과 무기와 돌을 들고 진압경찰에 대응하고 있고 총통 퇴진이라는 구호가 공기를 뒤흔들었다. 최루탄 냄새가 퍼졌다. 수필은 옷으로 코와 입을 가렸다. 사람들의 환호와 구호소리는 내리막길 일대를 뒤덮었다. 시위대와 진압경찰은 한 치의 물러섬 없이 대치중이었다. 시위는 금지돼 있었지만 언젠가 부터 유명무실이었다.


김수필은 이들을 피해 서울역 쪽으로 내려왔다. 대체 무엇을 위해 시위를 하며 왜 불필요한 일들을 벌이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오래전 최연경과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사람들이 대의를 통해 총통의 독재 정권을 타도하자는 구호를 외치고 있지만 왜 굳이 스스로 위험을 감수하는지 알 수 없다고 그는 최연경에게 말했다. 그녀는 농담하지 말라며 웃어 넘겼다.   이상적인 사회적 공동체가 필요하다던 마르크는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가. 남을 위해 자발적 희생을 한다는 족속을 김수필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 부류들은 대의명분이라는 거창한 구호를 외치지만 실상 자신의 이기심과 권력욕에 다름 아니었다. 북한에서 이상적 사회 공동체가가능한 것인가.  김병철이 집권하며 개성일대는 전과 다르게 장마당이 활성화 된 부분도 있었다.  사령관을 따르는 세력들이 주민들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 것은 사실이었다. 기존의 억압적 통치 방식보다는 세련된 방식으로 주민들의 요구사항을 들어주고 있는 것이다. 그는 식량배급이나 생필품 등에서도 밀수와 장마당 거래에서 개방적인 태도를 취했다. 주민들의 살림살이가 나아진 것은 분명했다. 그 점은 김수필도 인정하고 있었다. 어찌 됐든 김전호와의 약속이기도 하고 당분간 약의 생산량을  늘리는데 힘을 쏟기로 했다. 김수필은 김병철과의 약속도 지켜야 했다. 그가 물량을 어떻게 처리할지도 관심사였다. 김수필은 그렇게 생각하며 지하철을 타고 움직였다.


*

정엽을 만난 후 수원은 일이 손에 잘 잡히지 않았다. 정엽이 말한 것처럼 서해산업이 정말 마약 유통의 중심에 있는 것일까? 매번 잔챙이들을 잡아들여봐야 크게 효과가 나타날 것 같지도 않았고 잡아봐야 그때뿐이었다. 김판수의 죽음은 상황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있었다. 수원은 얼마 전 집회와 시위에 대한 인물을 분석하는 부서로 파견을 갔다. 언론에서는 다루고 있지 않지만 시위인원은 점점 늘어나는 추세였고 집회는 불법이었지만 시위가 일어나면 사람들은 어김없이 모여 들어 구호를 외쳤다. 마치 자석에 철가루가 이끌리듯. 사람들은 분노 할 만한 대상을 찾아 돌아다니는 하이에나 처럼 보였다. 진압경찰이 나타나 대응을 하면  곧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시위진압과 관련된 경비 인원이 늘어났도 주동자를 찾으라는 지시가 이어졌다. 참여자 신원추적업무는 계속 됐다. 수원은 CCTV로 집회 참여 인원과 인물들에게 대한 조사를 진행했다. 안면인식을 통해 신원을 파악하는 것이다.  신원이 확인되면 출석 요청서를 발송하고 전화로 사실을 알렸다.

폭력 주동자를 선별해 직접 영장을 요청하고 검거 작전에도 투입되었다. 가끔 수원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역과 근처 우범지대 그리고 소규모 마약거래가 이뤄지는 서호 공원지역을 언제나 습관처럼 살펴보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날도 시위대의 신원을 확인하고 나머지 시간은 공단과 공원지역을 살펴보는 중이었다. 몇몇의 사람들은 사각지대로 가서 은밀하게 거래를 하는듯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때 수원은 특이한 모습을 확인했다.

