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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roofs Oct 24. 2024

[장편소설] 붉은 눈 3부 -2-

선생, 조만간 우리가 남조선 인사와 만나게 될 거란 말이요

19

 석철과 동식은 민호의 집을 나온 뒤 최대한 눈에 띄지 않게 조심스레 개성시내를 돌아다녔다. 함흥에서 개성으로 오면서 대부분의 여비를 다 쓴 탓에 수중에 남은 돈이 얼마 되지 않았다. 며칠 뒤에는 노숙을 해야 할판이었다. 공민증을 받고 근처의 인력시장을 통해공단 일자리를 찾기로 했다. 공단근처 장마당으로 이동하자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공습은 벌 써 잊은 듯 일상은 이어지고 있었다. 개성의 장마당은 김병철 사령관의 개성일대 점령 후 규모와 거래량이 다른 지역을 압도했다.

 자력갱생이라는 커다란 붉은 글자가 장마당입구를 내려다보고 있었고 사람들은 스스로의 생존을 위해 발버둥쳤다. 일렬로 늘어선 상인들은 솥에 국밥을 끓여 냈다. 하얀색 김이 솥단지에서 올라왔다. 구수한 된장냄새가 식욕을 자극했다. 몇몇의 사람들은 웃으며 물건을잡았다 놓기도 하고 흥정을 이어갔다. 몇몇은 서로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꽃제비가 노점의 물건을 집어들자 주인은 막대기로 손을 내리쳤다. 석철은 이곳 장마당이 지금껏 본 곳보다 몇 배가 더 크다고 느끼고 있었다. 둘은 국밥을 시켜 상인의 옆 자리에 앉았다. 국밥이라고 해봐야 쌀 몇 알이 전부였고 강냉이와 나물이 전부인 죽 같았지만 이들은 허기를 채우려 허겁지겁 숟가락으로 국물을 떠먹었다. 배를 채우고 이들은 다시 장마당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개풍군 근처의 비닐박막을 봐둔 데가 있소. 거기서 하루를 보내고 내일 가서 공민증을 찾아옵시다. 동식이 앞서 걸으며 말했다.

그렇게 하자.

 둘은 그렇게 장마당을 나와 개풍군의 움막으로 한 시간 정도를 걸었다. 노을이 붉게 물들고 있었다. 저녁이 되자 한기가 몰려왔다. 둘은 잠겨 있는 문을 돌로 내리쳐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오후의 열기가 남아있었는지 추위를 피할 정도는 되었다. 문 앞의 툇마루에 누워 종이와 버려진 옷가지를 덮고 잠을 청했다. 한밤중이 되어서도 잠이 쉽게 오지 않았다. 석철은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새벽의 한기가 온몸을 덮쳤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고향에 있는 어머니와 동생을 생각했다. 돈을 벌어 이들을 데려오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하늘에 별은 어김없이 총총히 떠 있었다. 입 깁을 불어 넣으며 손을 매만졌다. 북쪽 하늘에 북두칠성이 보였다. 어쨌든 하루 뒤에는 일을 구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니 좀 안심이 되었다. 석철과 동식은 정민호의 집 근처에서 만나 공민증을 받은 뒤 공단으로 다시 내려갔다. 평양세력과의 전투가 있던 직후 잠시 중단되었던 공사가 다시 시작된 모양이라고 했다


  개성 초입에 들어왔을 때 처음 겪은 일이었지만 다른 주민들은 몇 번씩 반복된 일이라 큰 동요 없이 일상을 이어가고 있었다. 공단 안으로 들어온 것은 처음이었다무엇보다 그 규모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지평선 너머로 사람들은 분주히 자재를 나르고 있었고 건물을 짓는 거대한 기계를 그들은 처음 보았다. 군에서 대민지원을 나가 건물을 올린다고 해봐야 3층 벽돌과 시멘트로 집이나 건물을 짓는 게 전부였기에 이들은 공단의 규모를 보고 그 자리에서 한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흙을 퍼 나르는 트럭이 흙먼지를 내며 그들 옆을 지나갔다. 둘은 소개소 비슷한 곳으로 들어갔다. 50대의 인민복을 입은 한 중년의 남자가 이들의 공민증을 살펴보고 잡일을 알려주었다. 월급과 숙소가 제공되는데 개성에서 통근을 할 수도 있다는 말을 심드렁하게 하고 있었다. 곧 점심시간이 되었는지 수많은 사람들이 가건물로 물밀듯이 밀려들어가고 있었다.