 이들은 집회에 자주 나오기도 하고 시위대의 앞에서 사람들을 이끄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신원이 파악이 되지 않았다. 수원은 대 여섯명 정도 되는 그들의 모습을 주의 깊게 관찰했다. 폐 공단 근처의 CCTV를 확인하다 이들이 동일인일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이들은 짙은 회색의 오래된 코란도 왜건을 자주 타고 다녔다. 몇 달을 주기로 같은 장소에 나타나 사라졌다. 설마 아버지가 살해된 그 장소를 아직도 쓰고 있는 것인가. 가장 안전한 장소는 이미 사건이 벌어진 장소이기도 하다. 아무도 그곳을 다시 올 생각을 하지 못할 수도 있으니까. 아버지의 사망 사건이 벌어진 인천 구월동의 버려진 공단 근처 공원은 악명 높은 곳이다.  


시위현장에 자주 나타난 인물과 공단지역에서 보였던 몇 명의 안면을 비교해 보았다. 컴퓨터는 동일인일 확률이 90%를 넘어간다고 분석을 했다. 하지만 신원은 파악되지 않았다. 아버지가 그때 남긴 개성이라는 말과 글자 그리고 사건현장인근에서 발견된 이들은 모두 동일인일까? 이들의 신원이 확인되지 않는다는 것은 이들에 대한 데이터가 없다는 것이다. 전과자는 아니다. 안면 신원 확인이 안  된다는 것은 높은 확률로 이들은 남한의 인물이 아닐 수 있는 것이다.  아직 확인 작업이 더 필요했다. 이들이 타고 온 차량과 경로를 추적했다. 김포지역의 톨게이트를 이들은 통과했고 여러 곳을 돌아왔을 가능성이 있기에 몇 달치의 데이터를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차량은 일치했고 그들은 김포의 톨게이트를 여러 번 통과한 것이 확인되었다. 그들이 어느 방향에서 온 것인지를 지나다니는 도로를 역으로 추려서 동일 차량을 확인했다. 차량은 김포의 한 외각 지역 근처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수원은 지역 일대를 며칠간 탐문하고 지역의 수상한 사람이 있는지를 확인해 나갔다. 아침마다 반장이 수사보고서와 실적독촉을 하지 않아 파견근무가 이럴 때는 오히려 좋았다. 수원은 일대를 수색하다가 외딴곳에 있는 한 농가주택을 발견했다. 김포 신원면의 버려진 것 같은 느낌의 주택이었다.  큰 길가에서 떨어진 한적한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앞에는 비닐하우스가 있고 이면도로에 잡초가 무성했다. 곳곳에 버려진 과자껍질과 술병이 나뒹굴고 있었다.


 수원은 집앞으로 이동했다. 그의 발 밑 대문 앞에 늙은 호박이 꽃을 피웠다. 문은 잠겨 있었고 비계처럼 사용할 수 있는 돌을 밟고 조심스럽게 낮은 담을 넘어 안으로 들어갔다. 내부는 정리가 되어 있었다. 사람이 살고 있는 흔적이 느껴졌다. 신발을 벗고 툇마루로 올라가 조심스레 안을 살펴 보았다. 기본적인 살림도구가 눈에 띄었다. 이부자리와 허름한 이층침대에는 사람이 있었던 흔적이 느껴졌다. 주변을 살펴보니 음식물 쓰레기 등이 한 곳에 치워져 있었고 약병과 주사기도 보였다. 무엇인가를 태운 쓰레기와 잿더미가 눈에 띄었다. 방과 주변을 다시 살펴보았다. 쓰레기통을 확인하니 패치가 눈에 띄었다. 포장지를 보니 개성공단에서 만든 생산품이었다. 우연의 일치일까?  