이들은 숙소에서 잠을 잘 수 있고 내일부터 일을 할 수 있었다. 걱정거리 하나는 줄어든 셈이었다. 공단에서 1km미터 떨어진 곳에 숙소가 있었다. 둘은 일단 짐을 챙겨서 숙소로 이동했다. 숙소는 전형적인 단층 건물로 학교를 개조해 만들었다. 한 교실마다 20명의 인원이 잠을 잘 수 있었다. 이부자리도 마땅치 않았다. 숙소 앞에는 모닥불이 피워져 있었고 몇몇의 사람들은 앉아서 졸고 있었다. 옷은 낡아 헤졌으며 얼굴에는 검은 때가 잔뜩 묻어 있었다. 자력갱생이라고 쓰인 붉은색의 큰 글자와 김일성과 김정일의 초상화는 이곳에도 걸려 있었다. 누군가 글자에 진흙을 던져 글자의 절반은 역시 지워져 있었다. 둘은 장마당에서 저녁을 먹고 숙소로 돌아와 구석에 앉았다. 이곳에서 일을 한다면 뭔가 새로운 희망이 생길 것 같은 기분이었기에 긴장이 풀리는느낌이었다. 이들은 오래돼 보이는 모포를 덮고 잠자리에 들었다.


 일과가 끝났는지 술에 취한 사람, 피곤에 찌들어 있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숙소로 돌아오고 있었다. 공단의 건설일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규칙적인 생활이 석철과 동식의 심리를 안정적으로 만들어 주었다. 새벽에 일어나 사람들의 무리와 함께 걸어 공단건설 현장에 도착해 철근과 자재를 적절하게 건물위로 옮기는 일이었다. 시멘트와 건설자재를 계단으로 올려놓는 일도 그들의 몫이었다. 석철이 일하는 곳에서는 설비와 배관이 진행되고 시멘트 작업차량이 레미콘을 붓고 있었다. 일은 어렵지 않았다. 군에서도 늘 하는 일이라 작업 중에는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아 편안한 느낌이었다. 몇 주간을 그렇게 보내자 둘은 자신이 현재 어떤 상황 인지를 거의 잊고 있었다. 며칠 전에는 장마당에서 둘이 술을 마시기도 했고 조금씩 긴장이 무뎌졌다. 그것도 나름 좋았다. 그날 역시 마찬가지였다. 큰 어려움 없는 날이었다. 오전 작업을 마치고 밥을 먹는 도중에 검열이 들이닥쳤다. 황토색 제복을 입은 남자 둘이서 식당으로 걸어 들어온 뒤  주위는 긴장감과 침묵에 빠져들었다.


다들 집중하시오. 특별 검열이 있갔소. 갑작스런 상황에 석철과 동식은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다들 공민증을 내 두시오. 몸집이 작고 피부색이 좀 검은 사람이 말했다.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당에서 나온 모양이었다. 한 사람씩 이들은 공민증을 확인하기 시작했고 곧 석철의 차례였다. 동식이 말을 꺼냈다.

만약 일이 잘못되면 어케 하겠소? 여기서 달아 날거요? 아니면 개성은 뭔가 평양과 다르게 변했으니 한번 버터 보겠소? 석철도 고민하고 있었다. 달아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다음은 어떻게 할 것인가? 평생을 이렇게 도망만 다니며 살 수는 없다. 석철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거기 동무도 주시오. 보위대원은 공민증과 사진 그리고 강석철을 유심히 보았다.

반동분자가 숨어들었다는 제보가 있었소. 자수하면 선처해 주갔소. 김병철 사령관의 말이요.

뭔가 이상한데? 그는 석철의 공민증을 보고 중얼거리듯 말했다. 이후 강석철을 유심히 처다보았다.

동무가 있는 이 주소는 내가 알고 있는 사람이 사는 곳인데 내가 동무를 처음 보는 거 같아. 이름이 최복호가 맞소? 석철은 당황하기 시작했다.

당신 아버지의 이름이 어떻게 되시나? 나는 당신을 잘 모르겠어. 석철은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체포 하라오. 보위대원은 손짓을 했다. 석철과 동식은 천막 밖으로 수갑이 채워져 끌려 나갔다. 이들은 군용 트럭 짐칸에 석철과 동식을 밀어 넣었다.

다시 한번 말하갓소. 좋은 말로 할 때 자신이 위조된 공민증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면 걸어 나오시오. 내 공민증 위조 일당을 붙잡아서 몇 명인지 누구인지 다 알고 있소.


  서너 명이 더 끌려 나왔다. 보위대원과 당 관계자는 이들을 태우고 차를 출발시켰다. 석철과 동식은 노동 교화형을 받지 않을까. 당분간 세상으로 나오지 못하겠다고 생각하고 체념하고 있었다. 차는 칙칙 거리는 배기음을 내면서 아스팔트를 달려 북쪽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일렬로 앉아 있는 사람들의 얼굴 표정은 모두 검게 그을린 듯 했고 찹찹한 표정이었다. 잠시 후 트럭은 부대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리자 모두 흙바닥에 무릎을 꿇리고 두 손을 머리 위로 올려서 대기하고 있었다. 몇 명의 간부로 보이는 사람들이 멀리 대화를 나누고 있었고 이들을 곧 유치장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어떻게 할거요? 동식이 긴장한 듯 석철을 보고 물었다.

이제는 포기 해야겠지. 석철의 얼굴은 어두웠다.


같은 곳으로 가면 다행일 듯하다. 동식은 한숨을 쉬면서 고개를 떨궜다.

어머니가 보고 싶소. 그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유치장안에는 동식을 포함해 여섯 명이 있었다. 곧 이들 여섯 명은 줄에 묶여 밖으로 끌려 나와 이동해 금천군 일대 광산 노동 교화소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구타가 시작됐다. 이들은 한동안 정신을 잃었다. 말로만 듣던 교화소의 노동은  상상을 초월했다. 이들은 광산의 돌을 나르고 고르는 일 철광석을 캐서 수레에 옮겨 담는 작업을 반복해야 했다. 일과가 끝나면 자아비판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후 멀건 죽을 먹고 곧장 잠에 빠져들었다. 다음날 또 같은 일과가 이어졌다. 일을 시작한지 몇달이 지난 이들은 정신이상증세를 보이고 있었다. 무자비한 구타도 그치지 않았다.  석철은 오전 일과를 마치고 점심을 먹고 흙바닥 그늘에 앉아 있었다. 멀리서 군 지프차량이 흙먼지를 내면서 공터에 멈춰 섰다. 다들 일을 멈추고 쳐다보기 바빴다. 소장으로 보이는 사람이 나와서 경례를 하고 몇 명이 내려 차량을 맞이했다. 높은 사람이 탄 모양이었다. 차량을 힐끗거리는 이들을 보자 관리감독관이 다가와 폭력을 가했다. 잠시 후 경비인원이 모든 인원을 교화소 한가운데 집합시켰다.


사령관의 명령에 따라 지금부터 일부 사람들을 차출하겠다. 지명하는 사람은 앞으로 나오라. 이후  젊은 남자를 위주로 열 댓 명을 선발해 집합을 시키고 차에 태웠다. 석철과 동식도 그 안에 포함되었다. 잠시 일을 멈출 수 있다고 생각하니 온몸의 긴장이 풀리는 듯 했다. 석철과 동식은 다시 차체 태워져 어디론가 향했다. 잠시 후 이들이 도착한 곳은 5군단 사령부였다. 김병철의 부관은 고개로 경비병들에게 신호를 주었다. 잠시 후 이들은 한 곳으로 모였고 모두 무릎을 꿇린 채였다. 부관이 말을 꺼냈다.

너희들을 이곳으로 불러 모은 이유가 있다. 너희들은 곧 남한 측의 공단으로 인계될 것이다. 여기 있는 이들은 모두 우리가 신원을 확인했다. 몇 명은 탈영을 했고 죄를 짓고 도주한 자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기회를 주려는 것이다. 원하지 않으면 다시 교화소로 보내줄 수 있다. 하지만 만약 남조선의 공단에서 살아온다면 기회가 생긴다. 원한다면 사령관과 함께 일을 할 수도 가족과 함께 살 수 있도록 해 줄 수도 있다. 모두 너희들을 선택이다. 위험부담을 무릅쓰고 인생을 바꿔 보겠는가. 그냥 여기서 10년 넘게 일이나 하면서 생을 마칠 것인가. 열 댓 명은 서로를 쳐다보며 웅성거리고 있었다.


알겠지만 너희들을 그냥 죽여 버려도 아무도 상관하지 않는다. 사령관께서는 너희들에게 특별한 기회를 마련해 주시려고 하는 것이다. 감사하게 생각해야 한다.

무슨 일을 하는 것이요? 죽어도 이유를 알고나 죽어야 할 거 아니요. 누군가 말을 꺼냈다.