 마약 중독 노숙자가 사용하는 곳일 수도 있다. 아니다 그러기에는 너무도 많은 것들이 겹친다. 그는 마당 한 가운데 천막으로 만든 주차장을 살펴보았다. 그 차량이 있었다.‘이들이 맞다.’ 수원은 확신했다. 여기는 저들이 사용하는 장소일 것이다. 하지만 아직 범죄의 흔적이나 그런 것은 없다. 이들은 화요일에 주로 톨게이트를 통과한 기록이 있다. 큰 집회가 있는 날 이들은 모습을 드러내고 움직인다. 수원은 주변의 부동산을 통해 근처 집에 대한 정보를 확인했다. 그 집은 외지에서 온 사람이 세컨드하우스로 쓰겠다며 구매했다는 것이다. 출근 후 수원은 여러 생각에 빠졌다. 확인한 사항을 팀장에게 보고 해야 하나. 물론 아직까지 혐의가 드러난 것은 아니다. 아직 확인되지 않은 첩보를 반장과 팀장에게 알리기에도 무리가 있었다. 반장은 별건 수사하러 돌아다니지 말고 맡은 임무에 충실하라고 말할 것이 뻔했다수원은 농가주택구입자를 확인해 보았다.


주소는 상도동이었고 구매자는 김수필이었다. 이상했다. 김수필이 그 농가를 살 이유가 있나? 매매 내역을 보니 수년전이었다. 그 집은 분명히 집회에 등장하는 사람들과 관련이 있어 보였다. 수원은 틈틈이 김수필의 행적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그에 대한 정보를 모으고 남으로 월경을 한 뒤에 주로 어디서 무엇을 하며 누구를 만나는지 살폈다. 하지만 특별한 것은 없었다. 제약회사와 관련된 인원을 주로 만나고 나머지 시간은 집에서 보내는 듯 했다. 죽은 김판수 그리고 떠내려 온 한강 하구의 북쪽에서 밀려온 몇 구의 시신들 시위와 집회에 자주 등장해 전열을 만들고 사라지는 신원파악이 안 되는 이들. 이들이 주로 머물고 있는 정체불명의 농가의 주인은 김수필이다. 이들은 북에서 내려왔을 가능성이 크다. 아. 수원은 먼가 퍼뜩 아버지의 메모가 떠올랐다. 아버지가 남긴 ‘개성’ 이라는 말은 이들을 지칭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럼 아버지의 죽음에 이들도 관련이 있는 것인가? 이 모든 것들이 연결된다면 김수필이 중심에 있다. 그는 정엽에게 전화를 했다.


정엽이형, 통화가능해요?

어 어쩐 일이야?

개성은 다시 들어가기로 했어?

마무리 할게 있어서 그거 끝나면 곧 갈 거야. 얼마 안 걸려. 김수필의 행적과 마르크 박사에 대한 자료를 검토하고 있어.

내가 최근에 재미있는 사실을 알아낸 게 있어? 공식은 아니고 비공식적 첩보야.

뭔데 말해봐. 네가 주는 내용은 사실 별 의미는 없지만 기대는 돼. 정엽은 농담 삼아 말했다. 수원은 정엽의 말에 반응하지 않고 조금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최근에 내가 사건 조사하는데 집회 체증하면서 주요사람들 얼굴과 신원을 조회하는데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 사람들이 주기적으로 보여. 그때 형이 광장 집회에서 마주쳤던 그 사람들 같아. 그들을 추적하면서 김포 외각에 한 농가주택을 발견했어. 거기에 이들이 타고 다닌 것 같은 차가 있고. 혹시 그 중에 붙잡힌 사람 있으면 안면파악 프로그램에 확인해 볼 수 있어? 정엽은 그 말을 듣는 순간 유치장에서 만난 그 붉은 눈이떠올랐다.

내가 유치장에서 조사했던 그 자는  자료가 아무것도 없어. 신원확인조차 안돼.  그렇다면 이들은 모두 북에서 넘어왔다는 가능성이 있지.