너희들은 실험에 참여하게 된다. 그 실험을 버텨낸다면 공화국에 꼭 필요한 사람이 될 수도 있겠지. 그리고 사령관께서 약속한 그 모든 것을 갖게 될 수도 있고. 자 그럼 기회를 줬으니 하루정도 생각할 시간을 주겠다. 모두를 유치장에 집어 넣으라. 부관이 말을 마치고 경비병은 이들을 모두 유치장에 가뒀다.

이게 대체 뭔 일이래. 형님은 어떻게 하실 거요? 다시 교화소로 돌아 갈 거요? 동식이 물었다.

거기 가봐야 몇 년간 있을지도 모르고 생지옥이나 마찬가지인데 그래도 남조선 실험에 참여해 살아남는다면 사령관의 약속이니 지키겠지. 난 결심했다. 너는 어떻게 할 거냐? 교화소로 돌아가서 노동을 할 거야?

거기 가봐야 매일 생지옥에서 사는 건데. 사령관이 헛소리 할 사람도 아니고 일단 가봅시다. 부관은 말을 마친 후 사령관실로 들어갔다.

저들은 어떻게 될까요? 부관이 말을 꺼냈다.

뭐 남쪽 놈들이 알아서 하겠지. 노동 교화소에서 수 십 년 버터거나 죽을 놈들인데 어떻게 되든 알바는 아니야. 만약 살아서 돌아온다면 쓸 만 한 놈들 몇 명 골라서 임무를 좀 줘봐. 남한 놈들이 얼마나 능력이 좋은지 한번 봐야겠어. 김병철은 창밖을 보며 담배를 피워 물며 대답했다.


 *

 김수필은 김병철과 만난 날을 떠올렸다. 일요일 월경을 해 서울에 다녀왔고 거래처 몇 명을 만나 납품에 대한 영업을 했다. 업무는 순조롭게 진행됐다. 큰 문제는 없었다. 김수필은 얼마 전부터 출입이 금지된 개성시내를 몰래 드나들었다. 금지된 것을 넘는 것은 언제나 스릴이 있었다. 공단에서 개성시내 출입에 대한 경계가 느슨해 졌기 때문이다. 그는 가끔 북한 주민처럼 장마당에 방문했다. 장마당은 마치 타임머신을 탄 것 같은 즐거움을 주었다. 단조로운 일상에 하나의 활력소였다그날도 김수필은 일과가 끝난 오후 시간에 몰래 공단을 빠져나갔다. 북한주민들처럼 옷을 갈아입고 개성으로 향했다. 장마당에 들러 국밥을 한 그릇 먹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기저기 사람들이 떠들어 대고 있었고 항상 있는 꽃제비들은 흥정이 벌어진 틈을 타 먹을거리를 훔쳐 달아났다. 그럴 때 마다 욕설이 들려 왔다.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할 무렵 하나둘씩 전구가 켜졌다. 전력사정으로 불이 깜박일 때 그는 발길을 돌렸다. 그때 누군가 뒤에서 그를 잡았다.


잠시 얘기 좀 하셔야겠어. 어디 공민증을 좀 봅시다. 아차 그는 뭔가 일이 잘못되고 있음을 느꼈다. 문득 낭패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군복을 입은 두 명이 자신을 둘러싸고 있었다. 잠시 따라오시오. 김수필은 하는 수 없이 그를 따라 장마당외각으로 나섰다. 정신을 차리자 저 멀리 군용차량에서 누군가가 내리고 있었다. 군인 여러 명이 그를 주변에서 경호하고 있었다. 김수필은 그가 김병철 사령관이라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남조선사람이 여기서 뭐하는 겐가? 풍채가 좋은 인물이었다. 낮은 중저음의 목소리는 사방을 압도했다

서해산업의 김수필 대표가 북쪽 장마당을 구경하러 나오다니. 공화국 법을 위반 한 게요. 공단 쪽에 사람들을 몇 명 만나봤지만 선생 같은 사람은 처음이라. 독특한 양반이구만. 그는 웃으며 김수필을 처다 보았다.

공단이 설립될 때 이곳을 방문한 적이 있어서 상품조사 차원에서 들러본 겁니다. 그는 그렇게 둘러댔다. 김병철은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

선생은 그러다 뭔가 큰일을 치르겠구만 기래. 김병철은 이미 공업지구에서 가장 많은 매출을 내는 업체의 대표가 김수필이라는 것과 그가 몰래 장마당을 드나드는 것을 파악하고 있었다. 이들이 몰래 만들고 있는 제품에 대해서도 당연히 눈치를 채고 있었다. 홍등가를 관리하는 조직과 서해산업이 새로운 약을 몰래 거래해 장마당에 풀고 있다는 소문을 파악하고 김수필을 주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선생, 조만간 우리가 남조선 인사와 만나게 될 거란 말이요. 우리에게 정보를 줘야겠어. 선생이 서해산업의 대표라지? 제대로 답변을 하지 않으면 공화국의 법에 따라 엄격하게 처리 될 거요.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정보가 된다면 내가 책임은 묻지 않겠소. 아, 우리가 뭔가 당신에게 도움을 줄 수도 있을 것이요. 김수필은 어떤 대답을 할지를 고민하고 있었다.

 당신네들이 연구동인가 뭔가를 지은 것을 잘 알고 있소. 근데 그기서 무슨 연구를 하겠다는 거요? 아. 둘러댈 생각은 하지 마시오. 만약 나중에 약속한 것과 다른 것이 발각되었다면 그쪽 업체에 대해서 책임을 물을 것이요. 김수필은 고민했다. 만약 나중에라도 사실이 알려지게 된다면 업체는 폐쇄될 수도 있을 것이다.    

서해산업은 의료용품을 생산하는 회삽니다. 그 외에 다른 것은 없습니다. 연구시설은 의약품이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를 확인하는 동물실험 등에 대한 것에 불과합니다.

 저자가 바른말을 할 수 있도록 해드려야겠어. 일단 끌고 가라우. 부관이 지시했다. 그들은 김수필을 끌고 차에 태워 시장을 빠져나와 부대로 향했다. 김수필은 부대의 유치장에 갇혔다. 사실 이곳에서 죽는다고 해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공단 대표가 출입이 금지된 북한 장마당에 몰래 잠입했고 그 과정에서 사고가 생겼다고 둘러대면 그만이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김수필은 오래전 안기부에서 동료들을 밀고하고 경찰이 되었을 때를 떠올렸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그로인해 여기까지 온 것이다. 잠시 후 그는 경비를 불렀다. 사령관에게 말할 것이 있다는 것이었다.

선생 생각이 좀 정리되었소? 댁이 여기서 죽어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것이요. 부관은 관심 없다는 투로 말을 뱉었다.

물론 그렇겠죠. 말씀을 드리기 전에 한 가지 부탁할 것이 있습니다. 사령관님을 만나게 해 주십시오.

제가 드리는 정보는 공단이 지속된다면 생각한 것 이상으로 사령관님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남쪽하고 협상에서도 상당히 유리하게 작용할겁니다. 제가 중간에서 역할을 할 수 있다면요. 부관은 병사를 불렀다. 잠시후 김수필은 수갑과 포승줄에 묶여 사령관실 안으로 들어갔다. 김병철은 책상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래 어디 썩은 자본주의자의 얘기나 한번 들어 보자우. 나한테 뭘 가져다 줄 수 있는지. 김수필은 말을 꺼냈다.   

공단에서는 의료용품과 향정신성 약물을 생산합니다. 물론 진통제이기도 하죠. 남한 당국은 이제 곧 정책적으로 마약과 유사한 향정신성 약품들에 대한 규제를 완화할겁니다. 이를 위해서 서해산업은 생산량을 늘리고 있죠. 또 한 가지는 마르크 박사가 생체 실험을 준비할 수 있는 시설이 갖춰져 있습니다. 인간의 의식을 제어할 수 있고 특정한 누군가의 의지를 대상에게 주입할 수 있는 실험입니다. 마르크 박사는 이미 미국에서 실험에 성공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완전하지는 않습니다. 이를 위한 실험이 필요할 겁니다. 시설에서는 이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하하, 김병철은 웃음을 터뜨렸다.

 남조선당국이 미쳐 날 뛰는 구만 기래. 체제를 유지하려 별 수를 다 쓰고 있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니 아주 재미있어. 그게 공단의 실험실과 관련이 있다는 말이지. 선생의 정보는 쓸모가 있어. 우리도 그에 맞춰서 뭔가를 준비해야겠어. 선생은 이제 공단으로돌아가게 될 거요. 선생이 할 수 있는 역할도 있을 거고.  일단 선생을 돌려보내고 종종 우리는 봐야겠어. 참. 저자에게 보험을 하나 들어 놓으라. 살려두면 입을 닦을지도 모르니. 김병철이 부관에게 말했다.  

 남조선 업체 대표하고 자본주의적 거래를 한다. 공화국도 바뀌려면 그런 선도적이고 혁명적인 방법도 고려해 봐야겠지. 김병철은 뭔지 모를 야릇한 웃음일 짓고 있었다. 김수필은 그렇게 위기에서 벗어나 다시 한번 살아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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