그 농가 주택의 소유자를 알아봤는데 그게 김수필이야. 개성 서해산업 대표 있잖아.

뭐? 동명이인 아냐? 정엽은 의아한 듯 물었다. 그 집이 혹시 김포 외각 신원리에 있어?

맞아 어떻게 알았어?

이건 내가 확인한 내용이야. 형이 개성들어가기 전에 알려주려고. 그 업체는 역시 뭔가 수상해. 그 사람은 어떻게 서해 산업의 대표가 된 것인지. 그 사람 경찰 특채로 근무하다가 그만두고 제약 영업직이었어.그 회사에서 약을 만들어 팔다가 사망한 사람도 있는 것 알지? 한수민인가? 그 사람하고 김수필이 관련 있을까? 김수필은 누가 서해산업으로 보낸 것일까.

음. 서해산업에 대한 내용은 우리도 첩보를 입수했고 김수필이라는 인물에 대해서도 확인했어. 어머니와 같은 학교에 다녔고 학생운동을 한 전력도 있어. 하지만 김수필은 전혀 다른 길로 들어섰더라고. 나도 김수필 주변을 조사하면서 의심스러운 부분을 여럿 확인해 놓은 상태야. 그것만 알고 있어.

이번 사건은 아버지 죽음과 관련이 있을지도 몰라. 내가 그 집을 좀 자세히 조사해 봐야겠어. 수원은 확신에 찬듯한 말투였다.

지원은 나와? 혼자? 반장이 단독수사 하라고 했어? 정엽이 물었다.

우리 팀 지금 바빠. 나도 그렇고. 무슨 놈의 시위가 많은지 그 사람들 신원파악하고 통지서보내기도 벅차. 파견 나왔거든. 거기다 기존에 수사하던 사건도 있고. 지금 체증도 하기 때문에 정신도 없고.

모레쯤 다시 개성으로 가면 군 검찰하고 합동조사를하는 척하면서 서해산업을 파볼 생각이다. 증거도 압수할 수 있으면 하고 이제 거의 다 온 것 같아. 너는 좀 더 확실한 게 나오면 그때 움직여. 수원은 알았다고 말하며 전화를 끊었다. 정엽도 수원의 말을 곱씹었다. 김수필이 그 주택의 주인이고 다면조사실에서 조사 중 이첩된 사건 그리고 체증이 안 되는 이들이 붉은 눈이 맞다면 이들은 반복적으로 시위에 참여 했다. 신원파악이 안 된다는 것은 그들의 데이터가 없는 것이다. 서해산업의 지분을 가지고 있는 바지사장도 신원리에 주소가 있었다. 정엽은  사건의 실체에 가까이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들은 왜 대체 시위에 참여하는가. 그 부분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준비 다 되었소. 동식은 석철을 보며 말을 꺼냈다.

 물건은 잘 챙겼나?

네 이번 물량은 좀 많은데 충분히 우리가 배송할 수 있는 정도요. 더 늘어나게 되면 아무래도 횟수를 늘려야 하지 않을까 싶소.    

너무 무리하면 오히려 탈이 날수 있으니 적당히 하도록 해. 이층침대에는 세 명이 자고 있었다.

김병철 사령관의 지시는 어떻게 할 거요? 김판수를 정말 없앨 생각이요? 그렇게 되면 우리가 물건을 처리할 방법이 있나?

뭐 얘기가 다 된 모양이지. 일단 가서 상황을 파악해 볼테니 남아서 잘 쉬도록.

김수필은 내가 없애는게 좋을 것 같아. 그 뱀 같은 얼굴을 한 모사꾼 같은 놈은 만나면 내가 가루가 되도록 밟아 죽일 것이요. 그놈이 밖에서 히죽 웃는걸 보면 소름이 돋우. 우리를 아예 동물 취급한 것 아뇨. 석철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김판수가 정리되면 아마 밑에 있는 자가 대신 자리를 이어받겠지. 그들도 다들 뭔가를 해 놓았을 거야. 어쨌든 우리는 김병철 사령관의 명령에 따라 움직인다. 때가 되면 어머니와 동생을 데려올 수 있고 새로운 공화국에서 인간답게 모두가 함께 살 수 있다.

알겠소 형님.

오늘거래는 내가 혼자 갔다 올 테니 다음 집회가 서울시내 어디에서 벌어지는지 확인해 놓고 청화수와는 통화를 했나?

대포폰이라고 하는 손전화로 얘기를 했소. 다음번 시위는 종로라 들었소 인원은 한 100명쯤? 그런데 청화수라고 하는 작자는 좀 이상하지 않소? 남조선에서는 왜 우리에게 시위에 참여하라는 거요? 우리한테 뭘 원하는 것인지.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말고 어쨌든 예전 김수필이 얘기한 사람이라고 하니 사령관 하고도 줄이 닿았겠지동명이처럼 잡히지만 말고 남조선 인민들이 집회를 수월하게 할 수 있도록 길만 터줘. 그리고 우리는 빠지고. 동명이가 버티지 못하고 얘기를 했다면 남조선에서도 이미 우릴 파악했을거다.

거 참 알 수 없는 일이요. 동식은 그렇게 말한 뒤 물을 벌컥 들이켰다. 몸에서 열이 나는 것 같소. 마르크 박사가 실험할 때가 생각나네. 제길. 석철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은 채 물건을 싣고 차로 나갔다. 자동차 트렁크 밑 부분을 들어내고 약을 싣고 바닥을 닫았다. 밖에서 보면 아무도 알아 볼 수 없을 정도였다. 만약을 대비해 남측 신분증을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는 거래 장소로 향했다. 인천에 있는 폐 공장이었다. 차창을 내리자 한 움큼 향기로운 풀 냄새가 실내로 스며들었다. 폐 깊숙이 공기를 빨아들이자 뭔가 정신이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마르크 박사가 알려준 대로 흥분 상태를 피하려 노력했다. 석철은 내비게이션이 안내해 주는 대로 차를 몰았다여러 번 방문한 곳이라 크게 어려움은 없었다. 인천 구월공단의 폐 공단에 들어서 정문의 현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폐가전과 시멘트 그리고 나무 널판지가 어지럽게 놓여 있었다. 정문과 공터를 지나 안으로 들어가 셔터를 내렸다. 잠시 후 누군가가 석철 쪽으로 걸어왔다.


김판수 사장님은? 석철이 물었다.

사장님은 안계시고  메모를 남겼습니다.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사내는 짧은 머리와 두툼한 몸집을 가지고 있었다. 팔뚝에는 천사가 나팔을 부는 것 같은 문신이 있었다. 역도나 씨름 같은 운동을 하는 사내라면 이런 모습일 것이라고 석철은 생각했다.

호텔? 왜 이곳으로 오라하나? 그는 사내에게 물었지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물건은 평소대로 두시면 된다고 합니다.

석철은 물건을 꺼내 장소에 넣고 차를 몰아 호텔로 향했다. 인천의 고급호텔이다. 몇 번 와 본적이 있었다. 예상대로 김판수와의 대화는 성과 없이 끝났다. 김판수의 거들먹거리는 끈적한 말투를 더 이상 듣기싫었다. 그는 약속한 금액을 더 이상 줄 수없다는 투였고 석철은 기대할 만 한 것도 협상가능성도 확인할 수 없었다. 그곳에서 나오며 김수필을 본 것은 뜻밖의 수확이었다. 언젠가는 김수필도 처리할 날이 올 것이다. 우선 판수가 먼저다. 판수부터 정리할 것이다. 석철은 그렇게 생각하고 숙소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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